남궁현 사는 법

Set the Tone

남궁Namgung 2021. 1. 24. 13:03

시간이 이리 빠를 수가 있을까... 하루하루의 시간도 빠르지만 지난 수년을 되돌아본 그 긴 시간도 결코 저속력이 아니었다. 이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선배가 이제 퇴직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었다. 그 선배와 함께 신나게(혹은 *빠지게) 일하던 그때의 나는 젊었었고 그 선배도 그저 중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청춘의 선배가 60세가 거의 다 되신 것이었다.(정확히는 계급정년으로 퇴임하시는 것이고 연령정년 때문은 아니시라고 한다.) 그러고 생각해 보면 그 선배와 함께 일했던 때가 이미 10년이나 될 정도로 오래전이고, 그 선배가 퇴직을 하실 때가 된 만큼 내 나이도 그간 차곡차곡 쌓여 왔다. 

 

오죽하면 하루하루가 평생같이 길게 느껴질 나이의 둘째 혜빈이도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투덜거릴 때가 많다. 모든 것을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비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 바이러스로 인한 환경의 변화 때문에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아닌가 싶다. 

 

1월도 벌써 마지막 주를 앞두고 있다. 미국에는 참으로 혼란스럽고 시끄럽던 이전 대통령이 희한하게 물러났고, 새로운 대통령이 며칠 전 취임을 했다. 한동안은 이전 대통령의 목소리조차도 듣기 싫어 시사 뉴스도 잘 듣거나 보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라디오를 틀거나 뉴스를 볼 때도 이전같은 거부감은 적지 않을까 싶다. 이전 대통령이 취임할 때도 이 나라의 제도에 대해서 약간 갸우뚱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대통령이 행하던 많은 정책이나 인사, 발언 등은 미국이란 나라가 그리 완벽한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특히나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이 나라의 수많은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겉으로 드러나면서 과연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에 선진국이라는 라벨을 붙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고질적인 문제가 갑자기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분위기로 이 난국을 신속히 헤쳐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의 학교도 지난 주에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어서 화요일에 모든 과목이 개강이 되어 진행되고 있다. 이전 학기에 온라인으로 수강하던 교수법 강의를 통해서 배운 것들을 이번 학기에 시도하려고 과목마다 약간씩 변화를 주었는데, 아직까지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이번 학기도 모든 과목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일부 과목은 과목의 성격상 캠퍼스의 교실에서 진행되는 것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나는 작년 3월에 캠퍼스가 갑자기 문을 닫은 이후로는 한 번도 학교에 나가 보지도 않은 상태이다. 그러고 생각해 보면,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도 학교나 많은 직장들이 온라인으로만 업무를 보면서 운영되고 있는 탄력성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과목들은 지난 가을 학기 때 이미 한차례 수정을 했었고, 지난 겨울방학 동안 약간의 시간을 더 들여 좀 더 "세련되게(?)" 만드는 작업을 했기에 막상 학기가 시작된 이후는 좀 수월한 편이다. 이전과 달리 이번 학기에는 나 스스로에게도 많이 투자를 해야겠다 싶어 학생들 과제를 채점하는 시간이나 이메일 등을 통한 의사소통에 투자하는 시간을 비슷하게 유지하되 빈도는 좀 조정할 계획이다. 지금처럼 하고 있는 재택근무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업무에 매달리는 듯한 생활습관에 다소나마 변화를 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다고 대단히 무리가 될 정도로 일한 것은 아니지만 규칙적이되 좀 더 생산적으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 작년 말부터 배우기에 투자하는 시간을 좀더 늘리고 있다. 올해를 "배우는 한해"라고 설정할 정도로 조금 더 공부하는데 시간을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 남들이 말하는 새해 계획(New Year's Resolution)인 셈이다. 직업이 공부하는 사람이 이같은 것을 거창하게 계획까지 세운다는 것이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난 몇 주 동안 내 지식의 얄퍅함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일들이 있었다. 우연찮게 시청하기 시작한 "더 그레이트 코스(The Great Courses)"라는 사이트의 영상들을 시청한 것이 그중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였다. 

 

이 사이트는 많은 대학들의 명강사들이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강의를 녹화해서 유료로 판매하는 것인데, 이전에는 도서관에서 DVD나 오디오 CD를 빌려서 시청하거나 듣는 것이 전부였다. 특히 이전에 출퇴근으로 도로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때(이런 때도 있었다!)에는 이것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었다. 집에서는 도서관의 회원번호를 이용해 무료로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접속해서 간혹 이 사이트의 강의들을 간혹 보기도 했었는데 무료인지라 강의의 개수가 주제 등이 제한적이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에 이 회사의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더 그레이트 코스 플러스)의 회원권을 샀다. 똑똑한 페이스북에서는 나에 맞는 것이라며 중간 중간에 띄우는 광고 중의 하나로 이 회사의 광고를 띄웠었는데, 당시 연말연시에 한정해서 특별 할인으로 디스카운트된 가격을 제공하고 있었다. 혹시 충동구매가 아닐까 싶어 며칠 동안 고심한 끝에 평상시 가격보다 많이 할인된 가격으로 멤버십을 구입했는데, 아직까지는 잘한 선택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는 물론 취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르치는데 인정을 받은 전문가들의 강의인지라 이용자들의 후기만 보더라도 많은 것들이 명강의로 인정받고 있었다. 

 

호기심에 처음 며칠 동안 무작위로 이런저런 강의들을 조금씩 맛보았는데, 마치 큰 도서관에 책들도 둘러쌓였을 때 느낄 수 있는 나의 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몇몇 주제만을 잠시만 시청했는데도 내가 모르는 것들이 (당연히도) 너무 많다는 점에 주눅이 들면서도, 이제라도 더 겸손하게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착한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지난 수주 동안 여러 강의들을 매일같이 시청하고 필기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지혜로운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약간의 지식은 더 수확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생활 변화 중의 하나는 꾸준한 운동이었는데, 이 또한 (아직까지는) 열심히 하고 있다. 너무 집착하거나 과하게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몸 관리뿐 아니라 마음 관리에도 신경을 쓰면서 하려고 하고 있다. 매주 거의 두세 번은 자주 가고 있는 공원에서 2-3마일씩 걷고 있고, 혹 날씨나 다른 이유로 공원에 가지 못할 때는 차고에 있는 러닝머신에서 잠시라도 몸을 움직이려고 하고 있다. 

 

어제는 아내가 허리가 좀 좋지 않다고 해서 혼자 공원을 돌고 왔다. 포장된 길도 관리가 잘 되어 있고 걷기 좋지만 나는 흙길을 좋아해서 일부러 이런 길을 골라 걸었다. 밟을 때마다 "척, 척" 나는 소리를 듣고 걷는 것은 무척 기분이 좋다. 

 

아직도 불확실한 이 현실에서 그나마 이 같은 약간의 긍정적 변화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새로운 지도자(예컨대, 대통령)의 역할 중의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분위기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어로 set the tone이라는 표현이 좀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미국의 대통령이 바뀐 것도 어쩌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들의 의지의 표현일 수 있는데, 그만큼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환경이 중요할 것이다. 나의 2021년 한해도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이처럼 머리나 몸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도록 set the tone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미 3주가 흘렀듯 남은 49주도 분명 혼란스러울 정도로 빨리 흐를 것이다. 정신줄 꼭 붙잡고 한 해를 살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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