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그분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 내게, 아니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분은 항상 "홍콩 아줌마"였다.
저녁에 혼자 케익을 만들고 있는 혜빈이를 보고 있자니, 지난 번에 보내드린 혜빈이 사진을 보시고 좋아하셨던 어머니가 생각 났다. 전화드린 지 며칠 된 듯싶어 우선 혜빈이가 케익 만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후, 카톡으로 몇장을 보내렸다.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건강하신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신다.
내가 보내드린 사진을 보고 계셨다면서 어린애가 어찌 케익 만드는 법을 배웠느냐며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신기해하고 기특해하셨다. 혜빈이가 만드는 케익은 몸체로 된 얇은 빵으로 두 단을 올리는 것이었는데, 내가 어머니와 전화를 하고 있을 때는 그 두장의 약간 두터운 빵 사이에 캔 복숭아를 잘라 넣은 후였다. 그리고는 직접 만든 하얀 크림으로 빵 바깥 부분을 에두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직접 보시면 신기해하실 듯하여 영상 통화로 전환해서 보여드렸더니 더 좋아하신다.
혜빈이에게도 간단히 인사드리게 한 후 내 책상 자리로 와서 다시 통화를 하려는데 어머니께서 먼저 말씀하신다.
"홍콩 아줌마가 돌아가셨단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아침 일찍, 고향인 은산에서 내 친구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셔서 무슨 일인가 하고 받으셨더니 그 전날 밤 자정이 조금 지나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래도 돌아 가실 복은 있으셨나 보다"라고 하시는데 처음에는 무슨 뜻이신가 했다. 어머니와 한참 얘기하시는 중에 홍콩 아주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그래도 오랫동안 크게 앓지는 않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며칠 전까지도 어머니와 통화를 하셨었고, 작년 여름에 아내가 한국에 방문 했을 때도 아내가 전화로 인사드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 생각해 보면 전화 한 통 드리는 것이 별 것 아닌데도, 내가 이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린 것은 10년도 훌쩍 넘었다.
어릴 적의 기억으로는 "홍콩 아주머니"께서는 우리 가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이 아주머니를 알게 되는 사람들은 이 분의 별명 혹은 애칭이 왜 "홍콩 아주머니"인지 궁금해 한다. (지난 여름에 아내와 같이 한국에 갔던 혜빈이도 그랬다.)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그 아주머니께서 젊으셨을 적에 패션 감각도 뛰어나시고 멋지셔서 친구분들이 "홍콩에서 온 멋쟁이 같다"라는 표현에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우리 집에 무슨 애경사라도 있으면 어머니의 곁에는 항상 홍콩 아주머니께서 계셨고,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집에서 계셨던 시간도 많았던 것 같다. 특히나 어린 내가 무슨 소풍이나 여행을 가는 것을 아시며 어머니 몰래 내 손에 5천 원이나 만원 짜리를 꼭 쥐어 주시곤 했었다. 용돈에 인색하시던 어머니에게는 1, 2천원 받아서 집을 나설까 하던 차에 내 손에 쥐어주시던 그 돈은 어릴 때 얼마나 크게 보였는지 모른다.
어머니와 통화하다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홍콩 아주머니께서 지인들의 자녀들에게 친절하시고 어떻게라도 용돈을 쥐어 주려고 하셨던 것은 비단 우리 집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홍콩 아주머니는 친하게 지내는 다른 분들의 가게나 가정사에도 팔을 걷어 부치고 일을 도우시는 일이 많았다고 어머니께서는 기억하고 계셨다.
나의 고향 동네가 원래 작기도 했지만, 홍콩 아주머니께서 사시던 댁도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아 긴 겨울밤 같은 때면 어쩌다 마실 오시는 아주머니들 사이에 항상 홍콩 아주머니가 계셨다. 내가 대학을 가고 직장을 잡아 외지로 떠난 후에도 고향에 들를 때면 따로 인사드리러 가지 않아도 될 정도였는데, 당시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가게에 어머니와 같이 계실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심정적으로는 거의 가족과도 같으신 분이셨고, 어머니께서 대전으로 이사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자주 왕래하시면서 지내셨을 텐데 당시 아주머니께서도 무척 서운해하셨으리라.
내가 홍콩 아주머니를 마지막으로 뵌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전히 정정하실 때였던 것 같은데, 변변한 인사 제대로 드리지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돌아가셨다니 내가 홍콩 아주머니에게 너무도 매정했던 것은 아니었나 죄스럽다.
그래도 살아 계신는 동안 동네에 형제분들이 계셨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친동생 내외분께서 간병을 하셨다고 한다. 오랜 수발로 고생하셨을 형제 분에게도 커다란 위안이 있었으면 하고, 무엇보다 돌아가신 홍콩 아주머니의 평안한 영면을 기도한다.
정말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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