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St.Louis) 정착기

간만의 성취감

남궁Namgung 2011. 10. 31. 08:51

 

아내를 따라 교회를 갔다가 일찍 끝나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애들이 졸라 집 근처에 있는 버거킹에서 치즈버거를 사 왔다. 나는 짜파게티를 끓여 먹고 싶어 배고픈 김에 두개나 끓여 먹었는데... 이런 항상 먹고 나서 뒤늦은 후회.

 

내 적량은 항상 한개 반 임을 알면서도 배가 고플 때는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고, 그 둥그런 면 "두개"를 집어 넣게 된다. 그리고는, 다 먹고나서 "다음엔 절대 유혹에 굴복하지 말고 하나 반만 넣어야지..." 하면서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후회하는 반복을 계속한다.

 

어쨌든, 배가 불러 만족스럽다기 보다는 거의 거북할 지경에 이른 상태에서 인터넷을 통해 또 다시 "남자의 자격"을 재생했다. 중년 남자들의 스토리라서 그런지 이 프로그램에서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에 끌리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詩"를 쓰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윤석이 자기 아버지의 얘기로 쓴 글을 낭독하는 것을 들으며 눈물 찔끔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생겨난 현상인지 모르겠는데, 가족들의 슬픈 사연, 부모와 자식간의 감동적인 얘기 등이 나오는 것을 보면 울컥 울컥 할 때가 많다. 몇년 어머니, 형제들과 떨어져 있으면서 철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직접 애들을 키우면서 나의 부모님께서 하셨을 희생을 이제사 실감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혹은, 각오를 하고 이렇게 "일을 저지르고(?)" 여기에 와서 공부하면서, 사는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겪으며 약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요일 오후에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몇몇 프로를 고속으로 보고 내일을 천천히 준비하는 것이 일상이다.

 

 


 

오늘은, 일주일동안 앞뜰에 적립해 둔 낙엽을 긁었다. 이제 삼년째 하는 일이지만, 정말 낙엽이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앞뒷뜰에 차곡차곡 떨어지고 있다. 옆집 할머니, 아주머니만 부지런하지 않으면 그래도 좀 낫겠는데,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 불 때마다 자꾸 양쪽 집으로 날라가서 내 일감을 대신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그냥 한 주일 더 묵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저녁경이 되니 세차게 불던 바람도 좀 잔잔해졌기에 일단 앞뜰이라도 긁어서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낙엽 긁는 도구를 들고 나섰다.

 

 

그래도 한시간여를 긁고 담고 했더니, 평소에 잘 흘리지 않는 (혹은, 흘릴 일이 없는) 땀도 나고, 괜히 운동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내가 한 일에 대한 표시가 바로 나타나는 일이라 간만에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었고... 적어도 1주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그래봐야 다음 주 일요일에는 또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해야겠지만...)

 


사진을 올리려고 카메라를 봤더니, 남궁 유빈의 촬영 작품들이 들어가 있다. 혜빈이가 학교에서 가져 온 자료도 찍어 넣고, 저희들끼리 만들어 놓은 이국적인 요리도 들어 있다. 나와 애들의 가을이 이렇게 깊어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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