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발행인 남궁현입니다.
게으르고, 거기다가 다소 바빠서 새해 독자 여러분에게 새해 인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오늘 새해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계획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기 바랍니다."
아침, 저녁으로 교육방송(EBS)에서 방송되는 영어관련 프로그램은 자주 듣
는데, 요즘에는 주로 새해의 다짐(What's your new year's resolution?)에
대한 표현들이 나오더군요. 생각해 보니 저는 특별한 다짐도 하지 않고 새
해를 맞았고, 지금도 아무 생각없이 시작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에 빨리 무언가를 다짐해야겠습니다. 이쁜 딸 하나를 갖고 싶기도 하고...
새해의 첫 메일인데 그리 유쾌한 내용이 아니어서 다소 죄송스럽습니다만,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윤관 전 대법원장의 글을 읽으면서 평소의 내 생각도
말하고 싶기에 이렇게 발행해 봅니다. 도움이 되시지는 않더라도 우리 경찰
조사관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우리 나라 고소, 고발 사건의 현황이 어
떤지 추상적으로나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제 홈페이지에 들르셔서 제게도 덕담 한
마디씩 남겨주시면 제가 감사드리겠죠?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궁현의 홈페이지(http://namgunghyon.pe.kr)
남궁현 이메일(hyonyya@channeli.net, hyonyya@npa.go.kr)
2000년 1월 5일 현재 구독자수(총 1251 명)
(infomail-347명, ezpaper-202명, emag21-702명)
나는 관료화되고 있는가?
관료주의 [官僚主義]
요약
관료제가 지배하고 있는 국가에서 나타나는 관청이나 사회집단 등에서의 기
능적 장애 및 병적 행동양식 ?의식형태.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일정한 사상내용을 지니는 신조(信條)는 아니며, 비능률 ·보수주의 ·책임
전가 ·비밀주의 ·파벌주의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현상은 관청이나 민간
조직을 불문하고 조직이 대규모화할수록 확대 심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조직
의 구성원은 동일 인물이라도 지위와 경우에 따라 관료주의를 발휘하기도
한다. 한편 관료주의는 특권적인 사회층을 형성하고 있는 일단의 관료가 정
치의 실권을 잡고, 국민에 의한 지도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에서 현저하게 나
타난다.
그렇지만 이런 행동양식과 의식형태는 비단 정부의 관료에게만 지적되는 것
은 아니며, 이런 조건을 구비한 정당 ·기업체 ·노동조합 같은 대규모 집단
에서도 볼 수 있다. 사회의 근대화가 늦어진 곳에서는 특히 이런 피해가 심
하였는데, 독일 ·일본 ·제정 러시아 등은 그 좋은 예이다. 또한 사회혁명
이 실현된 국가에서도 강력한 국가통제가 실시되기 때문에 관료주의가 만연
하기 쉽다.
나의 1년
제가 여기 대전동부경찰서 수사과 조사계에서 근무한지가 1년이 좀 넘었습
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시간이 쏜살 같다는 말을 젊은 저도 때때로 느
끼곤 합니다. 예비군훈련을 받지 않아 고발된 어떤 피고발인을 조사하면서
(가장 단순한 조사로 여기지는 사건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에 땀
을 쥐던 때가 얼마 전인 듯 한데, 그런 시간이 1년이 넘게 흘렀네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노라면, 제가 처음에 이 사무실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가졌던 다짐들이 지금은 어떻게 제 안에 자리잡고 있나 생각됩니다. 언젠가
의 공익광고와 같이 과연 제가 "처음처럼" 곧은 다짐을 가지고 있나...
죄송하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에 가졌
던 그 청운의 꿈들은, 지금은 그다지 푸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순히 다
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이 그 꿈들의 색을 바래게 했는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지 오늘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소사건 접수 절차
민원인들은 피해를 당한 내용을 고소장에 써서 경찰서의 조사계장이나 민원
상담관과 상담을 하고, 그 상담을 통해서 형사처벌이 가능한 것은 민원실에
접수되어 수사계를 통하여 우리 조사계 사무실로 들어 옵니다. 접수된 사건
은(종이 몇장에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이 가장 초기 단계의 사건이지요) 각 조
사관에게 배당되고, 조사관들은 고소인과 피고소인에게 출석을 요구하는 것
을 시작으로 흔히 말하는 "실체진실"을 밝히는 조사를 계속됩니다.
그들의 정체
처음에 제가 이 사무실에 들어 와서 사건을 배당 받고, 고소인들을 조사하
고, 피고소인들을 소환하여 조사할 때의 다짐은, '미력하나마 내가 이 나라의
사법 정의를 세우는데 일조를 해야겠다, 정말 억울한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
을 돕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다짐이 사라지거나 변색된 것은 아닙
니다만, 1년도 채 되지 않는 이 햇병아리 조사관은 수사기관에 접수되는 사
건들의 정체(?)에 대해서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정체 불명의 사건들...
정말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해서, 혹은 이 나라,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고
소, 고발을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직접 보고, 조사했고, 또 지
금도 수없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뺨을 한 대 맞아도 10만원이 넘는 진단서를 의사로부터 발부받아 고
소장을 제출하고, 윤락행위를 강요 하다시피한 포주가 데리고 있던 윤락녀가
돈을 가로챘다고 고소합니다.
다방 주인이나 술집 주인들이 종업원(거의 대부분이 어린 아가씨들이죠)을
혹사 시켜 돈을 벌었음에도 늘어난 빚을 갚지 않고 도망갔다고 고소합니다.
술에 취해 남의 기물을 부수고 도망가다가 그 물건 주인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니 그것을 뿌리치다가 상처가 생겼다고 자기가 도망가는 것을 막은 물건
주인을 고소합니다.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이자를 꼬박꼬박 갚았더라도 "이 나라의 경
제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고소 당하고, 자기에게 가벼운 욕만 했어도 "공연
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다"면서 명예훼손을 당했으니 처벌해 달라고 합니
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준 공무원은 모두 직무를 유기한 것이
고,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위 사례는 대부분 제가 처리한 사건들의 아주 일부분입니다.
저는 위와 같은 사건의 처리과정을 통해서 정말이지 국민들의 고소, 고발 남
발이 지나치다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제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읽은 기사 중의 우리나라 법관들이 폭주하는 사건과 부실한 처우로
관료화되고 있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게 남은 것은 바로 그 "관료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제게 배당되는 사건을 보면 저 고소장 안에는 '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파렴치한 범죄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미리 갖지
않습니다. 이제는 고소인이 앞에서 아무리 가슴을 치며 하소연을 해도 그
말의 전부를 믿지 않습니다.
관료화 되어 가는 과정?
혹시 이런 제 태도가 "관료화"되어 가고 있는 과정은 아닌가요? 내가 너무
안이하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는 자세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요.
제가 지독하게 '관료화되었다'고 말씀하신다면 충분히 반성하고, 처음의 그
다짐을 항상 머리 속에 되뇌이며 일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그 "관료
화"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집착하지 않고... 냉정하게...
억울해서 고소장을 제출하는 사람도 많지만, 억울하게 고소를 당하는 사람들
도 그와 마찬가지로 적지 않고, 또 고소를 한 사람이나 고소를 당한 사람이
나 비슷비슷한 사람들인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너무 사건에 집착하지 않고, 냉정하게 가운데에 서서 조사를 하는 것이 진정
한 관료의 자세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지금도 제 책상 위에는 철끈으로 묶여져서 수북히 쌓여 있는 30여건이 넘는
고소, 고발 사건이 있습니다. 고소인, 피고소인의 이름과 전화 번호 등이 적
혀 있고, 그들이 피를 토하듯 말한 내용을 옮긴 조서들이 함께 묶여 있습니
다.
가치를 매긴다는 것이 적절치 않겠습니다만, 과연 저 수북한 사건, 나 뿐만
이 아니라 전국 각 경찰서에서 수많은 경찰관들이 가지고 있는 그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과연 수사를 진행할 가치가 있는 사건들은 얼마나 될까 의문
을 던져 봅니다.
그리고 위에서 제가 제시한 것과 같이 남용되는 고소로 인해서, 진정으로 최
대한의 수사력을 투입해서 처벌해야 할 사건들이 위와 같이 남용되는 사건
들과 비슷한 대접을 받으면서 경시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도 해 봅니
다.
아래의 기사에서 읽으실 수 있겠지만 판사들도 판결로 답해 줄 가치가 있는
사건이 30%내외라고 생각하고 계시다니 제 생각이 그리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관료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래 글은 이번 달(2001년 1월) 월간조선에 실린 윤관 전 대법원장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제가 위의 글과 관련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고 싶은 부분만
복사해서 옮겼습니다. 전문을 읽고 싶으신 분은 월간지를 구입하시거나, 월
간조선 인터넷 사이트(http://monthly.chosun.com)를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
다. 모든 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법원장께서 법관이라고 말한 부분을
"수사관"이나 "조사관"이라고 바꿔서 읽으시면 우리 경찰의 생각과 많은 부
분이 일치한다고 생각됩니다.
―법관의 이직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법
관의 사기앙양 책에 대해 생각하신 바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법관의 이직현상이 너무 두드러져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
다. 저는 그 까닭을 첫째 과중한 업무, 둘째 낮은 처 우, 셋째 권위의 추락현
상에서 찾을 수 있 다고 봅니다. 법관의 업무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과중합
니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에 도 이렇게 바쁘게 일하는 법관은 없을 것입니
다. 나는 대법원장 재임중 가끔 서초동 법원주 변을 지날 때마다 밤늦게 법
원청사의 방마 다 불이 환히 켜져 있는 것을 보고 그 속에 서 일하는 법관
과 직원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법관의 증원에 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또 법관이 증원되더 라도 그것은 일
시적, 잠정적인 해결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중견법관들에게 도대체 가지고 있는 사건 중 판결로 답해줄 만한 사건이 얼
마나 되느냐고 물어보면 대충 30% 내외에 불과 하다고 대답합니다. 그 나머
지는 되지도 않 는 소송을 하거나 감정싸움이나 한풀이를 위해 또는 재판부
를 속이려고 위증을 일삼 는 사건 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판 을 이용하는 국민의식이 올바르게 바뀌지 않는 한 사건의 증
가세는 막을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에 분쟁이 있으면 동네 어른께 하소연하여 그 어른의 판단에 무
조건 복종 하였고 송사를 하면 백년의 원수로 생각하 여 혼인도 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걸핏하면 재판으로 승패를 보려고 하고 자기는 제대로 주장
을 펴거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그 소송에서 패하면 마치 재판부가
상대방과 결탁한 것 으로 오해하고 재판을 불신하는 잘못된 풍 토가 만연되
고 있는 것입니다. 법관의 보수는 대폭 올려주어야 합니다. 법 관의 보수는
그 직업의 속성상 그에 알맞은 처우를 해줘야 하고 또 법관의 처우가 다 른
공무원보다 높은 것은 세계적으로 공통 된 현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관 의 경우 초임 때는 다른 공무원이나 기업체 보다 그
보수가 많은 것 같으나 시간이 지 날수록 거의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
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우리 대법관의 약 8배를 받고
있고 법관도 15∼17년쯤 되면 내각의 장관이나 국회의 원과 같은 수준을 받
게 되며 그때쯤이면 변 호사의 평균수입을 웃돌게 됩니다. 거기에 법관 모두
에게 아파트를 제공하고 관용차 로 출퇴근을 시켜줄 정도입니다. 그래서 법
관들은 평생을 천직으로 알고 정년까지 근 무하게 되고 중도에 그만 두고
변호사를 개 업하면 무언가 잘못이 있어서 법원을 떠난 것으로 알고 사건도
맡기기를 꺼려하는 분 위기라고 합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지요.
『국민은 진정으로 사법부를 지켜주고 아껴 주어야 합니다. 국민이 민주주의
를 위해 그 토록 싸워온 것도 바로 독립된 사법부, 튼 튼한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당사자의 감정싸움이나, 재판지연을 위해 이용되어서도 안 됩니다.
소송남발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소모는 말할 필요도 없겠
지만 그 때문에 사 회의 평화가 깨지고 非생산적인 일에 국력 을 소비하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분쟁을 미리 예방하 고
부득이 한 경우에 한하여 정당한 방법으 로 재판에 호소하는 풍토가 하루
빨리 자리 잡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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