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고 기온도 꽤 높아 포근하기까지 하다. 유빈이는 몇달전부터 흔히 "방방"이라 부르는 트램포린(trampoline)을 모아 놓고 아이들 실내 놀이터에 토요일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나나 아내에게 매번 부탁하지 않아도 제 용돈을 벌어 쓸 수 있는 기회라서 어떨 때는 학교 가는 것 보다 더 열심히 가려고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ㅎㅎ) 두시에서 밤 아홉시까지 하는데 그래도 힘들다는 소리 없이 다니는 것을 보면 역시 애들이나 어른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하는 일은 즐겁거나 최소한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집에서 1마일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이 실내 놀이터는 아내의 교회 지인께서 소개시켜 주셔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유빈이의 용돈을 버는 금전적인 소득 이외에도 어렴풋이나마 대인관계나 사회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나 보다. 아내는 조금이라도 학업에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때가 아닌가 조바심을 낼 때도 있지만 나는 여기라도 나가서 일하면서 돈버는 경험을 하는 것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소중한 추억이 되면서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유용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참 전에 유빈이를 데리고 오기 위해 기다리면서 찍은 사진. 이제는 제 사진을 찍는 것을 싫어해서 몰래 찍거나 없을 때 촬영해야 할때가 많다.>
두시 되기 직전에 유빈이를 내려 주고 집으로 돌아 오려다가 며칠 전부터 세차를 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는 아내의 요구가 생각났다.
날이 무척 푸근한 토요일 오후이기 때문에 집 바로 근처에 있는 세차장이 붐빌지 모른다는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갔더니, 역시나... 세차를 위해 차들이 줄서 있는데다가 내가 사용하려고 했던 자동 세차기는 고장이 났는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내일 다시 와도 되겠거나 하고 집으로 오면서, 이 정도로 따뜻한 날이면 밖으로 나와 있는 수돗물로도 세차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며칠 동안은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이 포근한 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 오른쪽으로 나와 있는 수도꼭지를 틀어 보니 물이 제대로 나오고 있고, 길게 말려 있는 호스도 안에 얼음이 들어 있지 않아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 일하기 쉬운 옷으로 바로 갈아 입고, 고무 잡강을 손에 끼고, 눈을 쓸거나 정원 일을 할 때 신는 부츠까지 착용한 후에 바로 세차에 들어 갔다. 얼마 전에 타던 차가 고장 나서 새로 구입한 밴은 운전하고 다닐 때는 무척 편안하지만 세차 할때는 만만치 않다. 비누나 세제를 쓰지 않고, 그냥 물과 수건으로만 한번 쓰윽... 닦는데도 헉헉 숨을 몰아 쉬면서 마칠 수 있었다. 아내가 작은 SUV를 타고 외출한 상태여서 이 차만 세차를 했지만 설령 그 차가 있었어도 두대 세차를 한꺼번에 마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같은 저급 혹은 저질 체력을 시급히 향상시켜야 할지언데...
세차를 마치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까지 닦아 내고 집 안으로 들어 오니 그제서야 땀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은 상쾌해지고 있었다. 마치 헬스센터에서 달리기를 하거나 다른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린 후의 상쾌함과 비슷한 것이었다. 하긴 짧은 시간에 그다지 큰 힘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차도 신체 운동의 하나와 다름 없다. 일로 생각하면 일이 될 것이고 운동으로 생각하면 내 몸에 유익이 되는 운동이 되는 것이다.
한 학기를 마치고 집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빈이와 혜빈이도 어제부터 약 2주 동안의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그간 노고를 생각해서 조만간 캘리포니아를 짧게 다녀올까 계획하고 있는데, 정확한 것은 아내와 상의하면서 결정할 예정이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가까운 곳으로의 짧은 여행 이외에는 계속 집에만 있으면서 한동안 아이들과 로드트립(road trip)을 다녀오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가 아이들은 물론 나와 아내에게도 기분 전환이 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유빈이나 혜빈이는 나와 아내가 몰래 계획하고 있는 그 사이에도 우리들의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겨울 방학 동안에 LA를 가지 않느냐며 매일 같이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있던 차였다. 이제 유빈이는 1년 반 정도면 대학에 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온 가족이 같이 여행을 다니는 일이 이전만큼 자주 있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만 골라 다니고, 맛집도 선별 방문해서 오랫동안 즐거운 기억으로 각인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해가 빠르게 저물고 있다. 올해 나의 직장과 가정에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되새김 하여서 나나 나의 가족이 겪었던 크고 작은 기쁨이나 난관이 그냥 기억 한구석에 묻히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제 40대 중반을 넘고 있는 인생의 한 가운데에서 앞으로의 5년, 10년 그리고 그 이후를 어떻게 헤아리고 작정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결정 혹은 다짐을 하려고 한다.
30분도 채 되지 않았던 세차를 마치고도 이렇게 상쾌한 기분에 앞날을 머릿속에 그리려고 하고 있다니... 매일 같이 세차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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