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계획한 여행은 아주 좋았다. 적어도 어제 아침에 호텔을 출발할 때까지는 그랬다. (2019. 6. 9.)
산타페라는 작은 도시를 둘러 보고 이것 저것 맛있는 음식도 맛보면서 여유있게 돌아 다니다가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라는 더 작은 도시의 호텔에 묵었다. 로스 알라모스는 산타페와 마찬가지로 뉴 멕시코 주에 위치한 도시인데, 삼림지역에 위치해 있고 해발이 이곳 덴버보다 더 높은 2.2킬로미터 정도 되는 곳이다. 우리 가족 모두 이 도시는 처음 와 본 곳이었고, 지난 여행에 하이킹을 위해 갔었던 텐트락(Tent Rock) 공원에서 하이킹을 했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어 묵게 된 곳이었다.
산타페에서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이어서 저녁 일찍 도착해서 자그만 동네(이곳 주민에게는 미안하지만 동네처럼 느껴질 정도의 규모였다)를 차로 한바퀴 돌아 보기도 했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인구가 1만 2천명 정도 된다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토요일 오후치고는 다운타운에 조차 사람들이 너무 없어서 무슨 영화 세트장을 운전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중국 음식을 하는 곳이 있기에 며칠 동안 멕시코 음식에 약간 물린 애들과 함께 중국 음식(볶음면, 오렌지치킨 등)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하이킹을 가기 위해 잠자리에도 모두 일찍 들었다.
아침에는 모두가 일찍 일어났다. 유빈이와 혜빈이도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간단히 제공하는 조식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8시가 되기도 전에 호텔을 떠나 목적지로 향했다. 구글맵에서 찾아 본 텐트락이라는 공원은 호텔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고, 그 공원은 8시에 개장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일정을 부지런히 시작한 것이었다.
수년전 이 공원을 갔던 길과는 다른 길로 운전을 하는 것이었고 호텔은 물론 공원으로 가는 길도 숲이 우거진 곳이어서 운전하는 기분도 상쾌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자주 있었고 꼬불꼬불한 길도 많았지만 오가는 차들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운전을 시작한지 10분 정도 되어서 계기판에 경고불 하나가 깜박이기 시작했다. 잠시 그러다가 없어지겠지... 생각하고 무심히 운전을 계속했는데, 조금씩 더 운전을 해 나갈수록 차도 약간 이상한 듯 느껴졌다. 특히 오르막을 오를때 차가 약간 덜컹 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도착 시간이 다 되어가는대도 원래 가려고 했던 텐트락 공원 표지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차를 계속 운전할 수록 차가 덜컹거리고 오르막에서 속도를 낼 수 없는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불행중 다행, 가던 길 중 무슨 사무소 같은 곳에 다다랐고, 집 앞에서 볕을 쬐고 있는 한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차를 그 곳 앞에 세우고 텐트락으로 가는 길을 묻는데,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시는지 자꾸 다른 소리를 하시던 중에 Fire Rescue라는 조끼를 입은 한 아저씨가 나와서 내 질문에 답해 주기 시작했다.
텐트락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는 나의 말에 (나와 비슷한 경우가 이전에도 있었는지) 어느 텐트락을 찾느냐고 되물었다. 텐트락이 하나가 아니라는 소리인가 싶어서 하이킹을 위해 찾아 왔다고 했더니 이곳은 험한 길을 운전해서 갈 수 있는 텐트락이 있지만, 우리가 원래 계획했던 곳은 이곳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답을 해 주었다.
이럴 때 젊은이들이 쓰는 말이 "헐..." 인가보다. 그 아저씨는 무슨 이유인지 구글맵에서 검색을 하면 이곳만 지도에 보여 우리처럼 찾아 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황망하기는 하지만 일단 길을 잘못 찾은 것은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 보다도 차량의 상태가 더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계기판의 에러 메시지에 대해서 묻고자 혹시 차량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은 후 증상을 얘기해 보았다. 어느 정도의 지식은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혹 차량 컴퓨터의 코드 에러일 수도 있다면서 리셋을 위해 배터리 연결을 잠시 끊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장비를 가져와 직접 해 주었다.
배터리를 연결하고 다시 시동을 켜니 그 아저씨 말대로 그 경고라이트가 사라졌다. "휴... 별것 아니었군" 하는 안도감이 들면서 아직 시간이 늦지 않았으니 일정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다시 텐트락을 찾기 위해 그곳을 나왔는데, 왠걸...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경고 메시지가 떴고 차량의 상태는 더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원래 계획했던 곳을 가지 못해 아쉬워 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서 일단 이 지역을 나가 문을 연 카센터가 있는지 알아 보기로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날은 일요일이었고, 차를 검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가게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짐작은 했었다.
또 다른 운이 따랐는지, 이 삼림지역을 나오는 길에 서비스 센터를 묻기 위해 잠시 들른 주유소에서 주인 아주머니로 보이는 분이 친절히 가까운 곳에 카센터가 있는데 문을 열었는지는 모르겠다고 길을 알려 주었다.
주유소에서 1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했지만, 문은 닫은 상태. 가게 앞에 붙은 전화 번호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그 사장 아저씨가 전화를 받았다. 일요일이라 영업을 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전화로 차량의 상태를 듣더니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에러메시지가 떴다면 촉매 변환장채(catalytic converter)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내가 이 상태로 덴버로 돌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자기 생각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아내와 상의 끝에 모든 일정(그래봐야 텐트락에서 하이킹 하는 것이 남은 일정의 전부였지만)을 접고 바로 덴버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덴버까지는 400마일(640여 킬로미터)이 넘고 6시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내일 수리를 맡기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가기로 했다. 이때 시간이 고작해 봐야 오전 10시 정도.
이때부터 고속도로를 찾아 덴버가 위치한 북쪽으로, 북쪽으로 운전하기 시작했지만 차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혹은 몸으로 확연히 느낄 수 있게 나빠지고 있었고, 고속도로의 오르막 길에서는 시속 50마일을 유지하기도 버겁기 시작했다. (내리막에서는 그나마 나았지만 이전의 차 상태에 비하면 정상과는 전혀 거리가 먼 상태였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타지에서, 그것도 일요일에 이 같은 일이 벌어져 몹시 당황스러웠고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기에 과연 적당하거나 안전한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들기 시작했다. 다만 나와 전화 통화한 그 카센터 사장의 덴버까지 가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과 계속 가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등떠밀려 계속 운전하듯 천천히 올라갔다. (월요일부터는 내가 시작하는 일이 있어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일요일까지는 집에 와야했다.)
힘들게 오던 중 뉴멕시코의 라스베가스(Las Vegas)라는 곳에 이르렀다. (그 상태로 약 100 마일 가까이를 운전한 셈이었다.)
주유도 해야했고 점심을 먹을 때도 되었었기에 빨리 점심을 해결하고 부지런히 올라갈 계획이었다. 유빈이와 혜빈이는 그 나이에 맞게 나와 아내가 스트레스 받으며 운전하고 있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점심은 타코벨에서 먹고 싶다는 주장도 확실했다.
주유를 하고, 점심도 아이들 희망대로 타코벨에서 먹은 후에 신속히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이 작은 동네를 빠져 25번 고속도로로 운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5분도 채 되지 않아...
갑자기 차의 엔진룸 속에서 펑소리가 났다. 연기나 불 같은 것은 없었지만 깜짝 놀라 차량을 길가에 세우고 비상등을 세웠다. 차의 앞 후드를 열어 보았지만 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이상이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고, 두세번 더 시동을 켰다가 껐다가 해 보았지만 역시 (약간 과장하면) 탱크 엔진소리가 나는 비슷한 증상이었다. 그 상태로는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보험회사의 앱으로 견인신청을 했고, 아이들과 함께 차에 나와 고속도로 밖에서 기다렸다.
차가 "펑" 소리를 낼 때부터 속으로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차를 고쳐서 쓸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고치게 된다면 이 작은 동네에서 고칠 수 있을까? 오늘은 전혀 될 수 없을 것이고, 내일이라도 수리가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인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 엔진이 모두 망가져 차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당장 가족들을 데리고 덴버로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차를 폐차하게 된다면 절차를 얼마나 복잡하게 될지 등의 생각 등, 한 순간에 수만가지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보험회사 직원과 우리가 서 있는 장소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시 통화를 하던 중, 주 경찰(State Trooper)이 경고등을 켜고 우리에게 다가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혹 지나가는 다른 차가 신고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냥 평소와 같은 순찰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경찰관에게 보험회사 직원과 통화해서 정확한 위치를 말해 줍사 부탁을 했더니 친절히도 직접 통화하면서 알려 주었고, 아이들이 위험하니 자기가 동네 어디로 데려가서 기다리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다.
그러지 않아도 견인차가 오는데 45분 정도나 걸린다고 하는데, 애들과 고속도로 노견에 같이 있기에 안전하지 않으니 동네에 있는 맥도날드로 데려가 주면 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유빈이와 혜빈이는 가까이서 경찰차를 처음 보고, 경찰관의 제안으로 이 차를 타고 동네까지 갈 수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견인차에 실린 나의 미니밴. 겉으로 봐서는 전혀 이상 있는 차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 그간 별 문제가 없었던, 비교적 양호한 상태의 차였다.>
견인차는 생각보다 오래지 않아 도착했고 친절한 인상의 50대 후반 기사 아저씨는 자기가 차량 수리 전문가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차가 무슨 이상인지에 대해 내 질문에 간단히 답해 주었는데, 자기 의견에는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보험회사와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수리점으로 가는 짧은 동안에도 자기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는데 그 친구들도 비슷한 의견인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그 작은 동네에서(하긴 덴버에서도 일요일에 영업하는 카센터를 찾기 쉽지 않다) 일요일에 영업을 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동네의 호텔에서 묵은 후 다음 날 아침에 수리점에서 의견을 구해야 하고, 이곳에서 고치기 어렵다면 근처의 가장 큰 도시인 산타페로 다시 견인해 가서 딜러샵에서 손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설명해 주었다. 또다시 최악의 상황이 하나씩 그려지면서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고속도로 현장에서 견인한 내 차를 두기로 한 차량수리업소까지는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견인차 창밖으로 보이는 그 수리점은 거라지의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그 안에서는 몇명이서 차를 손보며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주인이 친구들과 개인적인 업무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일요일에 출근해서 차를 고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차가 무슨 문제인지 당장 봐 줄수 있다고 했고, (당연한 말이지만) 상황에 따라 간단히 고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문제가 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에 이때부터 약간 희망적인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고장난 차만 수리점 앞에 내려 놓고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만나 호텔을 구한 후에 일없이 내일 아침까지 막연히 기다려야 할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장 봐줄 수 있는 차량 전문가가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사이 견인차를 운전한 아저씨는 나의 사인을 받고 돌아갔고, 주인 아저씨와 그의 조수로 보이는 아저씨는 이것 저것 보더니 엔진의 뒷면에 붙어 있는 엔진스파크 플러그 코일이 망가져 있는 것이 보인다며 그것이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까지 내려주었다.
인상은 약간 험하고 무섭게 생겼지만 주인 아저씨가 말하거나 부품을 다루는 모습을 봐서는 자신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몇번이고 엔진의 소켓에 스파크 플러그를 넣으려고 시도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는 가슴철렁한 말을 한다. 엔진 뒷부분을 어렵게 사진으로 찍어서 상태를 확인하더니 스파크 플러그가 꽂혀 있는 소켓이 망가져서 다른 플러그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면서 이 후로도 몇번이고 주인 아저씨와 조수 아저씨가 돌아 가면서 시도를 했는데 별 소용이 없었고, 주인 아저씨는 잘 안되어서 아무래도 내일 산타페로 끌고 가야할지 모르겠다는 최악의 상황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인터넷으로 이것 저것 찾아 보고 동네의 자동차 부품상에도 전화 해 보더니 해결 방법을 찾은 것 같다며 거의 80% 이상 고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얘기까지 말하며 수리비까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부르는 가격이 그리 싼 것은 아니었지만,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소 하루 이상을 이 먼 곳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을 따지면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고, 무엇보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아저씨에게 그럼 수리를 시작해 달라고 말하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던 맥도날들에 찾아 가서 약 세시간 정도 걸린다는 수리 결과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희망적인 기대를 갖고 기다리면서도 만약의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잠시 의견을 나누었지만, 나머지 시간은 그저 하염없는 기다림이었다.
<맥도날드에서 몇시간을 기다리기가 지쳤는지, 길 건너에 있던 월그린스(Walgreens)에 가서 사고 싶은 것 사라며 현금을 쥐어 주는 아내의 말에 두 남매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야말로 out of nowhere에서 의도치 않은 짧은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는 주인이 전화하기로 약속한 시간...
그 주인은 자기가 계획했던 방법이 통했다며 수리가 되어 시동을 켜 보니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는 것 같다며 나머지 테스트를 더 하는데 한 시간 정도면 된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최악의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던 하루의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그 주인은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맥도날드로 차를 끌고 왔는데, 차가 완전히 고쳐져서 전혀 이상이 없고 그 이외에 발견했던 다른 이상도 처리를 했다고 한다. 애초 차에 보였던 에러 메시지는 실제 고장난 엔진의 스파크 플러그와는 관계도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지만, 중요한 것은 차가 이전 상태로 돌아 왔다는 것 뿐이었다. 차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전에 나던 괴기한 엔진소리는 모두 사라졌고, 이전에 운전할 떄와 같은 조용한 상태였다. 계기판을 확인했는데도 별다른 에러 메시지도 없었다.
이때 시간이 오후 다시 5시 반 정도.
약간의 흥정을 통해 수리비를 지불했고, 아이들에게는 다섯시간을 계속 달려 밤 중으로 집에 돌아 간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다.
"It's been a long day." 라고 말하던 혜빈이나, 몇시간 동안 지루했지만 별달리 투정하지 않던 유빈이도 집에 갈 수 있다는 말에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처음 들른 타지의 동네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맡긴 수리였기 때문에 "과연 다섯시간 가까이 다른 문제 없이 운전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쉼없이 달려 밤 11시에 집에 도착하는 동안 전혀 다른 이상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은 아내에게 맡기고 도착한지 20분도 되지 않아 간단한 샤워 후에 바로 쓰러졌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꼭 생각하게 된다. "왜 도대체 이런 좋지 않은 일이, 아주 곤란한 상황에서 최악의 상태로 내게 닥쳤을까" 라며 대상없이 불평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일에서는, 처음 일이 생긴 이후로 하나씩 풀어간 과정을 되씹어 본다면 "그래도 죽지 말라는 법은 없나보다" 라며 여러번 생긴 도움과 행운을 감사하는 것이 더 옳은 것으로 생각된다.
도움을 청할 때마다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던 여러 사람들, 차가 견인차를 부르기도 어렵거나 혹은 전화도 터지지 않는 장소에서 멈추지 않고 그나마 동네 가까이에서 멈춘 점, 친절히도 아이들을 안전한 곳에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하던 친절한 경찰 아저씨, 자기들의 영리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일요일에 가게 문을 열고 있었고 어떻게든 고치려고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한 카센터 아저씨, 네시간 가까이를 처음 들른 작은 동네의 맥도날드에서 일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던 유빈이와 혜빈이.
이 같은 일이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누구의 잘못이 없었어도 일어난 것을 감안한다면 불행과 행운을 저울에 올려 놓을 때 행운쪽으로 훨씬 더 무게가 나갈 것이다. 또한 전혀 모르는 차의 한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긴 여행하면서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비상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실습까지 했으니 이 같은 학습은 덤이다.
이유와 과정은 어떻든, 기억에 오래 남을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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