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방학때 하게 된 결심 중의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고 유익한 것은 바로 우리 책을 자주 읽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일에 스스로 뿌듯해 하는 것은 그간 우리 글로 된 독서를 너무도 등한시한 것 같다는 다소 늦은 자각 때문이다.
외국에서 상당기간 살면서 갖게 되는 어려움, 혹은 곤혹스러움 중의 하나는 그 나라의 언어 활용 능력은 그다지 늘지 않으면서 우리말 사용 능력은 눈에 띄게 감소한다는 것이다. 미국이건 아니면 다른 나라이건 타국에서 오랜 기간 살았던 분 중에 이같은 나의 경험에 공감하는 분들이 꽤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살게 되면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살때보다는 영어를 사용할 일이 당연히 많겠지만, 그렇다고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물론 청소년기에 다다르기 전에 외국에서 살면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경우는 전혀 다르다.)
아무튼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이 블로그에 나의 경험이나 생각을 적을 때에도 나의 생각을 가장 적절한 우리 말로 표현하기에 어려움을 갖은 적이 적지 않다. 어떤 때는 영어 단어로는 생각이 나면서도 그 상황이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우리 글을 찾지 못해 곤혹스럽기까지 한 적도 많다. 그런 점을 따진다면 혼란스러운 맞춤법을 찾기 위해 인터넷 국어 사전을 찾아야 했던 것은 말그래도 "일상 다반사"와 같은 일이다.
방학 때는 자주 그랬듯이, 지난 겨울방학에도 영어 어휘 사전을 다시 꺼내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전혀 다른 직업을 찾지 않는 한은 죽을 때까지 영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에 가급적 영어 공부도 꾸준히 하려고 하는데, 물론 이 같은 주기적인 결심은 방학 직전 혹은 직후에 많이 발생한다. 지난 겨울방학에도 이미 이전에 살펴 보았던, 손바닥에 들어 갈 정도의 크지 않은 사이즈의 영어 어휘책을 다시 꼼꼼히 읽어 보기 시작했는데, 내 스스로 의아한 것은 영어 어휘책을 읽다가 우리 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어휘책의 서문에는 왜 영어 어휘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지에 대한 설명에 상당한 지문을 할애했는데, 그 책의 주된 타켓이 중고등학생이 아닌 일반인인 것으로 보이는 점을 따져보면 그리 놀라운 전개도 아니다. "성인이 되어 이미 적당한 수준의 어휘력으로 충분히 대화를 하고 글을 쓸 수 있는데, 무슨 어휘 공부가 필요한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어를 쓰는 나라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갖고 있는 수준의 단어와 표현력으로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어휘를 더 알아야 할 필요성으로 설득하기가 오히려 더 도전이 될 수 있다.
우리 말의 경우에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지금 내가 여기 이 부분까지 글을 쓰는데 아주 큰 어려움이 없었고, 나의 아내와 다른 한국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큰 지장이 없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 이 나이, 이 상황에서 우리 말을 공부해야 할 필요를 갖게 되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적당한 수준으로 우리 말을 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글을 최대한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가끔 이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자주 갖는 생각이, 나는 "생각"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전의 문장에도 벌써 두번이나 "생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고려"하는 말을 고급스러우면서도 적절할 수 있고, 어떤 때는 "깨닫다"거나 "인식하다," "판단하다," "헤아리다" 등으로 다양한 표현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그저 "생각한다"는 평범한 말을 쓰는 것이 버릇이 된 것 아닌가 싶다.
방학 때 다시 읽기 시작한 그 어휘책의 저자의 주장 또한 이와 비슷한 것이었다. 우리가 굳이 다양한 어휘나 표현 등을 알지 못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상생활이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주장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적절히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들을 수시로 공부하고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과 글이 곧 그것들을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력의 깊이와 직결된다는 것은 어쩌면 부수적인 효과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전에도 읽었던 서문인데, 이번에 그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우리 말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심 이후의 과제는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의 국어 과정 자료를 찾아 보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국어활용능력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의 책장에서 찾은 것이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 라는 책이었다.
물론 이 책은 수년 전에 텔레비젼에서 방영되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던 것인데, 왜 이 책이 나의 책장에 꽂혀 있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아마 미국으로 이사를 올때 짐을 보내면서 끼어 넣은 책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혹은 주위의 지인이 읽고나서 챙겨 준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책을 몇장 뒤적여 보다가 이 책으로 마치 영어 공부하듯이 국어 공부를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아는 단어나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노트에 적으면서 기억에 새기기로 하고, 국어 사전에 나와 있는 예문을 같이 보면서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정확한 것인지를 권위있는 소스에 의지하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 우연치 않게 알게 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tdweb2.korean.go.kr/) 사이트는 아주 유용한 것이었다. 물론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 사이트에도 국어사전 기능이 있지만 단순한 화면 구성이나 내용면을 따진다면 아주 훌륭한 것으로 보여졌다. 내가 중고등학교때 어쩌다 사용했던 두꺼운 책으로 된 국어사전에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특정 단어를 검색하면, 그 단어를 사용한 작품들의 일부 문장을 포함하고 있어서 내가 그 단어나 문구를 어떻게 적절히 사용할 수 있을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신경림 시인의 이 책은 그의 판단으로 많은 이에게 읽혀져야 할 시들을 선별해서 시인별로 제시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시인들의 직업이니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시인들이 단어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다루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아주 쉬운 단어들을 조합해서 신기할 정도로 철학적인 주제를 전달하는 경우가 흔하다. 내가 흔히 겪는 일상 중에서 일부를 선별하고 그 선별된 일상에 아주 평범한 단어로 색칠해서 인생의 큰 깨달음을 선물하는 경우도 많다. 막대기를 잡고 할머리와 참깨를 털고서 쓴 저 시를 읽게 되면, 그가 시인이니 당연하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존경스럽다.
내가 인생의 큰 방향과도 같이 생각하게 된 문구는 "왜 사냐건 웃자"인데, 물론 이 문구는 아래의 시에서 따 온 것이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아마도 중학교때 교과서에서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짧으면서도 굵직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이 시가 좋았고, 무엇보다 제일 마지막 부분의 "왜 사냐건 웃지요" 라는 문구는 가급적 즐겁게 살고 싶다는 나의 삶의 방향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다만 앞으로 내가 노력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일부러 어렵거나 복잡하게 쓰려 하지 말고 단순하되 분명하게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일게다.
"But the secret of good writing is to strip every sentence to its cleanest components. Every word that serves no function, every long word that could be a short word, every adverb that carries the same meaning that’s already in the verb, every passive construction that leaves the reader unsure of who is doing what – these are the thousand and one adulterants that weaken the strength of a sentence" (William Zinsser, On Writing Well, Chapter 2, page 6).
이와 함께,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운동이건 독서건, 아니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결심한 것을 꾸준히 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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