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좋은 글

Tiny

남궁Namgung 2014. 6. 29. 07:17


이곳 미국에 오고나서 항상 그랬듯, 여름은 길고도 길다. 정확히는 "여름방학"이라고 해야겠으나 둘 다 거의 같은 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듯 싶다. 따뜻해질 무렵해서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이제 좀 선선해지려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될 때 시원해지곤 했다. 또한, 지금은 교육 공급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점만 다르지 학생 때와 비슷한 업무 환경에 있고, 휴일 방학 등이 거의 비슷하니 전과 다른 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물론 학생 때는 하는 일 없이 거의 3개월을 보내야 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일이 있어 밥벌이는 하고 있으니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여름학기 동안에는 온라인 강좌가 두과목 개설되어 있지만, 말 그대로 온라인이기 때문에 학교 교실로 나갈 필요는 없다. 모든 수업 준비와 수업, 채점 등을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서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전 학기에서 하던 것 보다는 부담이 적다. 일주일에 한번만 학교에 나가 잔무를 처리하고, 혹 도움을 청하러 오는 학생들을 상담해 주는 일이 거의 전부다. 


때문에 방학 이후로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는 엄청난 여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꼭 이전 학생 때의 여유와 비슷하다. 애들도 같이 방학인지라 애들과 함께 "건설적인 시간"을 만드는 것이 항상 부담이 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어머니와 장모님, 누나가 약 4주간 방문하셔서 애들이 무척 즐거워했는데, 지금은 또 다시 예전과 같이 잉여 시간 관리를 위해 머리 싸매고 있을 정도다. 




이번 여름도 제일 만만한 은신처는 도서관이다. 다행 새로 이사한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이 자동차로 5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종종 들른다. 세인트루이스에 있을 때와는 달리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오픈하지 않고, 저녁 일찍 (6시) 문을 닫는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도서관 소장 자료를 둘러 보다가 책꽂이에서 "10 Rules of Writing"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한참 전에 서점에 가서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것이라서 눈에 익은 책이었다. Elmore Leonard라는 작가가 쓴 책인데, 얼마나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종이가 무척 두껍고 페이지 마다 적혀 있는 글이 아주 적어 다 읽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책이다. 



책의 제목대로 작가들이 귀담아야 할 글쓰기의 법칙과 같은 것을 나열한 것이다. 모든 종류의 글쓰기를 관통하는 법칙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소설과 같은 픽션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책인 듯 싶다. 예컨대, 첫번째 법칙은 책을 시작하면서 날씨 얘기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1. Never open a book with weather). 즉, 어떤 분위기나 설정을 보여 주기 위해 날씨에 대해 장황하게 쓰기 보다는, 직접 전달할 내용으로 바로 들어 가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글쓰기에 관한 거의 대부분의 책들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바로 쓸데 없는 글은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느 단어 하나라도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서 불필요 한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삭제하라는 글들을 많이 봐 왔다. 아마도 저 첫번째 조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 싶다. 


생각해 보면, 글 뿐만 아니라 말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꼭 전달하고자 하는 말만 하고 그렇지 않은 단어, 구절들은 모조리 생략하고 살수는 없겠지만, 많은 경우의 다툼이나 오해 등은 그런 필요치 않은 말들이 오가면서 생기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실수를 많이 해 오고 있다. 아내나 자식은 편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해도 되지 않을 말들을 종종 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필요치 않은 말을 해서 의도치 않게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을 듯 싶다. 남과 대화하기 전에 전에 생각하고, 그런 사전 검열을 거친 후에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것이 결국은 상대에 대한 가장 큰 배려일 터인데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하긴 생각해 보니, 그런 군더더기를 제거해야 하는 곳은 말과 글 뿐만이 아니리라. 나의 생활, 나의 환경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며칠 전 자기 전에 Neflix를 통해 "Tiny"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젊은 커플이 약 네다섯평 정도 되는 집 (tiny house)을 지으면서 미국 내의 주거 환경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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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에 의하면 1970년대 이후 미국 주택의 규모는 거의 두배가 되었다고 한다. 1970년 대에 이곳에 있지 않았지만 이 통계가 아주 거짓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미국의 어느 도시이건 약간 교외로 나가면 정말 어마어마하고 으리으리한 집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텔레비젼서에도 미국에 사는 연예인들이나 연예인들의 지인 집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 그 대단한 규모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는데, 전혀 예외적인 주택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저 다큐에서도 질문을 던지듯이, 우리가 과연 그런 큰 주택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작아서 갖는 생각이 아니다. 아내에게도 종종 얘기하듯,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집은 우리 가족에게 충분히 큰 집이다.) 


물론, 나의 집 안에 많은 공간이 있어서 가족들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곳이 많으면 나쁠 것이 없을 수도 있다. 내가 공부할 수 있는 공간, 음악할 수 있는 공간, 책 읽을 수 있는 공간, 가든을 가꿀 수 있는 공간, 가족들이 둘러 앉아 얘기하거나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삶의 질이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Tiny"라는 다큐는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해 보려는 다큐였다. 몇평되지 않는 집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 주거 환경을 선택한 듯 싶지만,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모든 사이즈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곰곰 생각해 볼 것이다. 과연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집의 모든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가? 그런 공간들이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인가? 군더더기처럼 붙어 있는 공간에 무엇 하나라도 더 채워 넣으려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내게 필요없는 것들인데도 소유하려고 하거나, 곁에 두려고 하거나, 잊지 못하거나, 집착하는 것들은 없는지 돌아 봐야겠다. 그것이 뱃살이든, 이 글에 쓰인 단어나 따옴표이든, 아니면 집 차고에 쌓여 있는 물건이든... 




저 책의 마지막에 보니, 아주 촌철살인처럼 다가오는 조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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