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다. 학문적인 글쓰기가 아닌, "그냥 글쓰기"를 좋아했고 그런 "그냥 글쓰기"를 잘하고 싶었다.
20대 후반,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작정 인터넷을 글을 써 올리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내가 쓴 글을 내가 읽어 봐도 재밌는 것 같고, 그렇게 많이 모아진 글들을 보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같은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어찌 보면 그런 버릇이 지금까지 남아 있지만,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진다. 예전에 써 놓은 것들을 보면 짧은 생각이나 치기 어린 표현들이 포함된 것들이 많다. "교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지금은, 내가 쓴 글이 나의 그런 배경과 비교되어 질 것이라는 혼자 생각에 이전처럼 아무때나 아무런 생각이나 투닥거려 글로 옮기기가 더 주저하게 되는 때도 많다. 그래서 "그냥 글쓰기"도 그리 자주 하지 않았던 듯 싶다.
직업의 한 부분인 "학문적" 글쓰기도 크게 진전된 것이 없다.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후 이제 4학기를 마쳐가고 있는데, 실제 수업 준비를 하고 가르치는 일이 어렵기도 했지만, 나의 전공 분야에서 논문이나 다른 성과가 많지 않다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임에는 분명하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하려고 했지만, 조금만 둘러 봐도 나보다 훨씬 바쁘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 보다 더 열심히 글쓰고 책 쓰고, 논문도 많이 발간해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글쓰기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일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효과적으로 글쓰는 사람, 다작을 하는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남는 시간들을 잘 활용하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대학원생 때에도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많이 하는 조언은 "하루의 일정 시간을 글쓰기로 배정해 놓으라" 혹은 "하루에 1페이지 혹은 2페이지를 쓴다는 식으로 정해 놓으라"는 것이었다. 즉, 한꺼번에 모아서 글을 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닐 뿐더러, 그렇게 되는 경우도 많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에 2페이지만 책 2-3권 분량을 쓸 수 있는 것이고, 중간에 휴가며 다른 중요한 일정들을 제한다고 하더라도 큰 분량을 완성할 수 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의 주중 하루 일과를 생각하면 사무실에 있는 시간 중 한시간 혹은 두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일전에 대단히 유명한 교수가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교수의 조언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겸손하게 쓰려고 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학원 시절을 돌이켜보면 자기보다 훨씬 더 글을 잘 쓰고 유능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중 많은 친구들은 그들을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거나 자기보다 학문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교수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은 잘 쓰지 못하는 글이라도 꾸준히 쓰고 다른 동료나 멘토들의 충고를 받아서 계속 쓰고 고치는 일을 계속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열심히 쓰고 또 쓰는 사람에 당할 자가 없다는, 아주 진부한 조언지만 생각해 보면 이만큼 정확하고 틀림없는 조언도 없을 것이다.
오후에 책꽂이에 꽂혀 있던 "The Art of Teaching"이라는 책을 뒤적여 봤다. 지난 주 도서관에 갔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제목에 이끌려 빌려온 것이었다. Jay Parini라는 교수가 교수가 되고 싶은 대학원생이나 막 교수생활을 시작한 신참 교수들에게 teaching에 대해 조언해 주는 책인데, 오늘 그 중에서 교수의 글쓰기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이전부터 들어 왔던 그 익숙하고 친근한 조언을 다시 한번 접하게 되었다.
그 교수가 학생 시절에 아주 바쁠 것으로 생각되는 교수가 저술 활동도 열심히 하는 것이 궁금해서 그 교수에게 그 "비법"을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는 것이다.
"I've learned how to use the odd gaps of 20 minutes or so that occurs at various points in the day."
즉, 하루에 20분 가량 조금씩 조금씩 짬나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그 "비법"이라는 것이다.
이제 봄 학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여름 방학이 워낙 길어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 지 고민이 된다. 온라인으로 두과목 정도 강의 할 계획에 있지만, 그래도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하지 않으면 그 많은 시간들이 하루 하루 그냥 지나갈 수 있음을 경험상 잘 알고 있다.
이번 방학에는 몇가지 계획이 있는데, 그 중의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글쓰기"이다. "그냥 글쓰기"도 있고 "학문적 글쓰기"도 있다. 조금씩 주제나 다른 계획을 구상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글쓰기 "버릇"을 들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책을 읽고 쓰는 독후감이든, 땀 흘리며 집안 일을 한 후에 쓰는 집안일 후기이든, 여행 중에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생각을 쓰는 수필이 되든, 매일 매일 글쓰는 일을 쉼 없이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국은 글쓰기가 내 직업 중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어찌 생각하면 컴퓨터를 켜고 자판만 두드리면 되는, 이렇게 "쉬운(!)" 직업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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