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좋은 글

The Man who is actually in the Arena

남궁Namgung 2015. 12. 16. 12:25

실무가들에게 학자들은 종종 조롱거리가 되곤 한다. 


"당신들이 실무를 알어?" 라는 회의적 질문에서부터 "웃기고 앉아 있네..." 라며 학자의 견해나 주장, 근거 등을 희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적어도 내가 경찰관으로 일할 때는 가끔 그랬던 것 같다. 어느 학교 교수, 어느 연구소의 연구원이라면서 경찰의 한 분야나, 한 주제, 논란이 되는 내용에 대한 논문이나 학문적 글을 읽게 되면, 그 내용을 자세히 읽기도 전에 (사실, 그런 글을 꼼꼼히 전부 읽은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그 같은 부정적 선입견을 갖고 그들의 주장에 유연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이 같은 실무자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어느 나라에서건 많은 실무가들은 자기들의 접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판단과 평가가 정확하거나 제대로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범죄를 현장에서 척결하고, 현장에서 화재를 진화하며, 고속도로에서 교통 흐름을 관리하고 있는 각 분야의 실무자들은 그들의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있어서 전문가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실제 업무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흐름이나 더 큰 그림을 간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장에서 강력 범죄나 경제 범죄를 처리하고 있다면, 그들이 처리하는 사건이나 이슈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과대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처리하는 그 같은 범죄우ㅏ 다양한 원인이나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검토할 여력이 없거나 관심이 없기도 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학자나 연구자들의 역할이 개입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처에 1회용 밴드를 붙이거나 약을 바르기 보다는, 왜 상처를 입게 되었는지, 상처에 밴드를 붙이거나 약을 바름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지역, 혹은 외국에서는 어떻게 그 같은 상처를 처리하는지를 고민하고 연구해서 그들의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이 바로 학자나 연구자가 해야할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이슈를 연구할 때에도 상아탑 (ivory tower)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책이나 읽으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학자 (armchair scholar)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을 주지하려고 한다. 어느 조직에서건 현장에 나가지 않고 책상에 앉아 기안하고 중대한 일을 추진하는, 이른 바 "탁상행정"이라는 것이 비난 받는데, 이는 사회를 연구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가능하다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기여하려는 학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경찰관으로 일하던 한 때, "현장에 답이 있다"는 구호(!)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탁상행정"을 하지 말고, 실제 거리에 나가 보고 범죄자나 피해자를 만나보고 경찰관을 만나 그들의 고충과 아이디어를 경청하라는 의미였다. 이제는 내가 직접 현실에 나가 사회 문제를 몸으로 직접 부딪힐 일은 없겠으나, 내가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접근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여러 논점을 정리하여 이론적으로 더욱 견고하거나 탄탄한 가설, 이론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현실을 항상 직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지난 주말에 배달된 이번 호 TIME을 읽다가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이 주간지의 가장 최근 호에는 1년을 정리하는 "Person of the Year"를 실은 특별호였는데 (독일의 메르켈이 올해의 인물이 되었다), 그 내용 중 한 저널리스트가 쓴 글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It is not the critic who counts: not the man who points out how the strong man stumbles or where the doer of deeds could have done them better. The credit belongs to the man who is actually in the arena, whose face is marred by dust and sweat and blood, who strives valiantly, who errs, who comes up short again and again … who spends himself in a worthy cause; who, at the best, knows, in the end, the triumph of high achievement, and who at the worst, if he fails, at least fails while daring greatly.”


즉, 행동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행동하는 사람이 어떻게 성공했고 실패했는지 말로만 따지는 사람보다는 현장에서 땀과 피를 흘리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가치있는 것에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실무가가 학자나 연구자들에게 할 수도 있는 내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자나 연구자들도 그들의 주제와 관련한 현장이나 현실에 부딪혀 사람을 만나고 문서나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실무자가 더 중요하고 학자는 그저 말이나 하고 글로 비판이나 하는 수동적인 집단이라고 쉽게 단정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에서 어떤 정의로운 목표를 위해 땀을 흘리거나 피를 흘리는 일은 분명 숭고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나처럼 책상에 앉아 책과 논문을 읽고,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무의미하고 무익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위 글을 읽으면서, 항상 어떤 주제를 접하건 현실에 가까이 하고,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단히 눈과 귀를 열어 놓아야 하겠음을 깨닫는다.  (12/1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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