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부터 아주 성가신 비염을 앓고 있다. 나의 증상에 비해 "앓는다"는 표현은 좀 거창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다가 재채기와 가벼운 두통을 동반한 비염이 찾아 올때면 아주 성가실 때가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시작되었는데, 이곳에 와서 그 증상이 좀 더 심해졌다. 그래봐야 일상 생활에는 거의 지장이 없는 정도이기 때문에 아직은 크게 걱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가신 것은 성가신 것이다.
한국에서야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대도시에는 공기가 좋지 않은 곳이 많아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이 공기 좋은 곳에서 한국보다 스트레스도 덜 받고 있는데 비염이 없어지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해 하면서 지내고 있다. 몇년 전 방문한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은, 비염은 쉽게 완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관리"를 해야 하지,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신 적이 있다. 지금까지의 나의 경과를 봐서는 그 말이 맞다.
아무튼, 비염으로 인해 생긴 내 생활의 가장 큰 변화는 음주량의 급감이다.
비염이 있더라도 냄새를 맡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이상하게 알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다. 어쩌다가 맥주를 조금이라도 마실 일이 있다면 그 다음날의 재치기와 "코맹맹 소리" 등과 같은 전형적인 후유증이 반드시 따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몸이 알콜을 찾는 빈도수가 크게 줄었다. 이전 같으면가벼운 자극, 예컨데 영화나 드라마 혹은 예능 프로그램 같은데서 맥주나 다른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침을 꿀꺽하며 한잔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수업이나 다른 힘든 일로 긴 하루를 보냈거나, 몸을 움직여서 땀 흘려 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시원한 맥주 한잔 해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따라 다녔다.
그런데, 그런 일이 거의 사라졌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고, 나와 숱하게 대작을 했던 나의 지인들이 알면 크게 놀랄 일이다! 물론, 아내는 이런 변화에 반색하는 것은 당연하고, 나도 이제 음주를 하는 일이 어쩌다가 하게 되는 "특별행사(?)" 비스무리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쩌다가 한두잔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달에 한번 혹은 두번 정도다. 그래봐야 마트에서 약간 도수 낮은 맥주를 사와 시덥지 않은 안주 (감자칩이나 다른 과자 혹은 직접 구운 만두 등)와 함께 혼자 컴퓨터를 보며 홀짝인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아내도 없고(!), 애들도 제 할일들을 다 마치고 잘 준비를 시킨 후에 가만히 앉아 홀짝이기 시작했다. 물론 내일이 되면 이 성가신 비염이 다시 방문하시겠지만, 적어도 어제 그 시간만은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면서 혼자 시간을 즐기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마트에 진열된 것 중, 기린 맥주를 고르고, 약간 짭짤하고 건강에는 좋지 않겠지만 그래도 맥주 안주로 좋은 육포 (Jerky)를 사와 수고한 나의 하루를 격려하며 마시고 잠에 들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유빈이를 먼저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와서 잠시 기다리다가 혜빈이를 데려다 주었다. 유빈이 학교로 가는데 약 30분, 돌아 오는데 30분이니 매일 같이 아침마다 1시간을 차에서 보낸다. 다행 혜빈이 학교는 9시가 거의 다 되어서 시작하기 때문에 집에서 8시 40분 경에 출발한다. 시간 잘 지키는 것을 벌써 철칙으로 알고 있는 혜빈이는 8시 40분에서 1분이라도 늦어지면 졸라대기 시작하기 때문에 가급적 1분이나 2분 정도 일찍 출발하고 있다.
유빈이 데려다 주고 집에 왔더니 8시가 조금 안되었기에 혜빈이 학교로 출발하기 전까지 주방에 있는 그릇이며 조금 지저분 한 것들 정리해 놓았다. 가만 생가해 보니 오늘 저녁에는 지인과 저녁 약속이 있어 애들과 스포츠 센터를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라도 다녀와야 겠다 싶어 반바지로 갈아 입고 운동화를 신은 후 물병을 챙겼다.
혜빈이를 학교에 내려 주고 바로 스포츠 센터로 가서 달리기와 노젓기 운동을 했더니 30분 정도 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땀이 뚝뚝 떨어진다. 원래 땀 흘려 운동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는데, 이런 모습은 나의 이전 생활에 비교한다면 생소한 모습이다. (마치 한달에 한두번 밖에 음주 하는 것이 생소하듯이...) 어제 기린 맥주병에는 한병에 75칼로리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색내듯 쓰여 있던데 (맥주 마시는 사람들이 칼로리까지 따지면서 마실까???) 오늘 아침 운동으로 퉁치지 않았나 싶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평소 내 책상이 아닌 거실의 티테이블에 컴퓨터를 옮겨 글을 쓰고 있다. 물을 끓여 커피믹스를 타서 가만 마시고 있노라니 밝은 햇살도 들어오고 조용한 것이 아주 여유롭고 한가롭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요즘 새로 배우고 있는 것을 조금 살펴 보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유빈이를 데리러 갈 생각이다. 어제와 오늘은 파크 (PARCC) 테스트라고 주 전체적으로 시행하는 시험을 보고 있어서 끝나는 시간이 좀 빨라졌다 어제는 한 시간 정도 빨리 끝났는데, 오늘도 1시 50 분 정도에 끝난다고 한다.
이렇게 건설적인, 혜빈이 말로 successful day가 시작되고 있고, 아내 올 날은 5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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