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아내 부재중 생존 보고서

남궁Namgung 2017. 3. 18. 02:01


아내가 지금 한국 방문 중이다. (3. 9 - 3. 27)


이번 방문을 계획하면서 물어 보니 지난 번에 한국을 갔던 것이 2013년 초라고 하니 4년 만이다. 나야 지난 가을에 학생들과 프로그램 관련해서 방문을 했었고, 그때 어머니와 형제 지인 등을 만나기도 했었지만 아내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은 아내는 한국에 방문해서 가족들을 만남과 동시에 이곳저곳 병원을 방문해서 이전에 검사 받았을 때와 특별하게 달라진 것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2월 초경에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건강검진을 할 곳 등을 알아 보는 등 리서치를 계속 해 왔었다. 


나나 애들은 모두 학기 중이기는 하나, 유빈이와 혜빈이도 많이 커서 제 할일들을 곧잘 해내고 있고 나도 다음 주 (3. 20 - 3. 24)가 봄방학인지라 이것 저것 일정을 고려한 후에 방문 날짜를 저렇게 정했다. 


이곳은 물론 세계 여러나라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다시 미국으로 재입국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등 다양한 소문들이 돌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내도 미국에 사는 여성분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에서 여러 사람들의 소식을 찾아 보더니 안심이 되었는지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출국했다. 


이제 아내가 출국해서 "홀애비" 생활을 한지 거의 열흘이 되어 간다. 


아내는 가기 전부터 먹고 사는 것이 걱정되는지 (물론 내 생각보다는 애들이 굶을 것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ㅎㅎ), 출국 며칠전부터 국이며 반찬들을 만들어 놓고 일부는 냉동실에 얼려 놓는다고 얘기를 했다. 4년 전 출국할 때도 그렇게 준비를 해 놓아서 잘 먹기는 했었지만, 이번에는 출국 준비 기간도 짧았고 음식 준비 이외에도 여러가지 처리할 것들이 있기에 그냥 두라고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한인 마트에 데워 먹거나 간단한 조리 방법으로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이 많이 있고, 종종 밖에서 외식을 하면 된다고 설득을 했다. 그래도 걱정되는지 곰국과 육계장을 일부 만들어서 냉동실에 얼려 놓고 갔다. (오늘 아침도 육계장을 녹여 먹고 출근 했다!)


요즘 계속 카카오톡 전화로 매일 연락을 하고 있다. 아내는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가족들이 모여 어머니 생신 축하 파티가 있었는데, 어머니와 청주에 같이 가서 다른 형제들을 만났다. 


그리고 수년 전에 세인트루이스에서 알게 된 대전의 한 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아주 친절히 안내해 주셔서 병원에서의 검진도 무사히 잘 마쳤다. 미국에서 알게된 후 가까이 지내는 다른 지인분들과도 만나고 있고,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 중으로는 다른 친지와 친구들을 만나려나 보다. 


여기에서 만나는 다른 분들에게는 "나나 아내 모두 떨어져서 각자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농담을 하곤 하지만, 아내는 분명 휴가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으로 떠나는 아내에게 "내가 휴가 보내주는 것이니 실컷 놀다 오라"고 큰소리 치기도 했었는데, 아주 농담만은 아니었다. 가족이 모두 움직여서 방문하면 더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아내라도 가서 오랫동안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먹고 싶었던 것고 실컷 먹고 오기를 바라는 맘이다. 


물론 이곳에 남겨진 나와 애들의 생활은 다소 팍팍해 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것은 똑같지만 내가 아침 일찍 유빈이를 데리고 나가면 혜빈이는 제가 혼자 준비를 하고 학교까지 걸어다니고 있다. 물론 걸어서 2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로 그리 멀지 않고, 동네도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라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아내는 이 점이 제일 맘에 걸리는 듯 하다. 그 맘도 모르고 혜빈이는 혼자서 문을 잠그고 학교까지 걸어 다니는 것이 무척 재밌는 눈치이다. 집에서 나오면서 내게 문자를 하도록 하고, 학교에 도착해서도 내게 연락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무척 기분 좋아하고 있다. 


물론 내가 신경을 쓴다고는 하지만 아내가 있을 때와는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오늘은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며칠전부터 가벼운 감기 기운이 있어서 음식도 제대로 못해 주고 저녁만 되면 일찍 자라고 했었다. 그래도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고, 제 엄마가 없어서 제 할일들을 알아서 해야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요구사항이 적은 편이다. 


지난 주 일요일에는 유빈이 콘서트도 있고, 다른 일도 겹쳐서 무척 바빠서 다운타운에 있는 콘서트 홀까지 내가 데려다 주지도 못했다. 일을 마치고 급히 다운타운으로 와서 콘서트를 보기는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정신이 없어서 유빈이 점심도 챙기지 못했다. 5불이나 10불만 챙겨줬어도 알아서 사 먹었을터인데 둘다 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오케스트라에서는 거의 초급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잘 따라다니면서 연습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제가 곡 설명 하기를 자원한다고 해서 세번째 곡 전에 나와 큰 무대에서 마이크로 말하는 부분까지 있었다. 항상 수줍어하기만 하고 나서지 않는 것 같더니 이런 모습을보니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 홀안에서 촬영을 못한다고 설명을 했지만 이부분만 영상으로 찍어야겠다 싶어 동영상으로 촬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직원이 와서 촬영 금지라고 해서 중간에 중단했다. ㅠㅠ>



엊그제도 내가 학교에서 늦게까지 (그래봐야 오후 다섯시까지이지만) 회의를 참석해야 했기에 3시에 끝나는 유빈이가 두시간 넘게 학교에서 기다려야 했다. 방과 후에 학교 근처 친구네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던 혜빈이도 그 친구가 학교에 오지 않아 혼자 집으로 걸어가 기다려야 했다. 6시가 거의 다 되어서 집에 도착했기에 무언가를 준비해서 줄 시간이 없어 팬다 익스프레스 (Panda Express)라는 중국음식점에 들러 요리를 사서 집에서 먹였다. 다른 때 같으면 그 시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배고프다고 하고 이런 저런 요구사항도 있을 터인데 사주는 것 먹고 별 말 없이 제 할일들을 하는 것 보니 분명 왠만큼 큰 것이 맞다. 



<요즘 혜빈이는 슬라임 (slime)인지 뭔지 하는 것 만들기에 푹 빠져있다. 세제와 콘 스타치, 풀 등 몇가지 재료를 넣으면 물렁물렁한 고무찰흙 비스무리한 것이 만들어지던데, 아마 요즘 제 또래 애들한테 인기있는 물건인가 보다. 학교 다녀와서 혼자 뭔가 툭탁툭탁하면서 잘 만들어졌다고 좋아라 하는 모습을 보면 애들은 애들이다.>



<아내가 가고 난 후 냉장고 안에 별로 먹지 않은 콩나물이 한 봉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 같으면 손도 대지 않았을터인데 아내가 한참 후에 오기 때문에 그냥 두면 분명 상해서 버릴 것 같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콩나물 국 끓이는 조리법을 인터넷으로 찾아 봤다. 레시피를 올린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고 써 놓았기에 나도 그들의 방법대로 끓여 봤다. 대충대충해서 그런지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배고플때 먹으면 먹을 정도가 되기에 국과 무침을 만들어 봤다. 그러고 보니 미역국은 끓여 봤어도 콩나물국은 처음이다!>


이제 열흘 정도만 있으면 아내가 돌아 온다. 아내가 없고, 엄마가 없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적당히 생존해 내고 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엊그제와 오늘 회의가 있어서 도서관 앞길을 걸어 봤는데, 벌써 꽃들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있다. 가만 보니 새싹을 피우고 있는 나무들도 있으니 이제 완연한 봄인가 보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은 최고 기온이 16도 정도 되고, 내일과 모레는 26도 (화씨로 거의 80도)가 넘는다고 하니 초여름 날씨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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