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와 애들이 예방접종 할 일이 있어서 병원에 갔었는데, 한 여자 직원이 참으로 친절하게 대해 줬다. 혼혈인가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자기 어머니도 한국인이라고 한다. 원래 친절하고 다정한 성격으로 보이지만 아마도 자기 어머니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 살갑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가 갔던 날은 예방접종이 없어서 예약을 했고 다시 찾은 날이 오늘이었다. (2015. 12. 31.)
오늘도 입구로 들어가는 우리를 보더니 자기 "패밀리"라며 환한 웃음으로 대해주고, 여러가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서 예방접종을 잘 마치고 나와 아내가 무척 만족하며 돌아 왔다.
자기와 동향이건, 성이 같건, 같은 나라에서 왔건, 다른 어떤 연관성이 있더라도 그저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데도 저렇게 친절하게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는 사람들이 무척 고맙고, 본 받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생각을 해보니 이름도 물어 보지 않은 듯 싶어 (전에 얘기를 했는데 내가 못들은줄도 모른다)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이름을 물었더니 애블린이란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아내와도 무척 친절해서 고맙다는 말을 나눴고, 고맙다는 감사 카드라도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얘네들 (미국인들)은 어딘가에서 서비스를 잘못 받았을 때 불평하는 편지도 잘 쓰지만, 좋은 서비스를 받았을 때 고맙다는 감사 편지도 자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저녁을 먹고 다시 타자기를 꺼내 전에 사둔 감사 카드에 짧게 고맙다는 말을 적었다.
오후에는 애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고 작은 세단을 운전해서 나가는데 출발하자마자 부터 운전하는 감이 이상했다. 뭔가 바닥에서 긁히는 소리가 나고 속도가 잘 붙지 않았다. 집 앞에서 50미터 정도 운전해 가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동네를 빠져나가기 전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 바닥과 둘레를 살펴 보려고 했더니, 조수석 쪽 앞 바퀴가 펑크가 나 있다.
어제 오후에 운전을 할 때만 해도 아무 문제 없었고, 그 후로는 운전을 하지 않고 집 앞에 세워 두었었는데 왠일일까... 생각만 하고 일단 다른 밴으로 나갔다가 왔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오수를 취하고 창 밖에 세워진 차를 보니 추운 날씨에 저대로 계속 두워서는 안될 것 같았다. 집 근처에 있는 카센터에 가져다 두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옷을 두껍게 입고 거라지에서 작업용 장갑을 끼고 작업을 시작했다.
예전에 펑크난 차의 타이어를 교체했던 적이 있어서 트렁크에 있는 장비를 꺼내 차를 들어 올리고 펑크난 바퀴를 꺼내었다. 그리고 차 트렁크에 있는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 끼우려는데 옆집 아저씨가 다가왔다. 아마도 밖으로 외출을 나가려다가 내가 집 앞에서 낑낑거리를 것을 보고 안쓰러워서 온 듯 싶었다.
무슨 일이냐기에 펑크가 났는데, 날이 추워서 그런지 모르겠다고 전혀 비상식적인 얘기(?)를 했더니 그럴리를 없단다. 그러면서 자기는 지금 개 산책을 시키러 가는데 한시간 정도면 돌아 온다고 돌아 와서 봐주겠다고 한다. 타이어를 집 앞에 두웠더니 잠시 후에 옆집 아저씨가 타이어를 끌고 가는 것이 보인다. 혼자 알아서 고치려는 것 같아 따라 나가 옆집 아저씨 거라지로 들어 갔다.
일전에도 장비를 빌려서 썼었는데, 정말 이 집 거라지에는 없는 장비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별의 별 것이 다 있다. 며칠 전에 밴의 배터리가 나가서 물어 봤을 때도 아저씨한테는 긴 점프케이블이 두개나 있어서 그것을 연결해서 시동을 걸었었고, 여름에 마루 작업을 할 때도 모두 그 아저씨의 장비를 빌렸었다. 농담 삼아 없는 것이 없겠다고 했더니 그럴 것이라면서 이곳에 살면서 하나씩 하나씩 사서 모은 것이라고 덧붙인다.
어쨌든, 바람 빠진 타이어에 컴프레서도 바람을 넣고, 타이어를 돌리면서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거품이 생기는지 천천히 확인하다가 구멍이 생긴 곳을 찾아 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못이나 나사가 박혀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작은 구멍에서 바람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아저씨는 송곳처럼 생긴 장비로 그 문제 발생지(!)를 크게 더 뚫고 나무젓가락 굵기 처럼 생긴 고무 (plug)를 다시 그 구멍에 막아서 바람이 새지 못하게 봉쇄했다. 그 아저씨가 천천히, 그렇지만 능숙하게 처리하니 마치 카센터의 전문가가 처리하는 것 처럼 금새 문제가 해결되었다.
항상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 인사까지 덧붙이고 타이어를 굴려 나오는데, 정말 주위에 친절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병원에서도 그 여직원의 친절에 감탄을 했는데, 저녁에는 옆집 아저씨가 그냥 지나쳐도 될 일을 나서서 처리해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그리고, 오늘이 2015년의 마지막 날인데, 이 날을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나의 힘듬에 불평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지 않고, 나를 도와주는 이웃에 고마워 하는 것으로 한 해를 정리할 수 있어서 그 또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밥을 먹고 앉아 있다가 이런 감사함을 그냥 묻혀 두고 지나가기 싫어 애블린에게 편지를 쓴 후, 대학원 시절에 나를 특별히 도와주셨던 교수님들께 짧은 감사카드를 썼다. 한 분은 학과장 교수님으로 학문적인 것은 물론 장학금이나 다른 재정적으로도 큰 도움을 주셨었고, 한 분은 나의 지도 교수님으로서 허접한 주제로 헤매일때 길을 보여 주고 끝까지 안내해 준 분이다. 매년 학회에 갈 때마다 찾아 뵙고 인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연말연시에 짧은 감사카드로 인사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타자기를 돌려 봤다.
남에게 도움이 되고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도움만 받고 사는 것은 아닌지 싶다. 새해에는 나도 이 지역과 사회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저절로 하게 된다.
아는 척 하지 않고 그냥 자기 일 해도 되었지만 자기 어머니와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극진히 대해 주었던 애블린, 그냥 차를 타고 나가 자기 볼 일을 보면 되는데 일부러 우리 집 앞으로 걸어와 도움을 적극적으로 제의했던 옆집 아저씨. 모두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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