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좋은 글

소리의 부재

남궁Namgung 2011. 2. 24. 22:09

 

 

아! 또 "새벽"에 깼다. 내게 일어나지 않던 이런 "이변"들이 요즘에는 그 발생 빈도가 잦고 있다. 얼마 전에는 새벽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책상에 앉아 이것 저것 뒤적이고, 컴퓨터 만지고, 책도 보다가 온밤을 꼬박 샌 적도 있었다. 내가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다니!!! 이건 35년이 넘는 나의 인생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억지로라도 잠에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의무였던 그 당직 시간에도 어떻게 해서든 눈을 붙이곤 했었는데...

 

오늘 아침에도 소피를 보려고 일어났다가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는데,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러다가 계속 뒤척이기만 할 것이 분명하기에 이불을 걷고 나왔다. 나이 들면 잠이 없어진다고 하시기는 하던데, 나의 이런 이상 현상에 그 이론을 가져다가 붙이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는 듯 하다. 뭔가 다른 이유가 없을까...

 

아침에 맞게 음악 사이트에서 괜찮은 클래식을 골라 리스트에 담고, 어제 끄적이다 만 글을 다시 불러 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수면에 빠질 수 없어 답답한 경우도 있지만, 새벽에 일찍 깨는 일은 대부분 나쁘지 않다. 천천히 밖이 밝아 오는 것을 보는 것도 좋고, 애들까지 모두 잠들어 조용한 집 안에서 나 만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기도 하다.

 

이렇게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내 고향보다 더 시골인 신성리라는 곳에 살던 GH라는 중학교 친구가 있었다. 그 신성리는 내 어머니 고향이기도 한 곳인데, 당시에는 하루에 버스가 한 대 (혹은 아무리 많았더라도 두 대)가 들어가는, 정말 시골인 동네이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때만 해도 대개의 신성리 친구들은 거의 한시간에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등교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걸어서 10분 정도 밖에 되지 않던 나는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나! 하지만, 대부분 학교에 지각하는 학생들은 나 같이 근거리에 사는 학생들이었으니...)

 

아마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하루는 그 친구 집에 가서 놀다가 자고 오기로 했었다. 여기 말로 이른바 슬립오버 (sleepover)였는데, 왜 그 밤에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 집에 가다가 길이 어두워져서 깜깜한 길을 걸어 그 친구 집에 갔던 것 같다. 나도 시골이기는 하지만, 정말 그 당시 친구를 따라 갔던 밤길은 정말 "칠흙" 내지는 "암흑" 같은 깜깜함 속으로 기억한다. 특히, 그 신성리에 비하면 한참 도회지라고 할 수 있는 "은산리"에 살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반딧불이라는 것을 들어만 봤었는데, 그 길을 가면서 반딧불을 보고 무척이나 신기해 했던 기억도 있다.  (그 후로도 반딧불을 계속 못보다가 이곳 세인트루이스에 와서 여름마다 보고 있는데, 그간 그렇게 공기 좋지 않은 곳만 골라 다닌 것인지...)

 

비슷한 시골이기는 했지만, 내가 계속 살았던 동네는 그래도 가로등이 띄엄띄엄 있었고, 깊은 밤이어도 일부러 불을 켜 놓는 가게들이나 다른 불빛들로 "완전 어둠"이라는 것은 경험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그때 걸었던 그 길은 그야말로 내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엊그제 유빈이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는데, 어른들용 신간 중에 눈길을 끄는 책이 있어 일단 집어 왔는데, 몇장을 넘기니 그런 비슷한 글이 있어 눈에 띄었다.  

 

 

 A friend drove me out to the island, and as we left the city late in the afternoon I made an important discovery: it gets dark at night.

The ferry dock was lit with the large mercury-vapor cobra lamps ubiquitous in cities; the glow was of an orange hue, flickering randomly like a loose fluorescent light. I had spent my nearly thirty years living in the city, first in a neighborhood and then in the heart of downtown Seattle. I had worked in restaurant for years, closing up late at night and walking home or taking the city bus well after midnight. I had the misguided impression that the darkness of the city was actual darkness. The streetlights in the evening give the impression that it is nighttime, yet you can see where you are going and walk around with no sense of darkness. I had never experienced the complete darkness of night except for the odd week or two of horse camp as a kid. Even then we stayed near the camp and never ventured too far from the buildings flooded with light. (p. 20)

 

계속 도시에서만 살다가, 도시에서는 좀 떨어진 곳에 집을 구입해서 살기 시작하는 과정의 처음을 묘사하는 부분인것 같은데, 이 저자도 자기 인생 30년 동안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어둠 (darkness)"을 경험하고 신기해 하고 있다. 저자 말대로,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밤"이라고 말을 붙이기는 하지만, 곳곳에 빛들이 많이 있고, 계속 거리를 달리는 차들도 불빛을 던지고 다니며, 가게와 빌딩에서도 완전 소등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그러다가 그런 "문명"과 차단된 곳에서 경험하는 밤, 어둠은 분명 도시에서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 것을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겠다. 다만, 지금 이 도시 속에서 내가 보고 속해 있는 밤이 밤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이전의 기억과 함께 다시 깨닫게 되었다. 여기의 밤은 곳곳 자동차 딜러샵과 디어벅스 같은 마켓과 다른 쇼핑몰 등에서 켜 놓은 불빛들로 환하다고 할 정도이지만, 아마도 지금의 신성리는 여기 밤의 어둠과는 또 다른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친구 집에 가서 경험하게 된 더 특별한 것이 있는데, 바로 "고요함 (silence)"이었다. 면 소재지에 있었던 나의 집은, 그 위치 또한 기가 막혀서 나의 집 반경 50미터 이내에 "주점"이 세개나 위치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유흥업소를 뭐라고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방음시설도 제대로 되지 않아 한밤중에도 취한 어느 동네 아저씨들이 고래 고래 노래 부르는 소리가 밖으로 "시원하게" 새어 나오는 일이 거의 매일이다 시피 할 정도였었다. 거기에다 집 앞으로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고, 차들도 자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새벽까지 거의 무슨 소리 (혹은 소음)엔가 노출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라디오나 텔레비젼을 틀어 놓는 시간도 많았으니, 사실 의도적으로 실감하지 않아서 그렇지 하루 중에 조용한 시간은 자는 시간 외에는 없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 친구 집에 가서 자고 난 다음 날의 "소음"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라고 할 정도였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신 어느 농부 아저씨가 "워쩌쩌쩌..." 하시면서 소를 몰고 논을 가시는 소리, 그리고 그 친구 집에 있던 소의 목에 걸려 있던 워낭과 크게 나는 소의 숨소리. 아마 이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시끄러운" 소리의 전부가 아니었나 싶다. 나도 시골 촌놈이었고, 아주 어렸을 때는 나도 그런 시골에서 자랐다고 들었지만, 그런 적막함과 가까운 조용함을 직접 느끼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 당시의 슬립오버가 내게 얼마나 소음에 둘러 쌓여 있는지도 알게 된 계기였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조용한 편이기는 하지만, 많은 시간은 이런 저런 소리를 피할 수가 없다. 어쩌면 도시건 시골이건 이제 내게 필요하지 않은 소리에도 너무 익숙해져서 조용하면 더 불안해 질 수도 있는 것이 현대를 살고 있는 여느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20 여년 전에 소리의 있음이 아니라 "소리의 없음"이 아직도 더 기억이 나는 것은, 이상한 것인지 정상적인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