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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을 위한 아다지오 (Adagio for strings)

남궁Namgung 2011. 4. 18. 10:49

중학교 2학년 혹은 3학년때. 군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낭송 대회가 있었다.

 

아마도 나의 청아한 목소리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아직도 내가 왜 우리 학교 "대표"로 뽑히게 되었는지 모른다. 나와 같은 동네 친구이기도 한 여자 동창생과 둘이서 한조가 되어 같은 시를 낭송했었다.

 

시는 국어 선생님께서 선정하셨던 것 같고, 음악은 음악 선생님께서 고르시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영어 선생님께서 특히 관심 갖고 많이 지도해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정확지 않지만) 부여 문화회관에서 있었던 그 행사 당일에 참가해서 당당히... 장려상을 수상했었다. 모든 참가자에게 상을 주었었는데, 우리 팀이 가장 먼저 수상한 팀 중에 하나였으니, 거의 꼴지였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당시에 낭송했던 시의 제목이 "휴전선"이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금방 찾을 수 있다.

 

 


 

 

 

 

 

휴전선

 

- 박봉우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야... 지금 읽어도 쉽지 않은 시였는데, 중학생 때 이런 명문장을 접해서, 나의 이런 문학성(?)이 길러진 것인가???
어쨌든, 그때도 생각했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나의 "음색" 혹은 "시색"은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시낭송 선수"로 선발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가끔 컴퓨터에서 작업을 할 때 음악사이트를 접속해서 어울리지 않게 클래식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가만 듣다 보니 아주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 나온다. "어, 이거 많이 들었던 음악인데..." 하면서 제목을 보니 "현을 위한 아다지오 (Adagio for Strings)".

 

바로 그 당시, 시 낭송 배경으로 깔렸던 음악이다. 그때는, 내 이름이 "현"이라서 음악선생님께서 특별히 저런 타이틀의 음악을 고르신 것 아닌가 하고 무식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찾아 보니 새뮤앨 바버 라는 유명한 작곡가가 만든 음악인가 보다. 특히, "플래툰 (Platoon)"이나 다른 여러 영화에서도 쓰였었다고 한다.

 

어쨋든, 아주 우연한 기회에, 오래 전 생각이 나서 감회가 무척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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