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좋은 글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남궁Namgung 2009. 8. 31. 07:58

 

 

방학 중에도 대부분 그랬었지만, 이제 개학을 하고 난 이후로 일주일의 패턴이 거의 비슷하게 진행된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저녁에 돌아 오는 일과에, 토요일에는 한 주일 일용할 양식을 구입하는 등 생존을 위한 쇼핑,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는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갔다 오는 일로 한 주의 사이클이 돌아 간다. 가끔 가까운 분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지만 잦지는 않을 것이고, 애들 학교나 내 학교에서도 행사가 있을 것이지만 이 또한 자주 있을 것은 아니다.

 

"다람쥐 쳇바퀴"라는 표현은 내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쓰지만, 그래도 한주일 한주일이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고, 그에 맞게 계획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여느 주말 아침과 마찬가지로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애들을 부지런히 준비시켜 교회에 갔다 왔다. 내게는 아직도 교회 가는 일이 어려운 어르신 댁에 앉아 한참을 앉아 있어야 하는 것 처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가끔 아내에게도 말하듯) 결혼 초에 교회에 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토요일 저녁에 술 약속을 잡아 늦게까지 술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에 비하면 상태가 많이 양호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무엇보다, 다 잘 살아 보자고 하시는 (너무 불경스런 표현인가?) 목사님 말씀을 듣노라면 꼭 종교적인 의미에서보다는 사는 방법에 대한 삶의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내용이 많아 경청하는 편이다. 오늘은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그 말씀의 근거로 삼은 요한복음의 한 구절이 내내 눈에 들어 왔다.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장면이고, 각 공사기관에서 취지만을 본 따서 "세족식"이라 이름 붙이고 "쑈" 비스무리하게 진행하는 장면이다. 바로 예수가 숨지기 전날 제자들의 발을 씯기는 내용인데, 그러면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하는 말 중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요한복음 13:16)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the servant is not greater than his lord, neither he that is sent greater than he that sent him. (John 13:16)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그 심오한 뜻이나, 제자들에 대한 교훈 등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인터넷에서 복사해서 붙인 저 한 문장이 내게 주는 의미가 전체의 문맥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저 구절을 문장 그대로 해석하고 싶고, 그래서 내게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다. 종은 상전보다 나을 수 없고, 보냄 받은 자는 보낸 자보다 클 수 없다는 말은 단순히 사회적, 종교적, 학문적, 경제적 지위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도 조직 생활을 좀 하면서, 계급이나 직급이 낮을 경우 그 보다 높은 사람보다 "크지 못한" 경우를 왕왕 목격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인격이나 품성, 혹은 단순히 "계급이 높다는 객관적 현실"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피라미드와 같이 낮은 위치보다 높은 위치의 숫자가 적은 조직의 구조상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정보가 많이 몰리고, 여러 계통의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등 조직의 특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저 구절을 조직생활이 아닌 사람 사는 모습에서 해석하고 싶다. 단순히 상하 관계에서 보다는 "적극"과 "수동"이라는 사는 방법에서 의미를 찾아 보고 싶다. (한글학자들께서 보시면 아주 화내실 표현으로 생각되는)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낸 자"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적극과 수동은 그 사람의 크기를 잴 수 있는 하나의 잣대로도 사용될 수 있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업무에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더라도 그 일이 좋아서 즐기면서 하는 사람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도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일을 하거나 삶을 즐기는 사람은, 단순히 주어진 것을 마지 못해서 하거나 해가 뜨고 닭이 우니 하루를 사는 사람보다 분명 "크다 (great)"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다고 표현하는 것도 어떤 일을 적극적으로 처리하는 사람과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만을 하는 사람을 빗댄 비유가 아닐까.

 

새 학기와 새로운 1년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이 즈음, 더 눈에 들어 오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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