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목사 친구가 찾아 낸 친구 목사

남궁Namgung 2009. 7. 1. 04:09

아무래도 한가하게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학기 중에 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생각도 하게 되고, 미뤘던 일도 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오랫동안 연락 하지 못하고 지내던 친구나 알던 분들께 이메일 등으로 연락하거나, 연락이 끊긴 분들은 연락처를 찾아 보는 일이다.

 

지난 주에는 고등학교 적, 그리고 그 이후에도 종종 연락을 하며 친하게 지내던 Y라는 친구가 생각났다. 이유없이 내게 잘 대해주고, 우리 집에도 놀러 오고, 나도 그 친구 집에 놀러 가기도 했었으며,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친구라 그 친구가 다니던 교회에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하면 종교에는 무관심했던 내가 그저 바람쐴겸 해서 놀러 가기도 했었다.

 

90년대 초반이었지만, 얼리 어답터 (early adaptor) 비스무리하게 이런 저런 카메라나 전자 제품 등을 잘 다루기도 하고 관심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 친구가 가져온 카메라로 수업시간이나 고등학교 교정 이곳 저곳에서 찍은 사진,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여선생님을 몰래 찍은 사진 등이 아직도 내 앨범에 꽂혀 있다.

 

학창 시절에 그 유명한 "88 오토바이"를 그 친구가 학교로 끌고 와서, 나도 한번 빌려 타서 집에 가던 중에 경찰 아저씨한테 걸릴 뻔한 기억도 있었다. 또, 꽤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던 고향이라서 가끔 "무슨 무슨 문화제"가 열리면 밤 늦게까지 하는 야시장에 몰래 가서 막걸리와 김치전 같은 것을 사와 교정 어두운 구석에 가서 막걸리를 홀짝이기도 했었다. (독실한 이 기독교 신자 친구는 그렇게 꼬셔도 마시질 않더라는...)

 

그 후, 그 친구는 서울의 한 신학대학에 들어갔었고, 그러면서도 어쩌다 연락했었고, 큰 맘 먹어야 찾아 올 수 있는 내가 다니던 학교까지 찾아 와서 같이 치킨집에 가서 맥주 한잔 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도 비기독교 신자인 나만 마셨던 것 같다.)

 

이 친구의 아주 특별한 점은 내 생일만 되면 어떻게 기억하는지 전화를 해서 "몇월 몇일이 되는 네 생일이 잊혀지지 않아서 죽겄어..."라며 우스개 소리와 함께 농담도 하곤 했다.

 

그 후 이 친구는 신학교를 졸업했고, 전도사가 되어 어느 어느 교회서 일한다 (사역한다고 하는건가?)는 얘기를 직접 듣거나 전해 듣고, 어쩌다가 내가 공부하러 다른 곳으로 가게 되고, 그러다가 조금씩 연락이 끊어지면서 한참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 후 재작년 초였던가... 어떻게 집전화를 찾았는지, 이 Y라는 친구가 당시 내가 살고 있던 대전 집으로 전화를 했다. 내게는 연락 (내지는 허락)도 없이 결혼을 했고, 목사 안수도 받았으며, 며칠 후에 미국으로 가서 사역활동을 계속하게 된다며 잠깐 짬을 내 볼 시간도 없다는 아쉬운 인사를 건냈다.

 

그 후에 또 다시 서로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내 메일 주소록을 보니, 아주 예전에 연락하던 이메일 주소 밖에 없었다. 그 메일로는 연락해 봐야 될 것 같지 않고 해서 네이버 검색창에서 "목사 LA"라는 검색어와 함께 그 친구를 이름을 검색했더니... 후후... 세상 참 편해 진것인지 무서워 진것인지, 그 친구가 게재한 것으로 보이는 게시물이 몇개 뜨고, 그 친구가 한 "설교" 방송까지 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 그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가 맞다. 서로 한참을 그간 소식 나누고, 항상 나누던 식으로 농담도 하고, 서로 사는 지역으로 놀러 오라는 "초청"도 해 보고... 이번에도 역시 내 생일때가 되어, 내 생각이 나더라는 그 감동스런 우정도 확인해 보고...

 

LA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거리는 서울 부산의 몇십배가 될지 모르지만, 외국에 나와서, 그것도 같은 나라에 있으면서 전화 통화를 하는 그런 반가움은 또 다른 것이었다. 나도 그렇고, 그 친구도 그렇고 최소한 당분간 더 머물 것이니, 언젠가는 이 나라 어디선가 한번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만나면 술 한잔 하자고 했더니, "그래,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보자"고 받아치는 이 친구 목사님!

 

친구를 외국에서 우연히 찾아 연락하는 반가움과 함께, 내 친구 중에 목사님이 생겼다는 신기함도 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목사님께, "야!, 너"와 같은 식으로 마구 불렀네... 죄 받으려나... 친구가 대신 기도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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