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일이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한 달여가 넘는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알차게 보낸 것 같기도 하고, 항상 그렇듯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간을 다소 뿌듯하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번에 읽은 책 한권 때문이다. 우선 책 한권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도 있고, 이 전의 책과 마찬가지로 읽으면서 여러가지 배우고 느끼게 해서 지적인 만족감도 컸다.
바로 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의 아웃라이어 (Outliers)라는 책이다. "아웃라이어"는 통계학에서 특히 자주 쓰는 용어인 듯 한데, 다른 평균치와는 훨씬 다른 곳에 위치한 데이터를 칭하는 것 같다. 이 책의 부제가 "성공의 비밀 (The Story of Success)"라고 되어 있으니, 아웃라이어는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비범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봐야겠다.
말콤 글래드웰은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비결에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도 분명 작용하고 있으나, 그 사람이 처한 시대 상황이나 가족의 환경, 문화적 요소 등도 그들의 성공에 큰 작용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즉, 빌게이츠의 성공에는 그가 컴퓨터에 빠져 긴 시간을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가 다녔던 사립 고등학교에서 그 당시에 아주 희귀했던 컴퓨터를 설치했고, 인근의 학교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배려하는 등의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유명한 프로그래머 빌 조이 (Bill Joy)의 성공도, 그가 미시건 주립대학에 입학했을 그 해에,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컴퓨터 센터가 미국에서는 흔치 않게, 그 대학에 설치되어서 하루 종일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던 것이 그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그 이외에, 비틀스의 성공이나 유대인 변호사의 성공도 이와 비슷한 접근으로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결론 부분, 책의 맨 끝장에 써 있는 다음 문장의 그의 주장을 함축하는 것 같다.
"Their success is not exceptional or mysterious. It is grounded in a web of advantages and inheritances, some deserved, some not, some earned, some just plainly lucky - but all critical to making them who they are. The outlier, in the end, is not an outlier at all."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갖지 못했던 잇점이 작용했거나, 다른 사람들의 받지 못했던 유산들이 있엇고, 그런 것들이 그들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작용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말대로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얘기와 다소 통하는 얘기일 수 있겠다. 고 정주영 회장의 성공에는 그의 근면과 성실과 투지가 있었지만, 그 이외에도 그 분이 사업하던 당시에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 경제적 상황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서태지의 성공에는 그의 음악적 재능과 노력이 분명 있었겠지만, 당시 그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었던 시대 상황과 tv 출현 등등 "운"이나 다른 요소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말콤 글래드웰의 주장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저자는 이 외에도 문화적인 환경을 들면서 쌀을 경작하는 아시아권 국가들의 수학 성적이 좋은 것을 연관짓기도 한다. 다른 문화권의 경작문화와는 달리 거의 1년 내내 노동집약적인 방법으로 경작해야 하는 쌀 농사의 경우에는 부지런할 수 밖에 없고, 그런 근면을 요구하는 문화가 중국, 일본, 한국과 같은 쌀 경작국가 청소년의 높은 학업 성취도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겠고, 나 스스로도 "정말일까?"라고 갸우뚱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적어도 "아.. 이런 방법으로도 분석할 수 있겠구나... " 하는 그의 독특한 방법은 인정을 해주고 싶다.
특히나, 한 챕터 전체를 통해서는 우리나라 여객기 대한항공이 괌에서 추락해서 사고가 발생했던 것을 다루고 있다. 사고 당시 기장과 부기장, 엔지니어 간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권위주의 문화로 인한 폐해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권위 (authority)"에 대한 우리의 사고 방식, 특히 언어 측면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조정실에서의 대화를 통해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엔지니어간의 위계질서에 의한 소통의 단절이 대형참사로 이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위험 상황이 왔어도 권위자에게 도전적으로 비칠 수 있는 말이 아닌, 에둘러서 말하는 우리의 언어 관습으로 인해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고, 그런 이유가 대형 참사의 한 이유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인이 쓴 논문의 일부를 인용한 것을 보면, 아주 자주 일어나는 일상의 한 모습을 잘 표현한 예라고 생각이 되면서도, 이런 책이 미국 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데, 과히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우리 문화의 일부가 전세계 사람들에게 벗겨져 보인듯 해서 낯이 부끄럽기도 하다.
(*책에서 인용한 부분을 옮겨 본다. 우리나라에서 번역, 발간한 것과는 다소 다를 수 있겠다.)
과장 : 날도 춥고 배도 고프네...
(진짜 의미 : 누가 마실거나 먹을 것 좀 안 사주나?)
부하직원 : 음료수라도 한잔 하시지요?
(진짜의미 : 제가 한잔 사겠습니다.)
과장 : 괜찮아, 신경쓰지마.
(진짜의미 : 한번만 더 얘기하면 그렇게 하지.)
부하직원 : 배고프실 것 같은데요, 나가실까요?
(진짜의미 : 제가 사겠습니다.)
과장 : 그럴까?
(진짜의미 : 그럼 그렇게 하지.)
책 뒤의 참고자료를 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논문으로 쓴 것 같고, 그러니 위와 같이 "별로 희귀하지 않은 상황"을 잘 알수도 있었겠다. 저자는 위와 같이 말을 주고 받기 위해서 대화의 참여자가 다른 상대의 동기나 욕구 등에 신경써야 하는 그 미묘함(subtlety)이 아름답다고 하고, 언어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무감각이나 무관심을 허용하지 않는 아주 고급화 되었지만, 이 같은 방식은 상대방이 그 진의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많은 시간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지, 항공기 조정실과 같은 곳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취지로 이어나가고 있다.
직장생활을 했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저 위의 대화, 그리고 저 같은 대화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우리 문화의 한 부분, 그런 것들이 일정 영역에 있어서는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고,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같은 문화적 측면을 제거하는 순간 성공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에 따르면 그 사고 이후, 대한항공에서 미국인 책임자를 고용하였고, 그가 모든 항공관련한 모든 업무를 영어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가장 안전한 항공사 중의 하나로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다.)
개인의 성공에서 회사나, 한 문화권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말콤 글래드웰은 이전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다양하고 흥미로운 소재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럼, 성공하려면 어쨋든 좋은 시기나, 좋은 집안, 좋은 환경에 있어야만 되는것 아냐? 라는 질문이 가능하겠고, 내가 이해하기로는 저자의 답은 "Yes"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한 사람들은 그 분야에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런 환경적 요소가 필요조건을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겠다. 또, 성공 사례로 든 예들이 대부분 "정말 대단히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점과 "금전적 성공" 등 세속적인 성공 사례에 국한되었음도 한계라면 한계일 수 있겠다.
어찌되었든, 좋은 책 한권 다 읽게 되어 뿌듯하고,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책 몇권도 도서관서 빌려 놓았는데, 눈덩이에 눈이 붙어 커지듯, 한 책에서 다른 좋은 책을 발견하고, 그러면서 또 다른 책을 알게 되는 과정도 기분 좋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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