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SL 얘기

내가 영어로 공부하지만...

남궁Namgung 2008. 11. 5. 06:43

 

역시 북적북적한 기분이 드는 날이다. 인터넷 사이트와 신문, 방송(아직 보지는 못했지만)에서는 '역사적인' 선거에 관해 계속 뉴스를 날리고 있다. 아침에 학교로 오기 전 유빈이를 킨더에 데리고 갔었는데, 그 초등학교가 투표소로 지정이 되었는지 아침 일찍부터 투표를 하려는 사람으로 약 50여미터 죽...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다. 정확한 절차는 몰라도, 이곳 투표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고 텔레비젼에서도 자주 나오곤 했었다. 대학 근처로 오니, 이 근방의 투표소에서도 사람들이 밖으로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선거라 투표율도 상당히 높게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 것 같다.

 

잘은 몰라도, 공화당에 속한 흑인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정도로 거의 대부분의 흑인표는 오바마로 향하는 것이 확실한 듯 하다. 박사과정을 같이 시작한 티파니(좀 있다가 등장할 주인공)도 동그란 뱃지에 "YES, WE CAN!"이라 쓰인 오바마의 로고를 가방에 붙이고 다닌다. 아무리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흑인이 오바마에게 투표한다면 인종과 상관없이 정책이나 인물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 선거다.

 

어쨌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나라의 경제를 살려서 내가 공부하는데도 지장이 없도록 했으면 하는, 이토록 역사적인 순간에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을 해 본다.

 

 

내일 모레, 범죄학 이론 시험이 있어서 그 준비로 좀 어수선한 상태다. 문제 자체도 그렇고, 이론들도 머리 속에서 확고히 자리잡지 않은 상태에서 준비하고 시험을 치르려니 당연할 수도 있겠다. 이 책, 저 책을 뒤져서 정리하고 있지만 그래도 문제가 뭘 요구하는지 모르는 것이 있다. (이번 시험은 여덟 문제를 미리 나눠 주고, 시험 당일 한 문제를 선택해서 쓰는 것이다. 자기가 정리한 노트를 참고할 수 있도록 했으니, 오픈 북 테스트에 준하는 시험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점심까지 정리를 하다가 아무래도 잘 정리가 되지 않아, 위에서 말한 오바마 지지자 티파니에게 이메일로 물어 봤다. '얘가 내 메일을 받고 이상하게 생각하려나?' '자기가 공부한 것 알려 달라는 식으로 들리지는 않으려나?'하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있었지만 자존심 챙기고, 이런 저런 다른 생각을 하기에는 내 처지가 그리 넉넉치가 않아 그냥 'send' 버튼을 눌렀다.

 

점심 먹고 와 보니, 친절하게 답장이 와 있다. Annyong이라고 인사로 시작한다. 주위에 친한 한국인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마도 그 애한테 배웠나 보다. 그러면서 제 생각을 쭉... 적었다. 내용 상으로는 크게 대단한 것은 없었지만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미안하네...), 그래도 다른 학생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고할 수 있어서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나 말고도 다른 학생들도 다 고생하고 있으니 대단하게 생각할 것 없다는 조언과 함께...

 

사실, 이 학과 학생들이 모두 흑, 백인이라서 학교 생활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미국에서 이런 생각한다는 것이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한국인 한명 없고, 그나마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동양인 한명 없어서, 그야말로 적지(!) 한가운데 나 혼자 있는 기분을 느낄때가 간혹 있다. 다행 티파니나 다른 이라크 2세 알렌 같이 친절하게 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큰 위안을 삼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늘 허전한 느낌이다. 달리 생각하면 한국인으로서 내가 이 학교의 '개척자(!)'가 되려나... 미국에서 초기에 유학을 와서 각 유명 대학을 그야말로 '개척'했던 선배님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간혹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내가 한국말로만 공부한다면 니네들이 지금 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잘 할 수 있다..."

 

전혀 쓸데 없는 생각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생각을 바꿔서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영어로 공부하지만 그래도 니네 이상으로 잘 할 수 있다..."

 

이 곳에 와서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내가 ... 한다면..."이라고 위안 삼아야 아무 쓸데가 없다는 생각이다. 내 현실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면 그에 맞게 기대 수준을 조정하면 되는 것이고, 더 잘 할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면 그에 맞게 나의 목표를 높여서 생각하면 되는 것이지, '내가 한국말로 공부한다면...'하는 식으로 핑계꺼리를 삼는 것은 그야말로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내일 하루 종일 시험에 대비한 최종 정리를 해야 할 것이고, 그 후로도 몇몇 가지 롸이팅 할 것이 있다. 이렇게 한 학기가 조금씩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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