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찰 생각

통계 혹은 숫자 놀음

남궁Namgung 2004. 1. 24. 19:19

여기 시간으로 어제 밤에 글을 하나 써서 발행하고, 지금 아침에 일어나 다시 하나 써서 보내드리는데, 한국 시간으로는 같은 날 두개의 글이 한꺼번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설날 선물로 드립니다. ^^


연휴가 끝나가고 있겠네요. 여유롭고 한가한 나머지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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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http://hyonyya.netian.com)





통계, 혹은 숫자 놀음




엊그제 (2004. 1. 22.)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의 범죄 통계에 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같은 영국이라고 하더라도 잉글랜드와 웨일즈 (England and Wales) 지역의 각종 제도는 스코틀랜드 (Scotland)나 북 아일랜드 (Northern Ireland)와는 다릅니다. 제가 인용하거나 참고하는 자료는 거의 대부분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에 관한 것이고 이는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다만 편의상 영국이라 하고, 특별한 경우에는 따로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에서의 범죄 통계 조사는 두가지 방법에 의해서 행해집니다. 첫째는 범죄 신고를 접수하는 경찰에서의 범죄 통계입니다. 경찰이 신고를 받거나 자체적으로 조사하게 되는 모든 범죄들이 통계에 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경찰이 신고를 접수했다고 하여 (reported to the police) 접수된 모든 범죄가 경찰의 통계에서 범죄로 기록(record)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길거리에서 싸우던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그 후 서로 원만히 화해를 했다며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면 경찰에서는 그를 발생한 범죄로 기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중간에서 경찰이 ‘별것 아닌데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어떠냐’고 설득하여 해결될 가능성도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전화나 구두로 경찰에 신고되는 범죄는 100건이라 하더라도 실제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처리되어 범죄로 기록되는 것은 그 절반이나 절반 이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경찰이 범죄에 관한 통계를 발표한다고 하더라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여 생긴 것이 바로 영국 범죄 조사 (British Crime Survey)라는 제도입니다. 이는 무작위로 시민들을 선택하여 지난 기간 동안 범죄에 연루된 적이 있는지, 그 범죄는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설문조사 (interviews with individuals)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던 범죄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고, 경찰의 범죄 통계보다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설문의 대상이 주로 성인이고 개인적인 범죄의 경험에 대한 조사이기 때문에 어린이 대상 범죄나 돈세탁 혹은 기업 범죄 등 소위 ‘화이트 칼라 (white collar)' 범죄 등은 기록되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되었다고 하는 범죄 조사 결과도 바로 두 번째의 방법으로 실시된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이번 조사는 2002년 10월과 2003년 9월 사이에 일반 주택에서 거주하는 16세 이상의 성인 36,854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74%의 응답률을 보였다고 합니다.


우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전반적으로 범죄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폭행 (violence)은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17%가 증가했으나, 이는 범죄 기록의 표준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2. 주거침입 강도 (domestic burglary)는 전년에 비해 2% 감소했으나, 통계상으로 비중있는 수치는 아니다.


3. 차량 절도 (vehicle theft)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영국 범죄 조사 (이하 BCS라 줄여서 칭하겠습니다.)에 의하면 5% 감소, 경찰 통계에 의하면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4. 범죄 피해자가 될 확률은 약 27% 정도인데, 이는 1981년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5. 사법 체제 (criminal justice system)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전과 비해 큰 변화는 없다. 구체적으로, 범법자를 처벌함에 있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0%, 사건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6%, 범죄가감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33%, 범죄 피해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31% 등이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사항을 밝히고 있습니다. 영국의 강도 (burglary)에 대하여, 2002-2003년 사이에 총 97만 4천여건의 강도 사건이 있었는데, 가장 많이 도난된 것은 보석류 (jewellery)였고, 피해자의 83% 정도는 ‘정신적으로도 영향을 받았다 (emotionally affected)'고 하며, 그 강도 사건의 절반 정도만이 보험에 가입된 것이었고, 주거침입 강도 사건의 평균 피해액은 500 파운드 (100만원) 였다고 합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소외받거나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 6.9%가 강도 피해를 당했던 반면 잘 사는 지역 사람들의 경우는 단 2.7%만 피해를 당했다고도 합니다.


위 통계 발표를 보시면 대충 짐작하실 수도 있지만, BCS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설문조사는 시민들을 상대로 개인적인 범죄 (절도 등)나 주택에 대한 재산 범죄 (주거침입 절도, 강도 등)에 대해 피해를 조사하는 (victimisation) 것으로, 영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실시되는 설문 조사 중 하나라고 합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설문 조사는 조사원들이 시민들을 직접 상대해서 조사하는 것이므로 범죄 피해자들이 경찰에 범죄를 신고할 때 생기는 변수, 혹은 각 지역의 경찰이 같은 범죄를 서로 다르게 기록함으로써 생기는 변수에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조사는 단순하게 얼마의 범죄가 발생했었는지에 대한 수치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죄가 발생했던 상황이나 범죄인의 태도까지도 조사함으써 범죄 감소 방안을 모색하거나 범죄 감소를 위한 노력들이 얼마만한 효과가 있는지 측정하는 중요한 방안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가정 폭력이나 스토킹 (stalking) 혹은 성범죄와 같이 경찰에 잘 신고되지 않는 범죄를 파악하는데 아주 효과적인 조사가 되었습니다. BCS는 1982년부터 2000년까지는 대부분 격년으로 실시되다가 2001년부터는 매년 조사하여 그 결과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의 범죄에 대한 통계는 어떨까요? 물론 우리나라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경찰의 범죄 통계입니다. 경찰청 공식 웹사이트에는 각 분야별로, 예컨대 경무, 수사, 형사 등의 업무 분야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통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중 BCS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형사’ 분야의 5대 범죄 발생, 검거 현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경찰청 웹사이트의 자료에 의하면 2002년 한해 총 957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994명이 검거되었으며 5,906건의 강도가 발생하여 5,957명이 검거되었습니다. 경찰청이 항상 ‘자랑’하듯이 단순한 숫자만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경찰을 100% 이상의 검거율을 보이고 있는 셈입니다. (발생보다 검가가 많은 것은 이전 년도의 사건이 해결되는 수치가 같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통계청의 웹사이트에는 ‘주로 찾는 통계’라는 메뉴를 만들어 놓고, 각 분야별로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통계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범죄, 재해, 사고’라는 메뉴에 들어 있는 범죄입니다. 이 통계는 대검찰청 범죄 분석 통계의 자료를 올려 놓고 있는데, 이 자료도 각 주요 범죄의 발생과 검거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2년도 총 범죄 발생이 1,977,665건이었고, 이 중 1,826,852건이 검거되었으며, 총 검거 인원은 2,267,557명이었다고 합니다. 언뜻 보아도 90%대가 넘는 검거율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수치를 제공하면 우리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는 그 점이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의 범죄는 그 발생이 어찌 되었든 90%가 넘는 검거율을 보이고 있으니 경찰만 믿고 안심하고 살겠다고 생각할까요?


통계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김찬호의 ‘사회를 보는 논리’라는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통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그 동안 발표해 온 통계들은 국제적으로도 신뢰를 잃은지 오래인가 보다. 미국의 도서관에 가 보면 한국의 통계 수치 밑에 “이 통계는 별로 믿을 게 못된다”라는 주석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금도 한국은 통계를 찾기가 어려운 나라, 그리고 그나마 나와 있는 통계도 믿기 어려운 나라로 낙인찍혀 있다. 그래서 지난 98년 IMF는 한국 정부와의 협의문에 ‘정확한 경제 통계의 작성과 공표’라는 요구를 포함시켰다.


...


통계의 생성, 전달, 수용 양식을 새삼스럽게 반성함으로써 우리는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격상시킬 수 있다. 그 의미는 단순히 사회 과학도의 연구 방법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접하는 숫자들에 막연하게 과학적인 권위를 부여하며서 맹신 할 것이 아니라, 그 근거를 다시 한번 캐묻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한 태도는 진정한 민주 사회를 만들어 가는 지적 토대가 된다. (pp. 84-86)


꼭 위와 같은 지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주위에서 통계를 이용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부나 정치인들을 많이 보았고, 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는 통계를 보고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통계가 얼마나 신빙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일 것입니다.


영국에서 BCS라는 설문을 하게 된 한 이유도 바로 경찰이 자체적으로 접수, 기록하는 범죄 통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통계는 단순히 그 수치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통계를 통해 사회의 현상을 분석하고 장래의 정책 수립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이고 이러한 점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범죄 통계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만약 우리의 범죄 통계를 이용해 정책이 만들어 지고 집행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없을 것인가라는 보다 더 구체적인 부분까지 의문되는 점이 많습니다. 또 영국의 BCS라는 설문 조사를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실시해 본다면 과연 우리 경찰의 통계와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그 차이를 우리가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깁니다.


범죄는 사회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기는 결과물이라는 주장도 있고, 범죄도 사회 문제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범죄가 우리 사회의 모습을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범죄의 수치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개략적으로라도 파악하고 있는지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사이트>


British Crime Survey
http://www.homeoffice.gov.uk/rds/bcs1.html

Violent crime up by 14% (BBC, 2004. 1. 22.)
http://news.bbc.co.uk/1/hi/uk/3419401.stm

Cracking the crime figures (BBC, 2004. 1. 22.)
http://news.bbc.co.uk/1/hi/uk/3420267.stm

Crime in England and Wales 2002-2003 (Home Office)
http://www.homeoffice.gov.uk/rds/crimeew0203.html

2001 British Crime Survey Technical Report (Home Office, 2002. 8.)
http://www.data-archive.ac.uk/doc/4786/mrdoc/pdf/4786userguide.pdf

British Crime Survey Training Notes (Home Office, 2000. 3.)
http://www.data-archive.ac.uk/doc/4786/mrdoc/pdf/4786trainingguide.pdf

Crime in England and Wales: Quarterly Update to Septem 2003 (Home Office, 2004. 1. 22.)
http://www.homeoffice.gov.uk/rds/pdfs2/hosb0304.pdf

Burglary - the hidden impact (BBC, 2004. 1. 23.)
http://news.bbc.co.uk/1/hi/uk/3419985.stm

Violent crime up by 14%(BBC, 2004. 1. 22.)
http://news.bbc.co.uk/1/hi/uk/3419401.stm

경찰청
http://www.police.go.kr

주로 찾는 통계 (통계청)
http://kosis.nso.go.kr/juro/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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