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실패는 언제는 씁슬하다. 모든 일에 항상 성공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같이 종종 실패를 맛보는 사람에게도 실패는 낯설고 기분 좋지 않다. 어찌 생각하면, 실패라는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라도 가급적 "실패"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뜻을 갖고 있는 단어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어," "이번에는 뜻대로 되지 않았네" 라는 식으로 풀어 표현하는 것이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에 더 유용한 표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터넷 사전을 찾아 보니 실패의 사전적 의미는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이라고 한다.)
이번 학기에 범죄지도 (Crime Mapping) 과목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수업 중의 프로젝트를 학술 대회에 출품해서 발표하는 것도 좋겠다며 몇번이고 권장하곤 했다. 학회에 참석하다 보면 주로 대학원 과정생들이 포스터 세션에 참석해서 그들의 연구주제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지만 학부생도 같이 참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주제만 참신하다면 학부생의 컨퍼런스 참여는 아무리 권장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유용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더구나 내 수업에서 학생들이 과제로 발표하는 프로젝트들은 대개의 경우, 컨퍼런스의 학생 분야에 참석해서 발표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고급의 연구물일 경우가 많았다.
지난 학기에도 학생들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권유했었는데 흥미를 보이는 학생이 없다가, 이번에는 두명의 학생이 나의 지도를 받아 학회에 참석해 보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의 학술대회 참여 비용을 일부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그 프로그램을 지원해서 돈을 지원받고 가면 더 좋을 것이라고 알려 주고, 필요한 절차 등이 나와 있는 학교 웹사이트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지난 9월말 경부터 차근차근 이 펀딩을 지원 받을 수 있는 과정에도 지원하고 프로젝트도 동시에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함께 준비해 가면서 동시에
다행히 두명의 학생은 자신들이 관심을 보였던 주제이기도 하고 스스로 자원한 과정이어서 그런지 둘다 의욕적으로 프로젝트 진행에 참여해서 꽤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 발표물을 바탕으로 이번 주 수요일에 있었던 기말고사 이후에 다시 만나 내 의견을 첨가해서 더 수정해서 학회에 발표할 수 있는 최종(안)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학생들의 학회 참여 여행 펀딩을 제공하는 부서에서 발표하기로 한 것이 오늘 오후 12시 25분이었다. 학생들에게는 내 앞에서 실제와 마찬가지로 연습하자고 제의해서 학과 컴퓨터실에서 11시 반에 모였다. 두 학생은 이전 교실에서 발표할 때와 마찬가지로 큰 무리없이 발표를 했고 나의 간단한 "관전평"을 전해 준 후 함께 그 사무실로 가서 부서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잘 마쳤다.
두 학생들의 주제는 최근 미국에서 범죄나 형사정책 분야에서 가장 핫한 이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마리화나 합법화로 인한 범죄를 지도를 통해 분석하는 것이었다. 덴버시에서 웹사이트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는 마리화나 범죄를 지리정보를 통해 지도에 표시하고, 마리화나 판매소와의 거리 분석을 통해 범죄 취약지 혹은 유발지로 생각되는 장소(마리화나 판매소)와 실제 범죄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자 한 것이었다.
내가 지도 교수로서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전에 학술대회나 컨퍼런스에서 보아왔던 다양한 포스터나 주제 등과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다고 생각되었기에 두 학생들의 주제와 발표는 무척 만족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 사무실에서 약속한 대로 오늘 오후에 보내온 결과는...
안타깝게도 펀딩을 줄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경우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 구체적인 이유는 쓰여있지 않았지만, "그 부서의 평가자들 나름대로는 자기들의 기준에 미치지 않았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학생들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이 "불가" 결정이 마치 내가 오랫동안 해 왔던 것에 대한 리젝트인양 마음이 좋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계속 긍정적인 얘기만 계속해서 다 될 것처럼 생각해 왔을 학생들이 혹시나 상심하지 않을까 그것이 염려되기도 한다. (나야 내 개인적인 연구 발표로 어쨋든 가게 될 여행이었지만, 오늘 대화 중에 한명의 학생은 아직 한번도 비행기를 타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더 미안하게 생각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오전에 과 컴퓨터 실에서 연습할 때, 아니 이미 그 이전부터도 학교의 여행비용 담당하는 부서에서 펀딩을 받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처럼 생각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앞질러 상의할 정도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로 이 과정에 임하지는 않았나 되볼아 보게 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혹 내가 가졌던 이 자신감은 우리의 주제나 연구물에 대한 지나친 과신으로 인한 오만에 가까운 태도는 아니었는지 되새김해 본다.
이번 일을 통해, 비슷한 경우가 다시 있을 경우에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배움을 얻게 되기도 했다.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어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긍적적이거나 낙관적인 자세도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교훈을 가슴 아프게 배운다.
(물론 오늘의 프리젠테이션은 학교에서 펀딩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로서, 두 학생이 희망하면 여전히 자비로 다녀올 수 있다. 호텔과 비행기 비용이 꽤나 비싸기 때문에 두 학생이 어떻게 결정할지는 나중에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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