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학기말 통과 의례

남궁Namgung 2018. 12. 13. 09:40

며칠 전부터 오늘 있는 테스트를 끝내고 시내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안되겠냐고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물론 유빈이 얘기다. 


다음 주가 기말고사 기간이고 그 이후로 겨울방학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전인 이번 주부터 간단한 몇몇 시험이 있는 모양이다. 극장에 가서 영화는 보고 싶은데 마땅한 이유가 없어 그나마 제 생활 중에서 우리(나와 아내)와 거래(?)할만 것이 시험을 무사히 마친 수고에 대한 위로 차원의 격려라고 생각하여 고른듯 하다.


아침에 유빈이를 내려주는데 그때부터 오늘 방과 후에 시내에 극장에서 시작되는 영화 시간을 알려 주면서 허락을 구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가 시험인데 영화 볼 정신이 되냐?"고 핀잔하듯이 대꾸를 하고 사무실로 향했지만 마음은 이미 절반 이상 허락한 상태였다. 


유빈이를 데리러 유빈이 학교 가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아내는 주중에 있을지 모르는 과제와 다음 주 기말고사에 대한 준비가 염려스러워 망설이고 있었다. 유빈이를 만난 후 둘이 직접 통화하더니 결국 아내도는 영화를 보여 주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브로드웨이(Broadway) 길가에 있는 극장에 데려다 주기 위해 다시 시내 쪽으로 20여분 넘게 차를 달려 극장 앞에 내려 주었다. 나는 점심을 간단한 샌드위치로 때웠더니 허기가 느껴져 극장 근처의 맥도날드에 가서 큰 커피와 감자칩을 시켰다. 실컷 운동해 봐야 큰 감자칩 하나 먹으면 어렵게 흘린 땀이 헛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오늘은 나도 스스로를 격려해 줄 필요가 있을 듯 싶어 케쳡에 조금씩 찍어서 모두 먹었다. 그리고 커피는 들고 나와 지금 있는 이곳 도서관에서 홀짝이고 있다. 


영화가 네시에 시작한다고 하지만 이런 저런 광고 후에 상영을 시작하면 6시 반경이나 되어서 끝날 듯 싶다. 지금부터 한시간 반정도를 더 있어야 끝날 것이다. 내가 남는 시간에 도서관에서 일하거나 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지, 오늘 아침에 차에서 내리면서도 "극장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요" 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제가 영화 보는 시간에 나는 극장 근처의 도서관에서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다 알아 본 것이다!




오늘로서 강의실에서 대면 강의로 가르치는 수업의 시험이 모두 끝났다. 그래봐야 두과목이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에너지와 수고가 필요했던 과목인지라 두 과목의 기말고사를 끝낸 오늘이 무척 후련하다. 시험은 모두 강의 관리 시스템에 입력해 놓은 것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기는 하지만 모두 컴퓨터 실에서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른다. 물론 채점도 자동으로 이뤄지고 점수도 자동적으로 산정된다. 이 기말고사로서 모든 과제가 마무리 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기말고사를 포함한 총점을 바탕으로 A, B, C, D 등의 학점을 배분하고 이를 학교의 학점 관리 시스템에 등록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일이 사실 이 한 학기를 마치면서 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스터디 어브로드(Study Abroad) 과목은 엊그제 월요일 학생들의 페이퍼를 채점하면서 모든 점수가 산출되었고, 오늘 조사방법론과 범죄 지도 과목도 기말고사를 마침으로서 학점을 배분할 수 있는 최종 점수를 산정하였다. 나머지 온라인 과목도 비슷한 방식으로 학점까지 시스템에 등록하는 일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오늘 두과목의 시험을 마쳐서 무척 홀가분 하다. 물론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음 학기 시작 전까지는 수업을 위해 학교를 나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물론 회의나 다른 일로 인해 학교에 나갈 일은 계속 있을 것이다.)


학기를 마무리하기 시작할 때 즈음이면 으레 최종 학점을 염려하는 학생들이 다양한 이유를 들어 교수들에게 "읍소"하는 일이 다반사다. 미처 제출하지 못한 과제나 결석 등으로 인해 점수가 좋지 않을 경우 이런 저런 이유로 수강하는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거나 최소한 패스할 수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흔하다. 물론 이같은 일은 워낙 흔해서 학기말 (주로 5월 초나 12월 초)이 되면 그같은 일이 당연히 있으려니 하고 그에 맞춰 심적 대비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도 처음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처음 1, 2년은 이 같은 사정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여러가지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해 강의 계획서에 포함하지 않았던 내용들을 근거로 질문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총점 480점에서 600점 사이가 되면 이는 90% 이상으로 A를 받는다고 명시를 하였지만, 479점을 받은 학생은 퍼센티지로 89.9%이니 반올림해서 A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강의계획서는 지난 수년간 이 같은 학생들과의 대화 내지 토론의 결과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학생들이 자기들에게만 유리하게 임의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적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학기가 끝나기 2-3주 전부터 거의 매시간에 중요한 사항을 지겹도록 반복해서 "나는 몰랐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는 식의 변명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혹자는 학생들에 대한 불신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 같은 도구들이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고 분명한 절차를 제공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 스스로는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그 학기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한 요소로 학생들의 문의 혹은 항의 메일의 숫자를 사용하곤 한다. 기말고사가 끝난 이후에도 이런 저런 내용으로 과목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자기들의 성적에 대한 불만을 과목 관리로 돌리려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나 스스로는 한 학기의 성과를 평가해 보는 것이다. 


물론 다른 여느 나라, 어느 대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수들의 강의 평가라는 공식적인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이와 별도로 학생들이 질문, 불만, 불편, 혹은 이의를 제기 하는 메일도 스스로 평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이 메일을 써서 보낼 정도의 내용이라면 충분히 들어줄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나 혼자의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기준을 따지자면 아직까지는 성공적인 한 학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며칠 더 기다려 보기는 해야지만 기말고사를 끝낸 오늘 정도면 뭔가 부탁하거나 급박한 사정들을 들어 관대한 결정을 내려주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있기 마련인데, 아직까지는 없다. 


그나마 약간의 불만을 토해낸 경우라는 것이 있다면 제출 기한이 지나서 페이퍼를 제출한 한 학생이 그 과제에 0점을 받고서 부당하다는 내용으로 보낸 메일이 전부였다. 물론 다른 과목들과 마찬가지로 그 과목에서도 1분이 되었든 10분이 되었든 마감 기한이 지난 페이퍼는 절대 접수하지 않을 것이며 0점을 부과하게 된다는 내용이 분명 강의 계획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유사한 일이 전에도 있었기 때문에 몇주 전부터 이 내용에 대해서 수업시간 동안 수차례 광고를 해 온 터였다. 


하지만 마감이 2시간이 지나서 메일로 페이퍼를 보낸 이 학생은 자신이 들인 수고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강의계획서에 명시한 부분을 복사해서 나의 결정의 정당성을 답해도 그저 막무가내로 불공평하다는 내용이다. 전 학급에서 단 한명, 이 학생만이 마감을 어겼

다. 이를 어찌할까 하다가 마음이 약해져서 페이퍼를 일단 보내보라고 답을 하고, 보낸 페이퍼를 바탕으로 점수를 매겼다. 그리고 늦게 제출되었기 때문에 얻은 점수의 일정 퍼센트만 줄수 있다고 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 학생의 점수를 업데이트 했다. 


점수를 업데이트한 나의 결정을 이메일로 보냈더니 10분도 되지 않아 "Thank you!" 라며 재빠르게 답을 보내왔다. 0점을 받았는데, 그 보다 훨씬 나은 점수을 받았으니 고맙지 않을수가 없었으리라... 


언젠가도 대학 교수와 교직원들이 자주 이용하는 뉴스 사이트(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에서 이와 비슷한 주제를 바탕으로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의 저자는 교수들이 그렇게도 마감에 집착을 하면서 엄격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쓴 것이었다. 물론 회사에 지원하는 경우나 논문을 학술지에 제춡하는 경우 등 상당히 많은 경우에 있어 데드라인을 분명히 지켜야 할 경우가 있지만, 실생활에서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다는 점을 들어 교수들이 지나치게 마감에만 초점을 두고 학생들의 수고를 무시하는 것만이 능사만은 아닐 것이라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감은 마감이고, 약속은 약속이며, 미리 정해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만한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다소 신선한 주장이었었다. 물론 지금도 미리 정해진 기한은 지켜저야 한다는 원론에 충실하려고 하지만, 그 대가를 혹독하게(예컨대 무조건 영점처리 하는 방식)만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 


위에서 말한 학생의 경우에도 몇번의 이메일 교환을 통해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이 들었고, 일정 점수를 삭감했기 때문에 제시간에 맞춰 제출한 학생들을 생각하더라도 공평한 결정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물론 이 경험을 통해 다음 학기 때에는 마감시간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횟수가 다소 늘어날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는 학생들의 메일이 없는 것은 아주 좋은 징조다. 내가 과목을 잘 가르쳤다기 보다는 그래도 다수의 학생들에게 혼란스럽지 않게 정보를 제공해 왔다는 하나의 증명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며칠 더 있어야 한 학기가 마무리 되지만, 마지막까지 처리해야 할 것들을 잘 챙겨서 올 한해를 깔끔히 마무리 하고 싶은 희망이다. 




얼마 전에는 유빈이 학교에서 학교 홍보물을 만들었다며 가져왔는데 가만히 보니 유빈이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이제는 왠만한 것은 미리 혹은 후에라도 제 부모에게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이렇게 일이 다 이뤄진 후에나 알게 된다. 아내는 미리 알았으면 옷이라도 더 깔끔한 것으로 입고 갔을 것을 그랬다며 핀잔하듯 말하지만, 분명 기특하게 생각하는 목소리다. 이제 유빈이 학교에서도 이번 주 금요일에 그간의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행사가 있다. 어제도 혜빈이 학교의 밴드에서 콘서트를 해서 다녀오기도 했다. 




한 학기, 그리고 올 한해를 애들 학교 행사를 다니면서 보내는 것이 아주 훈훈하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