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속에서 무언가를 계획하는 것은 대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동반하곤 한다. 더구나 그 계획이 나 혼자만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럿의 도움이나 협조를 구해야 하는 것일 때에는 더욱 그렇고, 모든 것을 조심히 계획해야 한다.
지난 가을방학 동안에 다녀온 한국의 방문이 그러했다. 올해에만 벌써 세번째가 되었던 한국으로의 방문은 이번 가을학기의 한 과목이었다. 해외방문 혹은 견학 수업이라고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과목명은 스터디 어브로드(Study Abroad)이다.
대개의 스터디 어브로드는 학생들이 한 학기 혹은 두 학기 정도를 해외에 있는 대학에서 자기의 전공과목을 수강하면서 학점을 취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일하는 과에서 설강되어 지금 몇년째 진행되고 있는 이 과목은 약 10일 정도의 단기 여행을 통해 외국의 형사사법기관과 제도를 알아 보는 단기 프로그램이다.
내가 처음 이 학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한 동료 교수가 영국에서 진행하는 단기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을 알게 되었데 그 동료교수는 이후 네덜란드에까지 지역을 확대를 했다. 이 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다가 그 동료교수가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도 한국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 후, 그 교수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어 한국에서 진행하는 이 스터디 어브로드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다. 아마 2015년 가을 경부터 프로그램 기획안 등을 개발하고 관련 부서와 위원회 등의 심사를 거쳐 진행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처음 학생들과 한국에 다녀온 것이 2016년 가을방학 때였다.
이 때에는 우리 과에서 진행하던 다른 프로그램과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했었는데, 한국 체류의 모든 숙식과 교통 등을 LA의 한 여행사에게 외주를 주어 그 여행사에서 결정한 호텔과 차량, 가이드 등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즉 한국에서 방문할 주요 관광지, 유적지 등은 나와 여행사가 함께 정했지만, 기관방문 (예컨대, 국회, 대법원, 경찰 기관 등)은 모두 공식적인 경로나 내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을 통하는 식으로 계획했었다.
물론 이 과목에 수강 신청을 하는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고, 여행 전의 세차례, 여행 후의 한차례 미팅을 포함하도록 과목을 구성했었다. 그리고 총 11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한국에 다녀 온 것이 벌써 2년 전이다.
그리고, 지난 봄학기가 시작되자 마자 이번 가을 학기에 다시 이 프로그램을 개설해서 한국에 다녀올 계획을 했었다. 지난 2년 사이에 동료 교수가 이미 한 차례 네덜란드에 학생들을 데리고 왔었고, 우리 과의 일부 교수들과 1년에 한번 정도 나라별로 순환해서 과목을 제공하자는 합의도 했었던 차였다. 무엇보다 지난 2016년의 여행이 학생들에게 반응이 꽤 좋았고, 나 스스로도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계속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내가 대학생이던 1990년대 중반에 아주 운 좋게 주어졌던 미국으로의 단기 여행이 어찌 보면 내가 계획했던 스터디 어브로드와 거의 유사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여행은 나의 인생을 바꾼 여러 전환점 중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비슷한 여행을 통해 우리 과의 몇명 혹은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그들의 인생과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계속 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소신도 이런 결정을 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 같은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쨌든, 지난 봄에 이 스터디 어브로드 과목을 가을 학기에도 오픈할 의사를 표했고, 지난 봄학기 말부터 수강생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10명의 학생이 되지 않아서, 이 과목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지난 번에 이용했던 여행사와 이번에도 같이 일을 해 볼 생각이었지만, 그들과의 계약은 최소 10명의 학생을 기본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같이 할 수 없다고 해도 별 할말이 없을 듯 했고, 더구나 지난 여름에 여행사를 통해 나의 일을 도와주었던 담당자가 그 회사를 그만두어 일의 진행이 계속 매끄럽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8월 중순 경에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있었다. 이 과목을 취소하고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고, 다른 대안으로는 내가 직접 여행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진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후자의 것을 선택했다.
학과장에게 문의해서 8명으로도 과목이 개설될 수 있다는 확답을 들은 후로 학교의 재정관련 부서를 연락해 학교 명의로 발급되는 법인카드을 개설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진행하는 중간 중간에 모르는 것들(대부분 여행 비용 처리와 관련된 일들)은 해당 부서의 직원들을 만나 설명을 듣고 조금씩 배워나가는 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이와 함께,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한국의 관련 기관들에게 연락을 해서 우리가 방문하는 기간에 그들 기관에 방문할 수 있는지 알아 보고 협조를 구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6년의 경험을 통해 모든 일을 공식적인 경로로만 연락을 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방문의 일부를 내가 오래 일을 했던 대전으로 정했고, 이곳에서 잘 알고 지금도 친하게 지내며 연락하고 있는 분들에게 연락해서 경찰, 교도소 등의 방문 협조를 구하기 시작했다. 또, 이번에는 여행사를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지난 한국 방문 때 알게 된 친절한 가이드 분을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영어로 하루 동안 가이드 해 줄 수 있는 분과 차량을 구하는 것도 미리 정할 수 있었다.
다행 나의 이 지인분들의 도움으로 경찰과 교도소 방문이 생각보다 쉽게 결정되었고 국회나 대전고등법원 등의 방문은 모두 인터넷을 통해 다른 방문신청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를 했다. 이렇게 학교의 행정적인 업무와 한국에서의 방문 일정 조율 등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9월과 10월이 흘러갔고, 10월 중순 경에는 거의 모든 일정이 확정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학생들과 두번의 사전 모임을 갖은 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이 11월 21일 밤이었다. 11월 23일 금요일 새벽에 한국에 도착하고 11월 30일 오후에 다시 미국으로 출국하는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었지만, 다행 일정 전 과정에 걸쳐 단 한군데의 착오나 사고, 혼선 등이 없이 모두 내가 계획한 대로 마치고 돌아 왔다.
나 스스로도 약간 놀랄 정도로 매끄럽게 진행되었고, 전반적으로 학생들도 즐거운 시간과 유익한 경험을 하는 것 같아 보여 뿌듯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느 학생 하나 아프거나 크고 작은 사건 등에 연루되지 않고 안전하게 마칠 수 있었다. 더구나 준비하는 과정이 다소 힘들어서 그렇지, 비용상으로도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절약할 수 있어서 이 점 역시 이번 여행이 만족스러운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 과정을 돌이켜 보면서 교육자 혹은 교사로서의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중심을 두는 대학에 근무하면서 어떤 때는 연구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거나 못하는 환경에 솔직히 약간 실망할 때도 있었다. 좀더 많은 논문을 쓰고 좀더 혁신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싶은데, 나의 게으름을 탓하기 보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 밖에 없는 이 학교의 환경에 푸념을 하는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여행을 통해서 내가 이 직업을 통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보람 중의 하나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꼬박 일주일을 밤낮으로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개인적인 얘기도 나누고,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또한 학생들의 생각과 관심사, 그들의 개인적인 배경이나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으면서 나의 학생들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되는 소득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강의평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 또한 "교수"라는 타이틀에 가까이 하지 못하고 멀게 느껴졌을 나와 조금이나마 친밀하게 다가오는 듯 하여 그 점 또한 반가웠다.
지난 번의 네덜란드나 영국의 여행이 보통 15명은 훌쩍 넘거나 어떤 때는 20명이 넘는 경우도 많았던 것에 비해 한국으로의 스터디 어브로드를 신청한 것이 8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처음에는 좀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명이라도 이 여행을 통해 그 학생의 인생이 크게 변할 수 있다면 (물론 긍정적으로) 이는 숫자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한 원론적인 생각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그리고 참여 인원이 많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은 다수의 인원을 인솔해서 여행해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번 여행이 여러가지 불확실성에서 출발했지만 다행히 한국에 있는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다음 한국 여행은 2년 후 혹은 3년 후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 전에라도 영국이나 네덜란드의 여행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참여해 볼 계획이다. 아무쪼록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참여했던 학생들이 이번 여행을 통해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느꼈을 것을 바라고, 그들의 미래 계획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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