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우연과 계획의 조합, 2018 한국 방문

남궁Namgung 2018. 8. 20. 12:03

올 여름, 나와 유빈이의 한국 방문은 우연과 계획이 적절하게 어울려져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작년 가을 경에 우연히 한국의 재외동포를 지원하는 재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재단에서 시기별로 여러가지 행사를 기획, 시행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중 하나는 여름방학 동안 전세계의 청소년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이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한국의 문화와 역사 등을 알리는, 말하자면 섬머 캠프(Summer Camp)였다. 이 재단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를 보니 지난 수년동안 매 여름 이런 행사가 있었고, 시기도 대부분 7월 초나 중순 경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작년까지 시행되었던 프로그램에 대한 신문기사나 동영상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언듯 이들 자료만 보면 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청소년들, 즉 유빈이나 혜빈이 같은 아이들에게 무척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라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 나라의 경우 항공권의 50% 까지도 지원을 해 준다고 하니 (8일간의 캠프 비용은 전부 무료다) 참가자들에게는 재정적으로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작년 말에 이런 정보를 접한 후로는 수시로 이 사이트에 접속해서 올해(2018년) 시행할 캠프에 대한 공고가 언제 나오나 확인을 하던 차에 지난 3월 정식 공고가 재단의 웹사이트에 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


공고문을 출력해서 유빈이에게 보여 주니 (그러지 않아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차에) 이때다 싶은 표정이었다. 공고문의 지원 조건에 맞추기 위해 유빈이에게 자기소개서 등을 쓰게 하였고, 그외 다른 관련 서류를 시스템에 입력하여 제출을 마친 것이 4월 말경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다리기를 몇 주... 


방학을 3-4주 정도 앞두고 아침에 유빈이를 학교에 데려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면서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였더니 북아메리카 지역에서의 선발자 명단이 도착해 있었고, 그 명단에 들어있는 이름 중의 하나가 바로 유빈이 이름이었다. 


이렇게 해서 유빈이의 한국 방문이 결정되었다.



<유빈이가 행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보여준 이름이 적힌 목걸이와 애초 웹사이트에 실렸던 공고문>




사실 유빈이의 한국 방문과 일부러 맞추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도 이미 몇주 전에 우리 과의 학과장과 단과대장, 교류협력부서장과 공무로 한국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네명이 모두 같이 움직이기로 했는데, 서로의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8월 첫주 금요일에 출발해서 8월 5일 새벽에 도착하는 비행기로 출국할 것으로 결정되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좀 덜 더운 5월말 혹은 6월 초를 선호했지만 나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무척 더울 것이라는 "경고(!)"를 했지만 8월 초가 네명 모두에게 맞는 시기였다. 물론 유빈이가 저 신청서를 제출할 때는 이미 항공권과 호텔이 모두 예약된 상태였다. 


다행히 유빈이의 행사가 끝난 이후에 내가 한국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고, 나는 일행의 배려로 그들이 미국으로 귀국한 후 며칠을 더 있다가 따로 돌아 가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유빈이의 약 3주간 한국 방문, 나의 약 10일간 한국 방문이 최종 결정된 것이 5월 말경이었다. 




유빈이는 캠프 (정확한 명칭은 "2018 재외동포 중고생 모국연수"이다) 체크인 하는 날 저녁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덴버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인천에 이르는 여정을 혼자서 잘 찾아 갔고, 공항에서 학생들을 픽업하는 담당자들과 잘 만나 호텔에까지 도착했다는 연락을 문자로 받았다. 



<혼자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한국으로 떠나기 앞선 유빈. 나는 일이 있어 공항에 가지를 못해 아내가 사진 하나를 찍어 놓았다.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혼자 비행기 갈아 타고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기특하다.>


이 재단에서 미리 보내준 캠프 일정대로 진행되는 듯 했는데, 물론 가장 큰 이슈는 날씨였다. 이때만 해도 그 지독한 폭염이 30일 이상이나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튼 그 폭염의 한복판에 들어가서 이곳 저곳을 일정대로 잘 움직인 듯 싶었다. 묻는 것 외에는 잘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떤 즐거움이 있었는지는 그저 몇장의 사진과 짧은 단답형식 대답을 통해 추론할 뿐이다. 하지만 사진에 짧게 짧게 보이는 그 표정으로는 그 폭염도 잊게 만드는 즐거움과 새로운 친구들과의 즐거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있는 중에 사진을 많이 찍고 중간 중간에 나와 아내에게 사진을 보내라고 했더니, 가끔가다가 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내곤 했다. 어려서 떠났기에 다소 낯선 환경일 것이고, 친구들도 처음 보아서 어색했을텐데 잘 어울려서 지낸 듯 보여 안심했다.>


<캠프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 오려고 준비하던 중에 유튜브에 행사를 정리한 자료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다를 저마다의 사정 (혹은 제 부모들의 사정)으로 외국에서 살고 있다가 한국을 방문한 아이들은 얼마나 신기했을까 싶다.>





그 일정을 잘 마치고, 유빈이 외삼촌과 두 할머니들이 행사장에서 유빈이를 픽업해서 이후로 계속 보살핌을 받는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다행 내가 동료들과 묵었던 호텔방을 침대가 하나 더 있는 방으로 업그레이드 해서 대전에 있던 어머니와 유빈이가 저녁에는 같이 묵을 수 있었다. (물론 이 때문에 서울에 있는 누나 가족이 피해(?)를 봐야만 했다.) 


내가 동료들과 일정을 소화해 내는 동안 어머니와 유빈이는 누나와 조카들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보살펴 주었고, 저녁에 시간이 맞으면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면서 3박 4일간을 호텔에서 비교적 시원하게 보냈다. 






<나와 일행들의 공식 일정 중에 DMZ를 방문하는 것을 계획하고 공동경비구역이라고 알려 진 판문점에를 가 보았다. 

도라산역 근처, 제 3땅굴이 있는 곳과 강원도 쪽에는 이전에 가 보았지만 이곳 판문점은 처음 가 보아서 무척 신기했다. 

마치 영화세트장을 바라 보는 듯 한 초현실감이 느껴질 정도로 긴장감이 넘치는 곳이었다.>




<시차 때문에 처음 도착 후 며칠 동안은 새벽 네다섯시에 일어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청계천이 있어 하루는 아침 일찍 이곳을 걸었는데, 

람이 많지 않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 아침도 6시가 되지 않은 시간부터 찌는듯 더웠으니... >


나의 일행이 돌아간 이후에도 날씨는 큰 변화가 없었고, 찌는 듯한 더위에서 어머니와 장모님의 아파트를 오가며 여러 지인과 친척들을 만나면서 참으로 바쁘게 보내고 돌아 왔다.


<처가의 형님은 세종시에 집을 짓고 계셨는데, 좋은 자리에 보기 좋게 지어지고 있었다. 올 가을 즈음이면 완공되어 이사하신다고 하니 몇개월 후에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하다.>


<한국에 가기 전부터 계획했던 것 중의 하나는 선산에 찾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가 계신 곳을 찾아 인사하는 것이었다. 

작년 따로 계시던 것을 합장하여 새로운 묘소를 만드시느라 어머니가 무척 고생하셨는데, 묘소를 찾아 어머니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 일정을 계획할 때는 공식 일정 이후의 시간이 짧지 않나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에 가 보니 집과 차도 없으면서 더운 날씨에 다니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만나는 사람마다 외국에서 온 손님을 대접하신다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밥이라도 한끼 먹여 보내시려는 그 감사한 마음이 적지 않은 부채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곳 미국에 온 지 10년이 되는 동안 한국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유빈이는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 가서 많은 친척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경험을 했으니, 표현은 잘 하지 않아도 분명 값진 기간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 등에 대한 계획이 생겼으면 더 좋겠는데, 이 또한 말을 하지 않으니 잘 모르겠지만 후에 알게 되리라.


나 개인적으로는 학교의 동료들에게 한국에 대해서 좀 더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설명해 줄 수 있는 기회였고, 이들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을 좀 더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지난 월요일 밤에 도착해서 지금 거의 6일 가량의 시간을 시차 적응에 온전히 보내고 있다. 다행인 것은 오늘 아침부터 이곳의 환경에 조금 적응된 듯하다는 점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침의 대부분, 오후의 대부분, 밤의 대부분, 즉 하루의 대부분을 한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곳에 있는 사람마냥 닭 졸듯 조는 것으로 시간을 모두 보냈었다. 낮잠을 자지 않은 것은 오늘이 처음인 듯 하고, 귀국한 이후 처음으로 짐에 가서 운동까지 하고 왔다. 


내일이 새 학기의 시작이나 제발 이 같은 패턴이 지속되어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