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미국사람인 척...

남궁Namgung 2018. 7. 8. 13:01


호텔에 묵으면서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제대로(?) 운동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다. 아침에도 내려야 할 전철역을 지나쳐서 예상했던 것 보다 10분 정도를 더 걸었는고, 점심을 먹으러 호텔 옆 공원으로 가면서도 꽤 걸었는데, 호텔에 들어 와서 갑자기 좀 더 달리기를 해야 하는 듯 싶어 머신에서 좀 달렸다. 그래봐야 제대로 운동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되지도 않는 거리, 시간이지만 땀을 좀 흘리고 샤워를 마치니 기분이 개운해 지고,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지금 참석하고 있는 컨퍼런스가 아주 대규모의 행사인지라 샌디에고 다운타운의 호텔 가격이 상당히 높게 책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행사장이나 다운타운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지만 전철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호텔을 예약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호텔은 샌디에고 다운타운에서 거리로는 약 10마일, 자동차로는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호텔에서 도보로 약 5분 정도 거리에 전철역이 있고, 오늘 아침 전철을 타 보니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한달 반 정도에 이 호텔을 예약하면서 생각했던 계획과 딱 맞아 떨어지는 일이다. 




어제 낮에 집을 나와 오후 네시 사십오분 비행기로 이곳 샌디에고에 와 있다. 이 곳은 벌써 세번재 방문이다. 모두 컨퍼런스 때문에 왔었고, 모두 나 혼자 방문했다. 그래 봐야 컨벤션센터가 있는 지역 주변 밖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몇번 오다 보니 아주 친숙한 동네에 오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덴버 공항에서도 체크인 과정부터 검색대를 통과하고 비행기를 타는 과정과 이곳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호텔까지 오는데 어느 한군데에서도 착오가 생기지 않고, 어느 곳에서도 시간이 지연되거나 이슈가 생긴 일이 없었다. 심지어 몇번 오다 보니 우버(uber) 차를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도 기억이 생생했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공항문을 나와 육교를 건너 우버와 같은 차량을 이용하는 전용 구역에까지 직접 찾았다. 육교를 건너면서 신청한 우버택시도 5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도착했고,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길도 그리 막히지 않았다. 우버택시 안에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아... 나도 미국 사람 다 되었나..." 


이제 미국에 온지 거의 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런 저런 이유로 생활하면서 막히는 일이 생긱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때로 나 혼자 출장을 다니면서 아무런 문제 없이 마치 미국사람처럼 다니는 나의 모습을 스스로 생각하면 "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기는 했나보다" 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내가 집에 없어도 아내와 이이들도 집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다 잘지내고 있고, 모두 지난 10년간의 정착 과정을 통해 갖게 된 익숙함이겠다. 


하지만...


어제 호텔에 들어 와서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는 호텔 근처의 중식집을 찾아 볶음밥(fried rice)과 치킨을 시켜 방으로 가져와 먹은 것이니, 이 식성은 이렇게 변하기 힘든것인가! 오늘도 아침을 호텔에서 주는 간단한 조식, 점심을 호텔 근처에서 파는 타코를 먹었더니 호텔에 들어 오는 길에 뭔가 얼큰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서 여행가방에 챙긴 "짬뽕라면"을 끓여 먹었으니, 몇십년이 지나도 나의 입과 혀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내일은 한국 식당에 가서 제대로 된 밥을 사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인터넷을 뒤져 봤는데, 호텔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일단 포기했다. 하지만 모르지... 내일 오후에 갑자기 마음이 바뀔지도.)




오늘 시작한 컨퍼런스는 작년에 처음 참석한 후 두번째로 왔다. 지리정보시스템(Geographic Information System)의 구글격이라고 할 수 있는 ESRI(보통 에스리 라고 부른다)의 연례 컨퍼런스인데, 올해 참석 예상인원이 약 만 팔천여명이라고 할 정도로 대규모의 행사다. 이 행사 전인 토요일, 일요일에 교육, 엔지리어링, 공공안전 등의 세부적인 분야의 행사가 있는데, 나는 이 중에서 교육 분야 행사 (Education Summit)에 와 있다. 


작년에는 지난 봄에 처음 가르친 범죄지도(Crime Mapping) 과목을 가르치기 위한 준비 과정 중의 하나였고, 이번은 그 경험을 발표하기 위한 목적까지 겸했다. 범죄지도 과목을 가르치는 중에 이번 컨퍼런스에서 나의 과목 준비와 가르치는 과정, 가르친 후의 소감 등을 발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이 행사에 나의 프리젠테이션 프로포절을 제출했었다. 


그리고 컨퍼런스의 첫 날, 제일 첫번째 세션에 나의 발표 순서가 들어 있었다. 아침 8시 반에 시작했기 때문에 행사장에는 8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침 6시에 일어나 씻고, 일찍 식사를 마친 후에 전철역에서 전철을 타고 행사장으로 행했다. 앞서 말한대로 내려야 할 역을 한 정거장 지나쳐 생각보다 좀 더 걷기는 했지만, 걷다 보니 작년에 오후 산책시 걸었던 길이어서 익숙한 길을 빨리 걸었다. 아침이었지만 적당한 기온이어서 약간 땀이 나기는 했으나 그리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고, 호텔에 들어오자 마자 "빵빵한" 에어컨 덕분에 금새 몸이 식었다.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모두 준비한 후, 어제 저녁 호텔에서 두어번, 오늘 아침 다시 한번 발표 연습을 더 했지만, 항상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긴장되는 일이다. 더구나 (세션 책임자가 말했듯이) 보통 첫날 이른 아침의 세션에는 그리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나도 발표하는 방에 일찍 도착해서는 10명 정도나 참석하려나 짐작했는데... 웬걸... 약 5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방이 거의 다 꽉 찾으니 그 책임자는 물론 나도 무척 놀랐고, 제일 먼저 발표하게 되었었기 때문에 시간이 다가올 수록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다행, 발표는 큰 실수 없이 끝났다. 15분을 지나쳐 약 20분 가까이 쉴세 없이 떠든 것 아닌가 싶고, 중간 중간에 한두번 혀가 꼬인 적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스스로 자연스런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 강박이 있었는지 학교에서 수업 하듯이, 스크린 쪽과 테이블 쪽을 가끔 오가고, 청중들과 돌아 가면 눈을 맞추는 등 또 다시 "미국사람인 척(?)"을 했다. 세션이 다 끝난 후에 한두명이 찾아와 질문을 하고, 부탁을 하고, 좋은 발표였다고 칭찬하는 것을 듣고는 그래도 준비한 만큼은 한 듯 싶다는 자만을 갖을 정도 였다. ㅎㅎ





다른 학회 등을 참석해도 대부분 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한두가지를 건져 가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 나는 이번에 참석하는 컨퍼런스를 좋아하는데 뭔가 기술을 배우는 느낌을 들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운용 과정을 직접 배우는 오픈 랩(open lab)을 만들어 놓았기에 이곳에서 혼자 학습을 할 수도 있고, 여러가지 세미나에서 전에는 전혀 몰랐던 것을 새로 알게 되거나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 막힌 것 뚤리듯이 시원하게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오늘도 아침과 오후의 여러 세미나와 행사를 통해 이것저것 모르던 것을 배우게 되어 뿌듯한 마음으로 호텔에 들어 왔다. 


아마 방에 들어와서 달리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나의 이 건설적인 하루를 계속 지속하고 싶었던 마음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른다. 내일도 아침 일찍부터 세미나가 시작되는데,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울지 살짝 설레기까지 한다. 


이렇게 샌디에고에서의 두번째 밤이 저물고 있다. 


<구글맵에서 본 호텔과 전철역. 구글맵에서 보기에는 깔끔한 동네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동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