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빈이 사는 법

An "Eerily" Difficult Word

남궁Namgung 2016. 1. 14. 04:41


내가 처음으로 작심하고 (성공적으로) 외운 단어는 authority 라는 것이었다. 물론, cat, milk, car와 같이 짧고 쉬운 단어들, 그리고 어려서부터 자주 보고 들었던 것봤던 것들 중에서도 아는 단어들이 있었다. 하지만, 비교적 중학생에게 중고급에 속하는 단어, 외우기 쉽지 않은 단어 중에서 내가 인위적으로 시간을 내어 외운 단어는 authority 라는 것이 가장 처음 외운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중학교 1, 2학년 교과서에 나왔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때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영어 단어를 어떻게 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던 때였다. 어려운 영어 단어, 예를 들어 tomorrow 라는 단어가 있으면 이 단어를 계속 말로 알파벳 하나 하나를 이야기 하면서 외워야 하는지, 아니면 펜으로 써가면서 외워야 하는지, 계속 쳐다 보고 있으면 외워지는지, 그것도 아니면 굳이 외울 필요가 없는지 등에 대해 해답을 구할 수가 없었다. 


물론 영어 선생님들께서는 알파벳 하나 하나를 입으로 소리내며, 손으로 써가며 계속 외우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몇번 시도해 본 바로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연습장에 볼펜으로 계속 a (에이) - u (유) - t (티) - h (에이치) - o (오) - r (알) - i (아이) - t (티) - y (와이), 이런 식으로 하나 하나 쓰기를 열댓번 계속 하니 저 단어가 외워진 것이다. 


학교에 다녀 와서 위층 내 방에서 외우고 있었는데, 당시로는 쉽지 않았던 그 단어가 외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해서 이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 단어를 시작으로 정말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책과 공책과 연습장을 영어 단어 (그 이후로는 숙어 등등)를 외우는데 바쳤다. 


지금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 단어를 외우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렇게 "무식한" 방법이 크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고, 물론 지금도 처음 보는 단어나 오랜만에 보는 단어들이 있으면 그 30년 전쯤에 사용했던 방법을 계속 쓰고 있다. 




어제는 혜빈이네 학교에서 스펠링 비 (Spelling Bee)가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쓰는 단어의 스펠을 얼마나 정확히 기억해 내는가를 경쟁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4, 5학년 각 교실에서 미리 사전에 테스트를 해서 일부 학생들을 뽑고, 그 학생들이 모여서 지역 교육청 대회 선출을 위한 또 다른 경쟁을 하는 날이었다. (2016. 1. 13.)


지난 겨울방학 전에 미리 그런 사실이 적힌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에는 출제 예상 단어들이 두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적힌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혜빈이도 방학 중에 시간 날때마다 나와 같이 연습을 했는데, 그 예상 단어 중의 상당 수는 나도 처음 보는 것들이 있었고 내가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다행 유용한 사전 웹사이트 (http://www.merriam-webster.com/ 나 http://dictionary.reference.com/) 들이 있어서 내가 모르거나 발음이 시원치 않은 것은 그 사이트에 있는 발음 기능을 이용해서 연습했다. 


혜빈이랑 같이 연습을 할 때는, 애한테 뿐 아니라 나의 영어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느낄 정도로 단어의 수준들이 높았다. (하긴 작년에 유빈이가 했던 중학생들의 스펠링 비 단어를 보니 내가 보도 듣도 못한 단어들이 거의 대부분 이었다!) 처음에는 혜빈이에게 단어의 의미를 같이 알려 주면서 연습을 했었는데, 단어의 수가 적지 않고 비능률적인 듯 하여 스펠링만 체크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혜빈이는 그때 그때의 컨디션에 따라 잘 할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긴 혜빈이한테도 처음 듣거나 보는 단어들이 꽤 많을 텐데 그 단어를 외우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내가 중학생 때 처음 영어를 배우면서 authority 라는 단어를 힘겹게 외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돌아 가면서 학생들이 앞으로 나와 진행자가 불러 주는 단어의 스펠을 얘기해야 하는데,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크게 작용한다. 대부분 어려운 단어이지만 그 중에서도 어느 정도 규칙에 따라 발음되는 단어들은 추측으로 맞출 수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혜빈이가 초반에 받았던 단어들은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거나 쉬운 것들이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받은 eerily 라는 단어의 스펠을 맞히지 못했다. "신기한, 이상한" 이란 뜻을 갖고 있는 단어인데, 같이 연습할때 했던 단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혜빈이한테 쉬운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나는 아직 방학 중이라서 아침에 학교에 나가 참관을 했는데, 아주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내가 긴장이 되었다. 아마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다른 부모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혜빈이가 중도에서 탈락했을 때는 내가 더 서운하고 안타까웠는데, 혜빈이 탈락 이후에 나오는 단어들이 (내가 생각할 때) 혜빈이가 거의 맞혔을 단어들이라고 생각되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렇게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잘 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생각이 당연히 들었다. 그리고, 유빈이의 다른 행사를 따라 다닐 때도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유빈이와 혜빈이가 부모에게 이렇게 다양하고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줘서 무척 고맙기도 하다. 


(이 스펠링 비 덕에 혜빈이는 새로운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 항상 나나 제 엄마, 오빠가 쓰던 것을 물려 받다가 처음으로 새 휴대 전화기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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