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 (Denver) 정착기

대충 vs. 심혈

남궁Namgung 2014. 3. 30. 10:08


어제 아이키아에 갔을 때 일이다. 빵만 먹고 나오려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매장을 돌게 되었다. 나는 "아차" 싶어 얼른 밖으로 빠져 나가고 싶은데 ㅎㅎ, 아내는 아니나 다를까 방앗간을 그냥 지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좀 볼 것이 있다고 하기에 그러면 체크아웃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나와서 스마트 폰으로 이것 저것 골라 보며 시간 소비에 들어갔다. 나의 예상을 전혀 깨지 않고, 아내는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ㅠㅠ 


그러다가 한참이 지나서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했다는 듯이 빨리 안으로 들어 와 보라며 안쪽에서 손짓을 하고 있다. 들어 가 보니 클리어런스 세일 (clearance sale)을 하는 곳에 쌓아 놓은 물건 중 집에서 쓸만 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주방 상판인 것처럼 보이는 것인데, 아내는 그것으로 애들이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상을 만들면 좋지 않겠냐며,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듯이 흥분된 상태다. 가격을 보니 $6.99. 아내가 좋아할 만도 하다. 


다른 것과는 달리 원목으로 되어 있어서 묵직한 느낌이고 튼튼해 보이며, 사이즈도 적당하다. 대충 머리속을 굴려서 과연 내가 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 봤는데, 나무를 사서 다리만 붙여 다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듯 싶기도 했다. 


설령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비싸지 않으니 위험 부담도 적다고 생각되어, 아내에 설득 당한 채 그 상판을 사서 집으로 왔다. 




애들은 저희들 책상이 있는데도 상 (밥상)에 앉아서 숙제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 한다. 아내나 내가 곁에 앉아 봐줄 수 있으니 우리에게도 책상 보다는 밥상이 더 편하다. 다만, 방에 사이즈 큰 밥상을 계속 두고 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았었다. 


아내는 빨리 만들고 싶은지 아침부터 오늘 이 테이블을 만들면 안되겠냐고 옆에서 "강권"한다. (3. 29)


날씨도 좋고, 오늘 하지 않으면 또 다음주까지 기다려야 할 듯 싶어 밖에 나갔다가 들어 오는 길에 홈디포에 들렀다. 책상 다리로 쓸 두꺼운 나무를 사서 차에 실었다. 집 차고 구석구석에 들어 있는 여러가지 도구를 꺼내에 내 머리 속에 그려진 디자인대로 작업에 들어갔다. 




허나, 이번 작업도 쉽사리 진행되지 않았다. 


내가 머리속에 구상한 대로라면, 차고에 이미 갖고 있는 도구를 사용해서 1-2시간 정도면 충분히 마칠 수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은 법. 


우선, 나무의 두께가 이전 작업한 것보다는 두꺼워서 전기톱으로 한꺼번에 깔끔히 잘리지가 않았다. 나무를 한번 돌려서 자르니 면이 골고루 반듯하지가 않았다. (쓸만한 정도는 되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은 상태)


또, 나무를 상판에 고정하기 위해서 못을 박아야 하는데, 내가 이미 갖고 있는 못은 너무 크거나 작은 것들만 있었다. 


바닥에 앉아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씩씩거려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다시 홈디포에 가서 적당한 길이의 못과 필요한 다른 재료를 사와야 했다. 



그런 후로는 계획대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명장은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그런 명장도 작업실에 어느 정도의 연장이나 재료들이 갖춰져 있을 것이다.)


한참동안 톱질을 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나 스스로도 서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좀 하다 보니 기술을 되찾는 느낌(?)도 들고, 못질도 제대로 되어 가는 듯 싶었다. 



그렇게 작업을 시작한 후 한참이 되어 "작품"을 완성했다. 작업시작부터 정리까지 서너시간 정도 걸리지 않았나 싶다.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 보면 허술하게 마무리 된 부분도 있지만 일단 처음에 생각했던 것 보다 튼튼하고, 무엇보다 외관상 그럴듯해 보인다. 실내로 들여다 놓았더니 아내도 꽤나 흡족해 한다.  





상을 만들고 나서 학생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수필이 생각났다. 이 글은 워낙 유명한 수필이고, 명작인지라 아마 지금 학생들 교과서에도 실렸을 것 같다. 


지금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 읽으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내용 그대로다. 


글쓴이는 차를 기다리던 중 별 생각없이 방망이 깎는 노인에게서 방망이를 하나 주문한다. 에누리를 해주지도 않고 별것 아닌일 같은 것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노인에게 투덜대면서 집으로 사갔는데, 그의 아내는 아주 제대로 된 것을 사왔다고 극찬을 한다. 글쓴이는 그 노인에게 결례를 한 듯하여 미안해 하면서 다음에 찾아 사과하려 했지만, 그 노인을 찾을 수 없었다. 


내 스스로 나를 평가하자면, 나는 대충 일을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계획이 있었더라도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 그저 쓸만할 정도가 되면 스스로 만족해 한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면서 대부분의 일과 공부를 그렇게 하지 않나 싶다. 


오늘 저 조그만 상을 만들면서도 다시 한번 나의 단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완성된 저 "공부상"의 상태가 크게 허술하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조금 더 신경을 쓰고, 공을 들였다면 어떠했을까. 그랬더라면 언제 어디서나 이렇게 앉아 보고 저렇게 앉아 봐도 편하게 쓸 수 있는 테이블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그 길지 않은 수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조그만 테이블 하나 만들어 놓고, 옛 조상들의 예술과 비교하는 것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것이겠다. 


하지만, 저 공부상을 만들면서, 그리고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수필을 생각해 보면서, 무슨 일을 하든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만들려 하기 보다는 조금 더 세밀하게 신경을 쓰고 "심혈을 기울"이는 자세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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