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Dr. Namgung

남궁Namgung 2013. 11. 17. 07:51

이 날은 잠을 아주 잘 잤다 (11.13). 

 

논문 심사 이외에도 이런 저런 신경 쓸 일이 많아 최근에는 새벽에 깨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다행 이 날은 밤에 일찍 잠에 들어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한번도 깨지 않고 아주 잘 잤다.


잠을 잘 자고 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고 오늘 잘될 것 같다는 기대를 갖기도 했다. 권 선생님 아내분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 나셔서 맛난 콩나물 해장국을 해 주셨는데, 이 덕에 아침 든든히 먹고, 학교에 시간 넉넉히 도착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 들러 자료를 좀 더 봐야겠기에 내가 항상 "애용"하던 도서관 3층 자리로 갔더니 다행 자리가 비어 있다.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펴서 다시 한번 발표 연습을 하고, 예상 질문을 바탕으로 어떻게 답변을 할지 다시 검토 해 봤다.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잠시 생각해 보니, 이제는 다시 이 자리에 올 일이 없겠다 싶은 생각에 까지 이르렀다. 몇 개월만에 왔어도 이렇게 익숙한 자리인데, 앞으로는 이 자리가 생각나지 않을까...

 

평소 고개를 들어 돌아 보거나, 자리에 일어나 보던 모습들을 스마트 폰으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 봤다. 여전히 해가 잘 들어 밝고 따뜻하고, 도서관의 다른 자리들보다 조용하다. 등 뒤로 난 큰 창문으로 보이는 경치는 무척 환하고 보기 좋다.     



논문 심사는 오후 1시부터 시작 예정이었다.

 

발표 전 오전에 지도 교수님께서 다른 심사 위원회로 계신 다른 한분과 먼저 좀 보자고 하시기에 뵈었다. 교수님은 논문의 내용 중 일부에 질문이 있다며 말씀하시는데, 다행 (휴...) 내가 잘 답변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교수님도 나의 답변을 들으시더니 이해가 되신다면서, 나중에 좀더 연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그러시면서,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무리 없이 끝낼 수 있지 않겠느냐며 격려를 해 주셔서 심적으로 크게 위안이 되었다. 


발표 시간 전에 만나신다는 것 자체가 나를 위한 배려셨고, 지도 교수님과 그 학과장 교수님도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셔서 한층 부담을 던 상태에서 발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총 네분의 심사 위원 중 한분은 반드시 우리 과가 아닌 다른 과나 다른 학교의 교수님으로 하는 것이 규정이었고, 나의 외부 위원은 워싱턴 DC에 계신 분이라서 전화를 통해 발표를 듣고 의견을 얘기 해 주셨다. 


미리 준비해 간 자료를 보면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 맞춰 발표를 했다. 약 30분 정도 발표를 한 것같고, 교수님들이 돌아 가시면서 질문과 코멘트를 하시는데, 다행 크게 당황스러운 질문은 없었다. 그러고는 교수님들의 심사 (Yes or No)를 위해 나는 방을 나가 있어야 했는데...


나간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지도교수님께서 밖에 있는 나를 부르신다. 


그 순간, "아... 통과했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 교수님들간에 논란이 있으면 시간이 그렇게 짧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수님들은 통과되어 축하한다고 말씀하시고, 멀리에서 전화로 발표를 듣고 계시던 교수님부터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전하신다. 교수님들의 악수를 감사히 받고, 그간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씀을 드렸다.

 

잠시 후에 학교 앞 바에서 축하 맥주나 한잔 하자고 하시며,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시기에 과 건물 주위를 쭉 둘러 보는데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그간 이 학위를 위해 그렇게 에너지와 시간과 비용을 들였는데, 아... 이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였다. 

 

드라마에서처럼 뭔가 배경음악이 나와 주거나, 대학 졸업식처럼 청중들이 박수를 쳐주거나, 다른 식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그냥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차분한 분위기가 스스로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것이 주어지는 순간은 이렇게 무미건조했다.  

 

 

 

디펜스를 마치고, 지도교수님, 위원으로 계시던 교수님, 그리고 학교에서 오랫동안 같이 공부했던 리서치 교수와 함께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바에 갔다. 나는 이런 자리를 한번도 참석해 보지 않아 몰랐는데, 디펜스를 마친 후에 지도교수님과 지인들이 축하 맥주 한잔씩 하는 것이 과의 전통이었다!

 

교수님들은 맥주 한잔씩만 하시고 떠나셨고, 나를 공항으로 다시 데려다 주시기로한 권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본격적으로" 맥주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간 학교에서 적응하느라, 이 논문 쓰고 발표 준비하느라 몇주 동안 맥주를 마시지 못한 "한"을 이렇게 풀기 시작했다.

 

 

 

권 선생님이 와서도 몇잔을 더 했고, 공항으로 가서도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맛난 맥주 두잔을 더 했으니 만취 되는것이 어쩌면 당연할터.

 

혼자 앉아서 저렇게 사진을 찍어 댔으니 분명 취했던 것이다. 몇몇 지인들과 전화를 했었는데도 전혀 기억이 없고, 장모님 어머니와 전화를 하면서는 찔끔, 훌쩍거리기도 했으니... ㅠㅠ

 

 

전철 역으로 나를 데리고 온 아내는 술 냄새가 풀풀 난다고 하던데, 그 좁은 비행기 안에서는 얼마나 악취를 풍겼을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거린다.

 

아무튼, 이렇게 나의 "학위 취득 여행"이 마무리 되었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계기였다. 나 혼자서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인데,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그 멀고 험난한 길을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조금의 과장도 아니다.

 

또,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던 때도 있었는데, 지식의 세계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앞으로도 생각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겸손의 과정이기도 했다. 

 

 

 


 

 

다음 날 과에 돌아 와 보니, 같은 과 교수님들이 축하한다며 문 앞에 "Dr. Namgung"이라는 종이를 붙여 놨다.


 

 

엊그제에는 내 사무실 밖에서 몇몇 교수님들이 서로 웅성웅성 하기에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나를 위한 깜짝 선물을 가지고 들어 오는 것이다. 한 여자 교수님은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며 케익을 가져왔고, 다른 교수님들도 서로 십시일반 했는지 조그만 선물 가방에서 머그컵과 카드 등을 꺼내 주신다.  

 

 

 

어제는 이 단과대 학장님도 카드와 조그만 선물을 보내주셨는데... "아, 이곳에서도 이런 맛으로 살아가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다음 달에 졸업식이 있어서 다시 세인트루이스를 갈 계획인데, 그때는 아내와 애들을 모두 데리고 갈 예정이다.

 

애들도 두고 떠나온 친한 친구들 생각을 하면서, 갈 날을 손 꼽아 기다리고 있고, 아내도 가고 싶은 모양이다. 천천히 고마운 분들의 감사 스토리(?)를 다시 되새길 날이 있겠지만, 정말이지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절감한 과정이었다.

 

남궁 현 박사.

 

아직은 생소한 명칭이지만 당분간은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으로 듣고 싶은 명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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