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최상을 기대하고 최악을 대비하라!

남궁Namgung 2012. 9. 18. 04:02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큰 일(?)"을 준비하면서 항상 마음에 뒀던 표현이 있다. 바로 "최상을 기대하고, 최악을 대비하라!"는 말이다. 어느 위인이 한 얘기인지, 아니면 그저 좋은 말로 흘러다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또, 내가 언제부터 충동적이지 않은, "대비"형 인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으면서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이 없어지고, 그러면서 직접 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은채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대비"만 하는 소심한 사람이 되어서 그런 것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어릴 적에는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결과를 당연시 하고, 혹 그런 결과가 없을 때에는 나 보다는 나의 평가자나 주위 환경을 탓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싶다. 더러는, "안되면 무슨 상관이야"하는 식으로 내가 계획하는 일들에 대해서 크게 진지하지 않기도 했던 것 같고. 




이곳으로 공부하러 오기 전에는, 외국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주위의 학교 선배들 중에 외국에서 유학했던 선배들은 거의 학위를 받은 후 귀국을 했었고, 학위 받는 과정 중에 실패한 경우를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직접 와서 공부하면서, 그리고 주위에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으면서 학위 과정이 그리 만만한 과정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고, 아직도 실감하는 중이다. 


어떤 분들은 (한국에서는 그런다고 하는 것 같던데...) 지금 박사과정 중에 있으니 그냥 박사라고 불러도 된다고 하면서 나를 "남궁 박사님(!)" 이라 부르시며, 내게 거창한 호칭으로 불러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 꽤 불편해 했었다. 무엇보다 "정말 모든 것이 잘 풀려서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내가 이 학과에 들어 오기 1년 전부터 시험을 대신해서 2개의 페이퍼를 평가하는 것으로 종합시험 (Comprehensive exam, or qualifying exam) 시스템이 바뀌었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쉽지 않았다. 


코스웍이 끝난 지난 해 여름부터 페이퍼를 쓰기 시작해서 올 해 5월에 두개의 페이퍼를 제출했었다. 약 40페이지짜리 페이퍼 두개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무슨 그런 '짧은' 페이퍼 두개를 1년이나 걸려서 쓰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페이퍼를 심사하는 심사위원회의 학과 교수님 3명의 리뷰 절차는 정말 대단히 꼼꼼하고 치밀하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거나,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 가혹하리만큼 세세한 피드백을 주는데, 지난 5월에 제출했던 두개의 페이퍼 중 하나만 "Pass"를 받았었다. 


그 후, 지난 여름부터 지난 주초까지 거의 3개월 이상을 패스하지 못한 다른 하나를 수정하는데 온통 에너지를 쏟았다. 실제적으로 수십번 고치는 과정을 거치고, 교수님과도 열댓번씩 만나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런 과정이 부담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학과에서 재작년에 이 페이퍼를 통과하지 못해 중도 탈락한 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최상을 기대"하기는 하지만,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면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을 하고, 그에 따른 나의 대책이 무엇이어야 할지 준비해 놓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그런 최악을 상황을 생각한다는 것은, 좀 거창한 표현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두번째 수정해서 제출한 페이퍼의 결과를 좀 전에 이메일로 받았다. 메일 박스에 결정이 되었다는 워드 화일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확인하려고 클릭하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레터가 열리자 다른 긴 길을 읽을 정신도 없고, "pass"라는 단어만 찾았는데... 약간의 고칠 점이 있다면서 자세하게 코멘트를 달아 주셨는데, 어쨋든 패스다. 



사실은 내가 그렇게 긴장하고 고민했던 것은 "최악을 대비하는" 일이기는 했겠지만, 또 막상 결과가 나오니 "최상의 결과"만 기대했어도 되는거 아냐... 하는 이런 간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지난 주 내내 긴장되는 마음을 풀려고 내내 Samuel Adams와 Schlafly에 의지했었는데, 오늘부터는 며칠 축배를 들어도 될만한 일을 했다고 스스로를 토닥여줘야겠다. 


직도 벌렁거리는 가슴이 잘 진정되지 않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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