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기나긴 보름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맘은 전혀 편치 않은, 참으로 느리게 하루 하루가 흐른 날들이었다.
늦게 일어나서 한 일이라고 해 봐야 여기 저기 뉴스 사이트 끄적이고, 이런 저런 재미없는 동영상 끄적이고, 평소에는 보지 않았을 한국 영화도 아무런 목적 없이 많이 봤다. 지난 며칠 동안은 하루에 학교 이메일 계정을 말 그대로 수십번씩 확인하면서 내가 기다리는 그 메일이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밤 늦게까지 오지 않았으면 "아직 아니구나..." 하면서 잠드는 것이 일과였다.
그리고 바로 오늘. 집에 오니 오늘 아침에 발송한 것으로 보이는 바로 그 메일이 도착했다. 결론적으로는, 하나는 OK, 다른 하나는 NO.
<심사 위원회로부터 받은 레터의 일부. 나의 박사과정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Pass하지 못한 페이퍼를 고쳐 Pass 하도록 해야만 한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알기 어렵다더니... 나같이 단순한 사람의 마음도 수없이 변한다는 것을 이번에 절감했다. 페이퍼를 제출하고서는 "그래, 확실해! 틀림없을 거야!" 라는 생각이 절대적이었었다. 하긴, 그렇게 자신이 있었으니 제출한 것이었고... 그런데, 며칠이 흐르면서는 자신감이 조금씩 조금씩 깎이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 그렇게 좋은 작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혹 두개 다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다시 지난 며칠 동안에는, "그래도 통과할 정도의 품질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어떤 면에서 나의 실력을 스스로 인정해 주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어쨌든 결과가 나왔다. 다행, 그간 지도 교수님들과 여러 친구들의 도움으로 아주 나쁜 피드백은 아니었다. 특히, 통과된 하나는 그래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내는 그래도 그 정도면 잘했다고, 옆에서 등을 토닥이는데...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며칠간에 걸쳐 천천히, 그리고 냉정히 생각해 봐야겠다.
나의 이 여름은 저 냉정한 (혹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레터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야겠다. 나의 정신상태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고지로 땀흘려 성취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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