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씨가 거의 초여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따뜻했다. 주위에 그렇게 두껍고 지저분하게 쌓였던 눈도 어디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다 녹았다. 크게 눈이 와서 학교가 문을 닫을 정도이던 것이 그리 오래 전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겨울이 갑자기 다 지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 아쉬움 많지 않은 겨울이기에 이렇게 겨울이 지나도 괜찮겠다.
2.
며칠동안 감기를 다시 앓았다. 심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감기가 약 2주 동안 계속 귀찮게했다. 여기에 와서 그동안 숱하게 감기를 앓았기에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이번 감기는 이전에 앓았던 것들과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그 이전의 것들이 몸을 끙끙 앓게 하는 "몸살적인" 감기였다면, 이번 감기는 지속적으로 두통을 갖게 하는 "두통적인" 감기였다.
지난 화요일에도 두통이 계속되어서 하루 종일, 거의 깨어있는 시간의 2/3 정도를 침대에서 잠으로 보냈다. 금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감기가 그래도 오늘은 좀 나은 듯 하다. 개운할 정도는 아니지만, 간헐적으로 나오는 재채기와 콧물을 제외하고는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3.
그간 앞뜰과 뒤뜰에 지저분하게 널부러져 있던 낙엽을 긁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한참 되었다. 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는 날씨가 따라주지 않았고, 날씨가 따라 줄 때는 나의 게으름이 어김없이 방문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특히나 뒷뜰의 낙엽은 지난 가을 동안 한번 밖에 긁지 않아, 그 두툼함이 볼 때마다 민망할 정도였다.
그래서, 드디어 오늘, 그 두툼함을 치우고자 마음을 먹었다. 내가 결심할 때의 거의 대부분이 그러했듯, 어제 혹은 오늘 아침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유빈이를 학교에서 픽업해 데리고 오면서, "그래, 결심했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지하 창고에 있는 작업용 청바지와 운동화를 꺼내 갈아 신고, 밖으로 나가 부지런히 긁기 시작했다. 이미 짐작한 바이기는 하지만, 거의 두세달 정도 쌓여 있던 낙엽들의 양은 가히 가공할 만한 수준이었다. 특히, 바닥의 낙엽은 땅에 바짝 달라 붙어서 두번 세번 긁어야 떨어져 나올 정도 인것들이 많았다.
조금 하다 보니 금새 힘들어져서 "내일 할까, 다음에 할까..." 하는 달콤한 속삭임이 계속 전달되었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티기를 두어시간...
깔끔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봐줄만 하다는 소리는 나올 정도로 치워졌다. 유빈이도 적당히 치워진 뒷뜰을 오랫만에 만나봐서 좋은지, 시키지 않아도 축구공을 꺼내 와서 같이 공차기를 하자며 졸라 댄다.
4.
쉬지 않고, 긁어대다가, "아!"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아내에게 카메라를 가져 오라고 해서, 작업 풍경과 작업 후의 풍경을 찍어 봤다. 그냥 흘려 보낼 장면, 풍경들이지만, 내가 이렇게 셔터를 눌러 줌으로 인해 그 1/00 초, 혹은 1/200초는 내 컴퓨터와 내 블로그에 오랫동안 남게 되었다.
생각해 볼 것도 없고, 확인해 볼 것도 없이, 그간 내가 찍었던 사진의 공간의 거의 대부분 내 집 주위였다. 눈이 올 때의 앞뒷뜰, 비가 올 때의 앞뒷뜰, 봄이 왔을 때의 같은 장소, 혹은 낙엽을 긁기 전과 후의 내 집 주변 등, 집 주위를 떠난 것이 오히려 더 적지 않았나 싶지 않을 정도로 주위의 것들을 많이 남겨 두었다.
학교나 다른 곳을 갈 때와는 달리, 사진기를 바로 가져와 쓸 수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간 다른 곳을 많이 다니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리 아쉬울 것도 없다. 생각해 보면, 어느 유명 작가가 말했듯이, 우리 집, 나의 집이야 말로 우리 사회와 우리 역사의 가장 중요한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곳일 수도 있다.
주방에 있는 도구, 화장실에서 쓰는 물건들, 침실의 침대 모양과 재질, 거실의 소파와 램프 등, 거의 대부분이 사회가 발전되면서 혹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바뀐 것들이고, 그런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집 안의 변화를 통해서 (거창하지만) 이 사회를 읽을 수도 있는 일이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내가 낙엽을 긁을 수 있는 공간인 앞뒷뜰이 넓은 하우스(house)형 주택에 산다는 것도 이 미국 사회, 혹은 세인트루이스가 변화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시내에서 거의 대부분이 모여 살다가, 1950년 혹은 그 이후부터 조금씩 조금씩 외곽으로 거주지역이 넓어지면서, 도시 외곽에 거주 지역들이 많이 생겼고 (surbanization), 그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회 모습이 바뀌었던가!
내 사는 모습을 미화하려는 불쌍한 노력일 수도 있으나, 사실 어디를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명승지나 명물을 머리 뒤에 두고 사진을 찍느냐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매사에 의미를 두고, 모든 보는 것마다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도 우스운 일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저 눈으로 한번 보고 "야, 좋다, 이제 다음 지역으로!" 하면서 겉핥기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뒷뜰을 쓸고 긁으면서 계절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는 문화 답사기의 "고전"이라고 해도 될 수 있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쓰신 유홍준 교수께서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과 같지 않다"라는 말을 여러번 책에 적으신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오래된 어느 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나 싶은데, 항상 잊지 않으려고 염두에 두는 문구이다.
결국,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 그 단순한 몸짓도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이라고 "그 분"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5.
허기진다. 밥을 먹어야겠다.
신기한 나의 몸은 그렇게 끙끙 거리고 아플 때는, 그리 사모하는 맥주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신비로운 경험도 하게 해 준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면 다시 혀와 목구멍을 자극하니, 아... 이 저녁, 그냥 보낼수는 없는 것 아닌가! 거기에 TGIF이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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