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St.Louis) 정착기

경제적이면서 즐거운 선택

남궁Namgung 2010. 7. 9. 04:34

지난 주말에는 집에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라는 영화를 봤다. (지금 막 검색을 해 봤더니 우리나라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개봉이 되었었나 보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려 온 DVD였는데, 반납할 때가 다 되기도 했고 특별히 할 일 없는 한가한 오후였기에 지하에서 시원하게 시청했다. 나는 잘 알지 못하던 영화였는데, 아내는 어디서 줄거리를 읽었었는지 괜찮은 영화라고 들었다고 해서 대출을 했던 터였다.

 

영화를 다 본 후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게 된 것인데, 이 영화는 1922년 F. Scott Fitzgerald라는 작가가 쓴 같은 이름의 단편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아주 독특한 발상이고, 그래서 제목이 curious case라고 시작하겠지만, 주인공 남자는 늙게 태어나서 (?) 점점 젊어지다가 아주 아기로 죽는 것이고, 주인공 여자는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살면서 둘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발상 자체도 무척 특이했지만, 배우의 연기는 물론이고, 배경이나 비주얼도 훌륭했다고 생각된다. 거기다 틈틈히, 브래드 피트의 목소리를 통해서 인생에 관한 짧은 생각들을 말해주기도 한다. 어쩌다가 나에게 맞지 않는 영화를 보면 참 시간 낭비했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영화는 두시간 넘게 보고도 "아, 잘봤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일전에도 아주 오래된 영화, Far and Away를 봤었다. 물론, 이것도 가까운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이 주연한 이 영화는 1992년에 개봉한 영화라고 한다. 아, 20년전 영화! 그러니, 내가 분명 본 영화로 알고 있었는데,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었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야, 좋은 영화다..."라는 감상평을 하게 만든다.

 

 

작년에 블록버스터라는 DVD 대여점 멤버쉽 카드를 만들기는 했지만, 여기는 잘 이용하지 않고, 거의 도서관에서 DVD를 빌려다 보고 있다. 물론 Far and Away처럼 오래된 영화들이 많은 편이고, 최신 영화나 인기있는 DVD는 많이 소장된 것 같지도 않고, 혹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대출이 되기에 내 손까지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저런 괜찮은 영화들을 "무료로" 빌려서 볼 수 있는 점은 무척 매력적이다.

 

방학에 나처럼 시간이 많아진 유빈이나 혜빈이를 위해서도 도서관에 들러 DVD를 빌리는 경우가 전보다 많아졌다. 이제는 많이 봐서, 애들 나이에 맞는 것들은 웬만큼 이미 다 시청했을 정도로 열혈 대출자들이다. 애들 DVD도 대개 오래된 것들이 많고, 소장된 것들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단점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운이 좋은 날에는 괜찮은 것들을 빌려 오는 경우가 있고, 그런 날에는 둘의 입술의 각도가 살짝 달라진다.

  


 

글렌 벡 (Glenn Beck)이라는 사람은 미국의 보수계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라디오, TV 방송도 하고, 베스트 셀러 책을 출판하기도 한 작가이기도 한데, 많은 보수인사들처럼 정부의 지나친 개입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 처럼 의료정책이나, 금융 정책 등에 자꾸 정부가 개입하려 하고, 규제하려 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사람이 한 강연에서 정부의 개입이 확대하는 오바마 대통령 같은 사람을 커뮤니스트 (communist)라고 주장하면서, 자기는 그 강의에서 말하는 내용을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했다, 거기는 책이 공짜다 (I educated myself, I went to the library, books are free)"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 내용을 두고, 글렌 벡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존 스튜어트 (Jon Stewart)라는 방송인은 아주 냉소적으로 비꼰다. (아래 동영상 2분 30초 정도부터)

 

The Daily Show With Jon Stewart Mon - Thurs 11p / 10c
Rage Within the Machine - Progressivism
www.thedailyshow.com
Daily Show Full Episodes Political Humor Tea Party

 

 

존 스튜어트는 "도서관은 모든 시민이 그 지역이 소유한 자원에 동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래서 1854년에 최초로 보스톤 공립 도서관이 생겼다"면서 도서관은 공짜가 아니며, 모두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이 소유하면서 운영되는 그 도서관을 이용한 너도 커뮤니스트라고 한방 세게 먹이는 것이었다.)

 

"Glenn, the library isn't free! It's paid for with tax money. Free public libraries are the result of the Progressive movement to communally share books. The first public library was the Boston public library in 1854. It's statement of purpose: every citizen has the right to access community owned resources. Community owned? That sounds just like communist. You're a communist!" 

 


 

공립 도서관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따라서 공짜는 아니지만, 나는 갈때마다 항상 공짜라는 기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구나 공짜로 비지떡 같은 저급 상품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엄선된 것들만 진열된 곳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어, 무슨 특별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는 기분이 들때도 있다. 더구나 앞서 말한 대로, 여기서는 DVD도 빌려 주기에 (1주일에 5개라는 제한이 있지만 그것은 제한도 아니다. 1주일 동안 DVD 5개 볼 정도의 여유나 시간이 있기나 한가!) 가끔 Far and Away라는, 오래되기는 했어도 괜찮은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또, (역시 오래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CD도 대출할 수 있어서 Josh Groban이나, Il Divo, Sarah Brightman 같은 가수들의 (몇년된) CD를 빌려 학교를 오가는 차에서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주 좋은 책들을 무제한으로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DVD나 CD와는 달리, 책은 최근에 발간된 것들도 많이 진열되고 있다. 또,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20여개의 모든 도서관이 연계되어 있어서,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들도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내가 이용하기 쉬운 도서관에서 책을 받을 수 있도록 "배달"도 해 주는데, 이용할 때마다 무척 편리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혜빈이는 아직 글을 몰라, 가끔 그림책을 빌려다가 읽는 편이지만, 유빈이는 이제 제법 글을 읽어서 여기 애들이 말하는 "챕터북 (chapter book)"을 많이 빌려다 읽고 있다. 특히 지금 방학에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데리고 가고 있고, 도서관에 있는 컴퓨터에서 카탈로그를 검색해 책을 찾는 방법을 알려 주었더니, 어떨 때는 제가 스스로 책장에서 책을 찾아 오기도 한다. 또, 그 수업이 많은 책들을 제 마음대로 (소유할 수는 없지만) 며칠간 집에 둘 수 있다는 생각이 즐거워서인지, 아니면 그 도서관 분위기가 좋은지 도서관에 가는 것을 무척 즐거워하기에, 나도 그런 점이 흐뭇하기도 하다.

 

애들하고 낚시를 하려고 낚시대를 샀을 때는 낚시에 관한 책을 빌려서 좀 읽어 보고, 요즘처럼 채소 같은 것을 키울 때에는 가든에 관한 책을 빌려 좀 훑어 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전혀 사용하지 않은 내 뇌 속 저 깊은 곳의 세포를 사용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다. 두뇌를 운동시키려면, 잘 가지 않던 길로 운전하고, 잘 해보지 않던 것을 배워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몇 주전에, 역시 도서관에서 빌린 책 중의 하나가 The Best American Crime Reporting 2007 라는 책이었다. 한 해동안 범죄 관련 리포트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골라 실은 책이었는데, 그 중에 값비싼 중고책을 전문으로 훔치는 절도범에 관한 글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재를 전문으로 훔치는 범죄꾼들은 있는데, 여기서도 100년, 200년 된 책을 전문으로 훔치는 절도범들이 있다고 한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가면, 입구에 수북히 중고책을 진열해 놓고, 한권에 50센트나 그 이하로 팔고 있다. 나도, 갈 때마다 거기에 혹시 괜찮은 책들이 있나 매번 뒤져보고, 그러다가 한번은 나의 전공과 관련해서 괜찮은 책을 50센트로 사왔던 적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나도 그 진열된 책들 중에서 종이가 무척 바래 있거나, 책 표지로 봐서 몇십년은 되 보이는 것들에 손이 자주 간다. 그리고, 괜히 오래된 책에 담긴 내용이 요즘 책들보다 더 영양가 있고, 더 배울 것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래 내가 그 중고책 전문 절도범과 관련한 글에서 옮긴 글에도 있지만, 중고책 절도범들은 "책을 내용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내가 갖고 있는 그 생각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무슨 돈이 남아 돈다고, 최소 1,000불, 2,000불씩 주면서 오래된 책을 사냐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지만, 책을 보유한다는 것은 자기가 관심있는 시대나 분야, 그리고 그 책의 작가와 물리적인 연결고리 (physical link)를 제공해 준다는 아래 글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래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 받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즐거운 선택이다. 

 

 

At a Boston fair in October, I heard a dealer with an impressive selection of dust jacket art say, “Don’t judge a book by its content.” However tongue-in-cheek, this twisted aphorism exposes the curious fact that many collectors don’t actually read their books. Yet many have a scholarly interest in a particular subject, amassing copious quantities of books—on the Vietnam War, for example, or cookbooks from Colonial times—which they may one day bequeath to a library or other institution. For some, possession of the book provides a physical link to a period in time, often their own childhood, or to an author who may have touched the very same pages. For others, it is the book as talisman of knowledge and affluence that both satisfies and spikes their lust for more—and, in a very few cases, lures them to what Sanders call “the mythical dark side.” (p. 233)

- “The Man Who Loves Books Too Much, by Allison Hoover Bartlett" In The Best American Crime Reporting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