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집 앞에 글래디올러스 (Gladiolus)를 잔뜩 심었었다. 일전에 심어 놓았던 씨를 다람쥐들의 공격으로 모두 잃었던 경험이 있던지라 걱정은 되었었지만, 그래도 작은 양파 같이 생긴 것까지 파 먹지는 않을 것이고 안심을 했었는데...
아뿔싸...
심어 놓고 두세시간 지나고 혹시나 해서 나가 보니 또 다시 내가 심어 놓은 길을 따라 모두 파헤친 흔적이 있다. 아니, 이 놈들이...
비싸게 주고 사 와서, 정성들여 심고, 비료도 뿌리고 물 주는 등으로 정성을 들였는데, 이것까지 파 헤치다니... 일일히 다시 심어 놓은 자리를 파헤쳐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한 두개 파헤쳐 나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허탈감으로 그 다람쥐 '놈들'을 원망했다.
그러고는 앞 화단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그냥 관심을 끊었는데...
이게 왠일인가... 엊그제 학교를 가려다 혹시나 하고 화단을 쳐다 보았더니 뾰족한 잎새가 몇몇군데에서 올라온 것이 보인다. 엊그제는 대여섯개였는데, 오늘 보니, 내가 심어 놓은 그 길을 따라 모두 열개 정도의 싹이 올라 와 있다.
아! 괜히 '놈'자 붙여 가며 다람쥐들을 원망했었는데, 아마도 파 보고서는 별게 아닌 것을 알고 포기했었던 모양이다. 화단 곳곳에 조그맣게 올라 와 있는 것이 그리 예뻐보일 수가 없다. 별로 관심들이지 않고, 물도 주지 않았는데, 그간 간간히 왔던 빗물로 저렇게 나올 수 있었나 보다.
아무튼 그래서 그때 심다 남은 스무개 정도의 씨알을 다시 모아서 심었다. 이전에는 띄엄띄엄 심었는데, 아무래도 보기에는 모여져 있는 것이 나을 듯 보여 집 앞 쪽에 집중적으로 심고, 물을 주었다.
예전에는 이런 일 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이런 것들을 심고 그것들이 키워져 나오는 것을 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뒷 "가든"의 새 생명들도 잘 자라주고 있다. 호박 (squash)은 그 성장 속도가 가장 빨라서 같이 파종을 한 것이라고 하면 믿지 않을 정도이다. 다른 상추나, 고추, 깻잎도 싹들이 꽤 많이 올라 왔다.
상추와 깻잎은 많이 솎아 주었는데도 싹들이 많아, 계속 솎기만 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좁은 면적만 "개간"을 해 놓아서 내가 욕심부리려고 솎아주지 않다가는 남은 "병사" 모두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고심을 한 끝에...
뒷마당 한켠, 휴지통을 두는 옆쪽에 땅을 좀 더 개간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제 쇼핑을 할 때, 질 좋은 흙을 팔기에 그것도 사 온 터였다.
원래 잔디가 자라나 있지 않던 좁고 약간 길쭉한 땅에 외출 하기 전 물을 잔뜩 뿌려 놓고, 다녀 와서 흙을 뒤집었다. 그리고, 사온 그 "영양가 뜸뿍"한 흙과 섞었다. 아... 그 포대의 뒷면에 여러가지 영양소가 있다고 써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색이나 내용물들이 좋아 보여서 그런지, 정말 이 흙에 뭍혀 있으면 사람도 키가 부쩍 클 것 같은, 흐뭇한 느낌이 드는 흙이었다. (역시, 돈 들여 투자를 해야된다!)
거기에다, 원래의 그 뒷 가든에서 복잡하게 지하철 타듯 심어져 있던 것들을 골라서 옮겨 심었다. 이번에는 여기서 아주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깻잎 위주로 옮겨 심었다. 아주 작은 싹에 불구함에도 (저런 귀한 생명체에게 '불구함'을 쓴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 비싸다는 말 때문인지 무척 귀여워 보인다. 저 놈들 잘 자라주면 그간 내가 투자한, 삽값, 비료값, 물값, 나의 엄청 비싼 노동력, 시간 등이 모두 다 만회될 수 있을 것이다. 음하하하...
옮겨 심어 놓고, 원래의 가든에다도 그 '영양제 흙'을 뿌려 주었다. '너희들이 잘 사는 것이, 우리 식구 잘 사는 거다'라고 쑥쑥성장을 기원하면서...
잘 자라서, 내가 원하는 대로 양질의 채소가 공급되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사실 그렇지 않아도 큰 상관 없을 것 같다. 아침마다 물 주고, 이렇게 가끔씩 솎아 주고, 옮겨 심고 하면서 흙을 만지는 일이 무척 만족스럽다. 생존을 위해 이렇게 한다면 다른 생각이 들겠지만, 취미 비스무리하게 하고 있으니 (지금까지는) 아주 재밌다. 더구나, 내가 뿌린 정성을 저렇게 자라줌으로 '보답'하고 있으니 누군들 쓰다듬어 주고 싶지 않을 수 있을까.
큰 삽, 모종삽으로 흙을 파면 나는 '삭...삭...'하는 흙만지는 소리는 흙 냄새와 함께 아주 듣기 좋은 소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느니 같은 익숙한 표현을 굳이 들먹일 필요 없이, 나는 흙과 이렇게 가까이 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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