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St.Louis) 정착기

큰 농사 시작한 따뜻한 봄

남궁Namgung 2010. 4. 19. 08:30

 어제, 오늘, 아침 저녁으로 약간 선선한 기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꽃가루가 아주 많이 날리고 있어, 수업시간이나 사무실에서 재채기를 하는 소리들이 많이 들리고 있다. 비라도 한번 시원하게 내려줬으면 하는 바램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이런 좋은 날씨에 만족하고 있다.

 

낮에 장을 보러 갔다가, 마트에 있는 꽃뿌리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적당한 햇빛도 계속 되고 있고, 기온도 적당해서, 뭐든 심기만 하면 (내가 심더라도)잘 될 것 같은 착각을 갖고 있어서 그랬는지 몰르겠다. 글래디올러스 (Gladiolus)라고 이름이 적혀 있고, 봉투 안에는 작은 양파 같은 것들이 들어 있는데, 사진의 꽃들이 이뻐 보이기에 한봉지를 카트에 담았다.

 

저녁에 집 앞으로 좁게 나 있는 화단에 모종삽으로 조그맣게 파고는 유빈이와 혜빈이한테 앞뒤가 바뀌지 않게 잘 넣으라고 했더니, 제법 잘 찾아서 그 작은 구덩이에 집어 넣는다. 그동안은 아무 것도 심지 않았던 텅빈 화단이기에 이곳에 심어서 잘 자란다면 정말 보기 좋겠다는 생각인데, 글쎄... 이 초보자의 실력으로 가능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몇주전에 이 화단에 꽃을 심어보겠다는 의지로 꽃씨를 뿌린 적이 있었는데, 아니 그 놈의 다람쥐들이 어찌 알았는지 심어 놓은 그 꽃씨를 심은지 다 파먹어 버렸다. 심은지 두세시간 밖에 안된 것인데, 그 작은 꽃씨 냄새를 맡고 온 것인지, 나무 위에서 내가 하는 것을 쳐다 보고 있다가 내려 온 것인지 몰라도 참 허무한 경험이었다.

 

오늘도 심어 놓고, 비료를 약간 뿌리고, 물을 준 후에, 한시간 정도 후에 나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람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약간 흩어 놓은 자국이 있다. 그래도 씨가 아닌 것을 알았는지 파 먹지는 않았는데, 내일 다시 나가서 확인해 볼 일이다.

 

이렇게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인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빠의 작업 기록을 남기려고 그랬는지, 유빈이가 사진을 찍어 놓았다.

 

 

 

 

 

 

 

일전에 화분에 파종을 해서 싹이 자란 것을 텃밭(!)에 옮겨 심은 호박 (squash)은 아지까지는 잘 자라주고 있다. 이 초보 농군은 저 몇몇 싹을 볼때마다 신기하다.

 

텃밭 남는 자리에는, 엊그제 아시아 마켓 가서 사온 "우리" 야채씨를 좀 뿌렸다. 깻잎, 고추, 오이, 상추인데, 상추 말고는 여기서 모두 비싸게 주고 사 먹는 것들이라서, 잘 자라 우리 가계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들이다.

 

 

 

 

 

호박 (squash)과 같은 날 심었는데, 녹색 피망 (green pepper)은 이제서 새끼손가락 만하게 싹이 났다. 정말이지 더디고 더디도다.

 

 

 

 

처음 텃밭을 갈고 씨를 뿌릴 때, 아내가 채소 토끼들이 다 와서 먹으면 어떡하냐는 걱정하는 소리를 하기에 "아직 싹도 나지 않았는데, 별 걱정 다한다"고 가벼운 핀잔을 준적이 있는데, 처음 해 보는 것이라 앞으로의 과정이 설레기도 하면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 기대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든, 요즘 흙을 파보고, 씨를 심고, 물을 주고, 싹을 기다리면서 내 스스로 무척 만족하고 있다. 또, 유빈이 혜빈이도 신기해 하면서 내 작업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는데, 애들 정서적으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우스로 옮기고 추운 겨울을 보낸 후 맡는 봄이라 그런지, 아니면 저런 "큰(!)" 농사를 시작해서 그런지, 이번 봄은 무척 따뜻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