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St.Louis) 정착기

잔디 깎는 날 1

남궁Namgung 2009. 8. 9. 12:16

 

 집주인이 앞마당, 뒷마당의 잔디밭을 보이면서 잔디 깎을때 운동도 되고 좋다며 농담투로 말하기에, 저것 조금 한다고 뭐가 운동이 되겠나 속으로 생각하며 진짜 농담으로 생각했다.

 

늦봄부터 시작해서 늦가을까지 어디를 가도 잔디깎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 어렵지 않은 몸동작으로 기계 (lawn mower)를 움직이는 것으로 보여서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다행 이 집으로 들어오기로 결정한 후, 이곳 저것 거라지 세일 (garage sale)을 다니면서 일찌감치 잔디깎는 기계를 꽤 싼 가격으로 구입해 놓았었다. 대부분 기름 (gasoline)을 넣어서 작동시키는 것을 쓰던데, 내가 구입한 것은 전기 코드를 끼워서 써야 하는 것이었지만 워낙 싸게 흥정을 해서 샀기에 적당한 불편은 감수하며 쓰리라 생각했었다.

 

집에 들어 온지도 어언 3주 정도 되려나. 그간 한번도 잔디를 깎지 않다가 어제 갑자기 "깎자!"고 결심하고 학교에서 돌아 오면서 잔디며 나뭇가지 등 뒷뜰에서 나오는 것들을 담는 큰 종이 봉지까지 사왔다. 기계에 긴 전기 코드를 연결해서 뒷마당부터 기계를 끌고 다니는데...

 

어... 이거 생각보다 장난이 아니다. 일단 뒷마당 자체가 평평하게 고르지 않고, 싼게 비지떡이라 그런지 내가 아직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지 기계도 생각보다 잘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 거기다가 긴 전기 코드를 이곳 저곳 같이 움직이면서 다니니 힘이 훨씬 더 들어 간다.  뒷뜰을 적당히 끝내 놓고, 앞뜰 잔디를 깎는데 힘이 부쳐서 중간에 집에 들어와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였다.

 

이사를 하면서 체력이 어느 정도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착각이었던 듯 싶다. 잠시 앉아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한 뒤에야 다시 작업에 들어가서 가까스로 잔디 깎이를 마쳤다. (전기 선이 짧아 아주 일부분은 남겨져 있지만, 그 바닥난 체력에도 거의 다 마무리를 했다는 점에 스스로 뿌듯해 한다.)

 

학창시절 참으로 좋은 시를 참으로 지겹게 공부해야만 했던 시 중의 하나가 바로 김수영 시인의 "풀"이었던 것 같다. 지금 인터넷으로 바로 찾아 보니 쉽게 전문이 나온다.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여기서 "풀"이 의미하는 바가 힘없는 민중이니 어쩌니 하는 식의 해설을 했던 것 같은데,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여기 얘네들 문화에서는, 잔디 깎이로 윙...하고 깎아 버리는 문화에서는 저와 비슷한 시가 있을 수 있을까 생각도 해 본다.  

 

잔디를 깎는 사이 유빈이가 다시 디카를 들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다. 생각없이 찍은 것이겠지 하고 그냥 훑어 보다가, 그래도 제 나름 (양쪽 옆집을 넘나 들며) 뭔가 제대로 찍어 보려고 한 모습이 보여서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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