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미국 전역의 범죄가 급감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80년대부터 증가하던 범죄는 그야말로 걷잡을수 없이 증가해서, 당연히 많은 정치인과 범죄학자들의 우려를 불러 일으켰고, 일부 학자는 아주 비관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어느 누구의 예측을 피하면서, 범죄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상징적인 도시이면서도 범죄 다발 도시로 악명이 높았던, 뉴욕시의 범죄가 급감한 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특히, 1990년대 초반 뉴욕시의 치안 책임을 맡게 된 윌리엄 브래튼 경찰국장이,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 (Broken Windows Theory)"을 실제 치안에 적응해서 크게 호응을 얻게 되었고, 경찰과 시 정부에서는 그들의 치안 정책이 범죄를 감소시켰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기도 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범죄학 이론 중에서도 유명한 이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고, 특히 경찰과 관련한 이론을 열거한다면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론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주 사소한 비행이나 무질서를 해결되지 않고 관용되면 그 같은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결국은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즉, 어느 건물의 유리창이 깨진 상태로 방치되면, 그 건물의 다른 유리창도 깨어지고, 휴지가 날아들며 결국은 방화나 다른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브래튼 경찰국장은 뉴욕시의 치안을 맡으면서 당시 악명 높던 뉴욕시 지하철의 사소할 수 있던 범행들, 그래서 방치되었던 무질서 행위들을 먼저 척결하기 시작했다. 많은 경찰력을 지하철에 투입하여 지하철이나 역사에 낙서를 하거나 노상 방뇨하는 행위, 돈을 내지 않고 탑승하는 행위들을 모두 잡기 시작했고,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런 무질서 행위가 척결되면서 뉴욕시의 범죄도 크게 감소했다는 설명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이론이 아주 단순 명료하고, 특히 일반인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 무질서를 바로 잡는 접근 방법때문에 시민들로부터 크게 호응을 받았지만, 과연 이 같은 방식이 진정 뉴욕의 범죄 감소로 이어졌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무엇보다, 브래튼 경찰국장이 취임 하기 전에 이미 범죄 그래프가 감소 추세로 바뀐 상태였다는 점, 뉴욕시와 같은 접근방법을 취하지 않은 다른 도시에서도 범죄가 크게 감소했다는 점, 그리고 단순히 그 같은 접근 방법 뿐 아니라 경찰관 수의 증가나 다양한 과학 기술이 치안현장에 적용되었다는 점 등을 들면서, 뉴욕시의 이른 바 무관용 경찰활동 (zero tolerance policing)의 성과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 학자들도 많다.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번역되어 잘 알려진 "괴짜 경제학 (Freakonomics)"라는 책에서도 이 문제를 책의 앞 부분에서 꽤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범죄 문제를 경제학 측면에서 연구하기로 유명한 스티븐 레빗 (Steven Levitt)이 저술한 책인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어렵지 않게 쓰여진 책이고, 경제학자인만큼 다양한 수치와 근거 자료를 제시하면서 설명하는 그의 논리는 흥미진지하다.
스티븐 레빗은 미국 범죄가 감소한 이유가 "낙태 허용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어느 범죄학자나 정치인도 생각하지 않았던 아주 독특한 발상인데, 이 책 뿐 아니라 저명한 학술지에도 발표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 대법원의 1973년 판결 (Roe v. Wade 사건)로 낙태가 합법화 되면서 결과적으로 범죄가 큰 폭으로, 그것도 갑작스럽게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즉, 태어나더라도 부모의 보호나 감독, 양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범죄의 길로 빠질 많은 "잠재적 범죄자"들이 낙태로 인해 세상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었고, 그래서 범죄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자료에 따르면 판결 이후 매년 160만건의 낙태가 행해졌다고 한다.)
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르는 연령대가 18세에서 24세가량이라고 한다면 1973년에 태어났을 태아들은 1990년이 17세 정도 된다는 점도 그의 논리 중의 한 부분이다. 또한, 대법원 판결 이전에도 이미 낙태가 허용되었던 5개의 주에서는 다른 주보다 범죄의 감소가 미리 나타난 점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범죄 감소의 1/2은 낙태 허용으로 인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낙태가 허용되는 한 앞으로도 범죄가 지속적으로 감소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양한 범죄, 낙태 관련 데이터를 이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또 다른 여러 학자들은 그 데이터 분석에 헛점이 있다면서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일견, 원치 않는 아이들이, 부모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는 여성이나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범죄의 길로 빠지기 쉽다는 주장은 신선하면서 수긍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시기상으로 우연의 일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 비슷한 접근 방법으로 영국의 자료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영국에서는 미국 보다 낙태 합법화가 1968년으로 5년 더 빨랐음에도 범죄가 감소한 것은 미국과 비슷한 시기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범죄 문제를 연구하고 분석하고, 그에 대해 또 다시 재평가하는 학문 분위기는 부럽다. 미국의 범죄학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아직 범죄의 원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 내지 못하고, 또 범죄에 대한 대책도 뚜렷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냉소적인 시각도 상당히 있다. 하지만, 여러 사회 현상들과 마찬가지도 범죄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연구하고, 그 연구를 다시 수행하면서 설득력이 있는지 재평가하는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해결책에 접근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최근 미국의 낙태 시술 의사 한명이 낙태 반대론자에게 권총으로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낙태의 도덕성은 별론으로 하고, 일종의 증오 범죄 (hate crime)이라고 해서 아직도 그 논란은 가라 앉지 않았다. 적어도 이 사건에 한해서는 낙태가 범죄를 증가시켰다고 할 수 있다.)
'Readings' 카테고리의 다른 글
Culture of Honor (0) | 2009.07.10 |
---|---|
A Geography Of Time (0) | 2009.06.24 |
The Sociological Spirits (0) | 2009.06.16 |
Police work is, after all, work. (0) | 2009.04.16 |
명장은 연장 탓 하지 않는다 (0) | 2009.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