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이고 해서 정신이 없어 쓸 기회가 없었지만, 얼마 전 장영희 교수님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그 분을 잘 알지 못하고, 그 분의 책이래봐야 "문학의 숲을 거닐다" 한권 밖에 읽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샘터"를 즐겨 읽던 때, 그 조그만 월간지에서 그 분의 글을 매달 읽어 볼 기회가 있었고, 그래서 나만 괜히 친근감이 느껴지고, 이번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인터넷 뉴스를 통해 보고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더구나, 나는 그분이 장애자라는 사실 외에는 개인적인 내용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지 못했는데, 그 분이 여러가지 병과 싸우시다 어머니를 남기고 먼저 세상을 뜨셨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더 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을 때도 그렇지만 "샘터"에 연재되던 그 분의 글을 읽노라면 가슴이 따뜻해 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고, 괜히 여기 저기에 밑줄을 긋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글이 글을 쓰는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분의 글을 보노라면 그 분이 정말 따뜻하고, 정감 있는 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곳에서 고생하신 만큼 하늘 나라에서는 고통없이 좋은 글 쓰실 수 있길 조용히 바래본다.
조선일보에 실린, 장영희 교수에 관한 짧은 칼럼.
소녀 같은 단발머리에 옅은 미소,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 때문에 사람들은 장영희 교수가 조용하고 나직하기만 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다른 모습도 기억한다. 빠른 서울 말씨로 단칼에 푹 찌르는 촌철살인. 어느 해 가수 조영남이 장 교수 생일잔치를 열어주자 "둘이 결혼하는 거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장 교수가 한 마디로 주변을 잠잠하게 했다. "난 처년데 아깝잖아!"
▶장영희 교수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앉지 못해 누워만 있던 소아마비 1등급 장애우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엄마 등에 업혀 학교에 갔고, 엄마는 그를 화장실에 데려가기 위해 두 시간에 한번씩 다시 학교에 갔다. 그 후에도 평생을 목발에 의지한 삶이었다. 그러나 장 교수는 '천형(天刑)'이란 말을 제일 싫어했다. 그를 버티게 한 건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읽은 헨리 제임스의 '미국인'이라는 책에는, 한 남자의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 라고."('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 교수가 생산하는 희망의 바이러스는 그의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역경에 부딪히고 삶에 지친 동시대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2004년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이 재발하자 그는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고 썼다. 일산 국립암센터의 환자들을 위한 서가에 장 교수가 쓴 책들이 그렇게 많이 비치돼 있고 손때가 묻어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장 교수의 글이 주는 치유의 힘을 '장영희 효과'라고 했다.
▶장영희 교수가 8년에 걸친 암 투병 끝에 9일 천국으로 갔다. "남보다 느리게 걷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장 교수였으니, 짧은 생애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많이 보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겼다. 그는 조선일보에 연재한 '영미시 산책'에서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가 된다"고 했다. 힘들어도 다들 힘을 내 자기 안에 있는 용기와 인내, 열정의 깃발을 다시 흔들자는 얘기였다. 장영희 교수의 명복을 빈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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