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겠지만, 아이들이 커서 이제는 나와 아내와 보내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더 선호하고 어떻게든 핑계를 찾아 저희 나름의 이벤트를 만드려고 하고 있다.
얼마 전 토요일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토요일임에도 나와 아내만 집에 남는 일이 생겼다. 유빈이는 제 친구가 속해있는 운동팀이 경기를 하는데 가보고 싶다고 하면서 아침 일찍 나갔고, 혜빈이는 며칠 전부터 동네 친구와 함께 쇼핑몰을 가기로 계획을 한 터였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인근의 공원에서 하이킹을 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바이러스 때문에 이전의 상황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정도의 제한된 유흥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덕에 아내와 둘이서 가까운 주립공원으로 하이킹을 다녀왔다. (2021. 5. 15.)
록스보로우(Roxborough)라는 공원으로 지난해에도 간단한 하이킹을 했던 곳이다. 몇 주 전에도 아내와 혜빈이를 데리고 갔었지만 눈이 채 녹지 않아 산책길이 온통 진흙탕이라서 포기한 적도 있다.
이날은 날씨가 좀 흐리기는 했지만 덥지도 선선하지도 않은 매우 적당한 기온에, 주말임에도 사람들이 많지 않아 아주 여유로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고, 표지판에도 약간 힘든 정도의 코스(Intermediate)라고 표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와 아내가 큰 무리 없이 하이킹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초보자 수준보다는 약간 어려운 정도의 길이었다고 생각된다.
지난번에 짧게 걸었던 길이 다소 평탄한 산책길이었다면, 이날의 길은 길의 폭이 넓어졌다 좁아지기도 하고, 짧은 계단이 있다가 흙길이 있기도 하며, 오르막과 내리막이 아주 적절하게 분배되어 있어서 하이킹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산행"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쉬운 길이었지만 무엇보다 더 맑은 공기와 더 고요한 분위기에서 아주 넉넉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한 시간 정도를 보낼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는 어디를 가든 가급적이면 나의 오감을 모두 활용해서 그 자리의 분위기와 기분을 만끽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평소 많이 의식하지 않는 후각이나 청각에 주위를 기울이다 보면 이전보다 감동과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런 오감을 가득 활용하는 방법은 이런 산행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왔다.
일부러 산속의 내음을 일부러 맡으려고 노력하고, 새 소리나 작은 짐승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노라면 정말 내가 자연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더욱더 아이들이 없이 아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질 텐데,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서로에게 유익하고 행복한 시간이 될 지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