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JS식당의 추억

남궁Namgung 2020. 6. 6. 11:51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화씨로 90도(섭씨 약 32도)가 넘는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외출을 전혀 하지 않고 거의 집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잠깐 뒤뜰에 나가 있으면 그 따스한 온기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날이 따뜻해질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뒤뜰의 잔디 성장 속도이다. 몇 해 동안 스프링클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다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말썽 부리던 것을 고치거나 교체했고, 뒤뜰의 경우 일부 커버가 되지 않는 부분에 새로 설치하기도 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잔디에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무관심하게 보냈다가 잔디의 일부가 크게 상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강하게 잘 자라나는 "양잔디"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강렬한 태양을 맞으면서 제대로 된 수분과 최소한의 관리가 없을 경우에는 무엇이든 살아 남지 못한다는 큰 교훈을 얻기도 했다. 과연 제대로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근처 홈디포에서 흙을 사다가 더 뿌리고 씨도 뿌리고 물도 꾸준히 주는 것을 계속했더니 다행히 이전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오기는 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물주는 횟수를 약간 늘리고 이전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던 비료도 사다가 앞뒤에 뿌려주기도 했다. 약 2주 전쯤에는 저녁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기에 기왕이면 일부러 물 주지 않아도 될 날씨에 잔디를 깎는 것이 좋겠다 싶어 잔디깎이를 움직였다. 그 며칠 전에 월마트에 갔다가 잔디 씨와 비료를 사놓은 것이 있어서 잔디 깎은 후에 그것들도 뿌려 놓을 계획이었다. 

 

잔디 깎은 후에 앞뜰부터 비료를 뿌렸는데, 예전 시골의 농부가 논에 비료나 제초제를 뿌리듯 조그만 포대에 담긴 것을 손으로 한움큼씩 쥐어 뒷걸음질하며 뿌리기 시작했다. 잔디를 깎을 때부터 옆집 아저씨의 사위가 집 옆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있었는데, 내가 비료 뿌리는 것을 보더니 내게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약간 술이나 다른 것에 취한 듯 목소리가 그리 명쾌하고 맑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잔디 관리하는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며 내가 비료 뿌리는 방식이 옳은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비료가 잔디의 전체적인 부분에 균등하게 뿌려져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자라게 하려면 살포기(dispenser)를 이용해서 뿌리는 것이 좋다는 말이었다. 하긴 나도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아왔었고, 이웃 중에도 이것을 이용해서 뿌리는 것을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잔디밭에 비료 조금 뿌리려고 그런 도구까지 사야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그런 것을 이용해 볼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아저씨(30대 중후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의 말에 나도 올해까지만 해보고, 내년에는 한번 고려해 보겠다고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그리고는 뒷뜰에도 그저 손으로 좌우에 흩뿌리듯 비료를 주었다. 

 

그런데 그 후 잔디가 자라나는 상태를 보니 옆집 아저씨의 말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알지 못했었을 텐데, 그 전문가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나서 잔디의 성장 상태를 보니 내가 뿌린 비료에 맞았던 부분들에서 잔디들이 유독 더 푸르고 길게 자라고 있었다. 어제 잔디를 깎기 전에 길게 자랐던 잔디를 상태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 일정한 패턴을 그리며 잘 자라고 있는 부분과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부분이 구분이 되고 있었다. 

 

멀리서 언뜻 보면 그리 나쁜 상태는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아직도 특별 관리를 요하는 부분이 많다. 
아직도 군데 군데 구멍난 곳이 있어 이 작업도 해야 한다. 옆집 아저씨 말로는 병든 부분이기 때문에 가을이 되면 땅을 좀 긁어 내었다가 잔디씨를 뿌리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뒷뜰 연못 자리를 메운 곳에 새로 흙을 더 뿌렸고, 거기에 잔디씨를 뿌린 것이 나고 있다. 이것도 아주 균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분부분 나고 있어서 앞으로 조금만 관리해 주면 정상화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 것이고, 집안 일이건 정원 일이건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다. 그 쌀알갱이만 한 비료들이 손으로 뿌려지면 대충 골고루 퍼져서 일관되게 잔디들이 잘 자랄 것이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관리인이나 하는 일인 것이었다. 비료는 1년에 한 번 정도 준다고 하는데, 올해는 이렇게 지나가지만, 내년에는 그 살포기를 사서 제대로 해야 하는 또 다른 교훈을 배웠다. 


어제 오후에 그렇게 울긋불긋하리만큼 다양한 생각을 보이고 있는 잔디를 깎고, 가족들의 요구에 근처 중국집에 가서 짜장과 짬뽕, 탕수육을 시켜 와서 함께 먹었다. 우리 가족이 한달이면 한두 번은 꼭 방문하곤 했던, 한국 마켓 옆의 중국집도 이 바이러스의 타격에서 빗겨나가지 못했다.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 규제가 다소 완화되면서 주문 후 직접 가져가는 것은 할 수 있도록 영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제도 전화로 주문을 하고 그 가게로 갔더니 가게 안에 손님이 앉던 의자는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채였고, 불도 많이 켜놓지 않아 누가 언뜻 보면 아직도 영업을 재개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분위기였다. 하긴 주문 후 픽업만 하도록 하고 있으니, 완전한 영업 재개는 아닐 것이다. 

 

익힌 면과 국물, 따뜻한 채 담겨진 탕수육을 집으로 가져와 애들과 같이 옹기종기 모여 먹노라니, 그래도 아직 그 맛은 비슷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조금씩 세상이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가급적이면 더 빨리 세상이 깨끗해져서 힘든 사람들이 얼른 제자리에 돌아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나와 가족들이 좋아하는 이 중국요리를 먹고 있노라니, 엊그제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들은 고향의 중국집 아저씨 얘기도 떠올랐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조그만 가게를 하실 때 바로 길 건너에는 JS식당이라는 중국집이 있었다. 집 바로 앞이기도 한 데다가 그때도 중국음식을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참 오랫동안 이 식당의 음식을 맛있게 먹었었다. 더구나 이 아저씨의 따님은 나와 학교 동창이기도 했고, 어려서 자주 어울려 놀기도 했던 친한 친구였다. 

 

엊그제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이 식당의 아저씨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아직도 수타면을 팔던 시절에는 긴 면을 판에 탕탕 두드리던 그 힘센 아저씨, 양손에 무거운 음식통을 쉽게 나르시고, 오토바이로 여기저기 부지런히 움직이시던 아저씨였다. 그렇게 젊은 시절의 아저씨로만 생각했는데, 하긴 내가 나이 든 것을 생각하면 그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많이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참으로 부지러하시던 아저씨와 그 아주머니는 동네에서 운동회나 면민 체육대회 같은 큰 행사가 있으면 며칠 동안 준비를 하셨다가 그 행사에서 큰 천막을 치고 국밥 같은 음식을 파시 기도 했었다. 집 바로 앞이었기 때문에 행사 준비를 위해서 수일 전부터 부지런히 일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체육대회 같은 행사 당일에는 어머니가 사셨거나 얻어오신 식권으로 그 국밥도 많이 먹었었는데, 아직까지 그때 먹었던 국밥만큼 맛있게 파는 식당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억에 오래 남는 음식을 만드시기도 했었다. 친구의 아버지였지만 대화를 하거나 다른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내 기억에 가장 맛있는 중국 음식점의 사장님이시던 그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가슴 아팠다.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이 집 딸내미, 나의 친구도 미국에 와서 산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있는지 어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주위 친구의 부모님들께서 세상과 이별하시는 소식을 더 자주 듣게 된다. 내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소식도 슬프지만, 홀로 계신 어머니와 장모님께서도 하루 하루, 한 달 한 달 더 늙어가시고 계신다. 나나 아내가 함께 곁에서 보낼 날이 이렇게 하루하루, 한 달 한 달씩 더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아쉽고 한탄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