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이면 봄학기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모든 과목들은 기말고사가 치러지고 있다. 물론 온라인 학사관리시스템을 통하기 때문에 고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차분하게 처리되고 있다. 일부 과목은 금요일, 일부 과목은 일요일이 마감이기 때문에도 아마도 금요일과 일요일에는 인터넷 접속이나 웹브라우저 등의 문제로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는 학생들의 이메일이 몇 통 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 이외에는 정말 조용하고 잠잠하게 학기가 마무리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전의 학기가 북적북적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대면강의를 하는 수업들도 이번 학기말고사 주간에는 기말고사를 위한 단 한 번의 수업만 있었을 뿐이고, 시험에 큰 불만이나 이의가 없는 한(아직까지는 없었다) 그대로 최종 학점이 산정되어 학교의 시스템에 그 학점을 입력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만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지난 학기동안 열심히 수업을 수강하고 여러모로 협조해 준 점에 대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직접 그리 말할 기회는 없어졌다. 시험이 다 끝난 후에도 강의실을 그대로 나가지 않고, 일부러 강의실 앞쪽에까지 걸어와서 내게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예의 바른 학생들이 몇몇 있었는데 이제 그런 인사를 받을 일도 없다. 하긴 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악수를 하는 문화가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학사관리시스템과 이메일을 통해 비슷한 인사와 앞으로의 격려를 하겠지만 직접 웃는 얼굴로 진실된 나의 의사표현을 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여름학기에도 상당수의 과목들이 진행되는데, 특별한 예외가 없는한 이 또한 온라인으로 강의되는 것이 일찍이 결정되었다. 이보다는 8월에 시작되는 새로운 학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교직원과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직 어떤 과목이 캠퍼스에서 제공되고 어떤 과목을 온라인으로 수강해야 하는지 등의 구체적인 것까지는 완전히 확정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간 학교에서 온 여러 이메일을 종합해 보면 8월에 시작된 가을학기는 거의 대부분의 과목이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제 저녁에 발송된 학과장의 이메일에 따르면 내가 일하는 범죄학과의 경우에도 예외 없이 거의 모든 과목이 온라인으로만 가르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올 연말까지 캠퍼스에 갈 일이 전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 몇 권과 몇몇 용품 등은 내 사무실에서 미처 챙기지 못했는데, 아주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캠퍼스 방문 자체를 자제하라는 공고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굳이 학교에서 들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유빈이와 혜빈이의 학교는 계속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아이들의 학군에서는 아직 가을학기의 진행 방식에 대해서 결정되지 않았다. 대학교와는 달리, 초중고의 경우는 학생들의 학업과 함께 그들의 건강과 안전문제는 물론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했을 경우 부모들이 제공해야 할 여러가지 가정교육 및 보육환경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자들의 고심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아마도 7월 경이나 되어야 좀 더 정확한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싶지만, 계속 학교에서 발송되는 이메일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공고문을 꼼꼼히 읽고 있다.
여름학기야 기존에도 계속 온라인으로만 가르쳤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다만 이번 여름에는 새로운 과목(조사방법론)을 가르치겠다고 신청한 이후에 이 과목으로 온라인으로 전환하기 위해 강의계획서와 강의물들을 계속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을 학기에도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과목들은 기존에도 그리 해왔기에 거의 부담이 없지만, 강의실에서 가르치던 것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의 진도가 생각보다 더디다. 동일한 조사방법론(Research Methods and Basic Statistics) 과목인데 과목의 특성상 온라인으로 교수하기가 다른 과목에 비해 다소 까다롭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8주동안 진행되고, 가을학기에는 15주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이 동일한 과목을 다른 기간 동안 일관되게 가르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이 가장 고심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이번 한번 작업(?)을 할 때 공을 들여 다음 가을학기에 진행할 부분까지 고려를 해야만 가을학기 시작 전에 다시 큰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수정하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까지로서는 강의계획서의 개괄적인 뼈대를 완성했고, 강의 관리시스템의 구조도 어느 정도 안을 잡아 놓았다. 각 강의 단계별로 강의물과 과제물을 서로 연관되게 구성해서 시스템에 올려놓는 일들을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 여름학기가 6월 8일에 시작되니 이제 3주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지금보다 시간과 노력을 좀 더 들이면, 여름학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리고 가을학기가 시작되기 전의 일부 수정하는 데에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이제 많은 주에서 차츰 사업체와 직장들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사람들이 이런 특이한 상황에 대부분은 적응한 듯 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거의 모든 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장갑을 끼고 다니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마더스데이(Mother's Day)이기도 했고, 한참 동안 집밖 나들이를 못해 답답해하는 아내와 거의 두 달 동안 집 밖에서 한 발짜국도 나가지 않은 혜빈이를 데리고 캐슬락(Castle Rock)이라는 동네의 아웃렛에 잠시 다녀오기도 했다.
우연히 본 콜로라도의 뉴스에서 이 캐슬락의 아웃렛이 지역의 쇼핑몰 중 문을 연 몇 안 되는 곳이라는 소식을 듣고 간 것이었다. 다른 아웃렛은 폐쇄형 구조라서 출입문을 열고 들어 가야 수십 개의 상점에 접근할 수 있는데, 이 캐슬락은 개개의 상점들이 별도의 출입구가 있어서 일찍 문을 열었다는 이유였다. 물론 이 지역 자치단체가 이를 미리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전에도 꽤 방문했던 이곳은 그 넓은 주차장에도 별로 많지 않은 차가 있었고, 통행하는 손님들의 모습도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아마 우리가 찾았던 시간이 문을 닫기 얼마 전이었기 때문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쇼핑을 하면서도 아내와 혜빈이는 가게에서 제공하는 소독제와 비닐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다녔다. 물론 집에서 챙겨간 마스크는 계속 착용하고 다녔다. 아마도 한동안은 이 같은 현상이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한국에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것 같이 일부 자각증상 없는 환자나 증상이 있으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없이 공공장소나 대중이 모이는 장소를 활보할 경우에 이전과 같은 혼란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염려가 있다. 즉 집 밖을 외출해서 다닐 때의 나의 행동은 내가 통제하면서 조심할 수 있지만, 몰지각한 사람들의 배려 없는 행동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걱정은 한동안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큰 일을 겪은 이후에 그 충격과 파장이 어느 정도 가라앉게 되었을 경우에 종종 듣거나 하게 되는 말 중의 하나가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혹은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와 같은 말 들이다. 영어로도 "Life still goes on." 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도 수업 중에 가끔 써먹고는 했었다. 물론 이전에 이 말을 사용했을 때는 지금의 상황보다는 훨씬 양호한 일들이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 주에 있었던 수업들이나, 시험이 어려웠었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종종 들었을 때 등이다.
나도 이제 학생들에게 이같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해서 학업을 중단하지 말라거나, 힘을 내라는 등의 격려의 말을 하고 있다. 학생들도 이제 이 정도의 조언은 받아들일 여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다. 즉 "Life goes on."이라는 말을 할 정도의 여유는 있을 것이라 전제를 하고 있다.
한동안 집 밖의 앞뜰과 뒷뜰 일을 게을리했었는데, 얼마 전부터 잔디를 깎고 스프링클러를 다시 켜는 일부터 시작했다. 한동안 잎사귀가 전혀 열지 않아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던 집 앞의 큰 나무도 자세히 살펴보니 조그만 잎이 터지고 있었다. 이사 오기 전에 뒤뜰에 있던 조그만 연못 자리를 흙으로 메꾼 후 채소를 키워 먹을까 하다가 포기했던 가장자리 부분에도 새로 흙을 사다가 덮고 그 위에 잔디 씨도 뿌렸다. 아직은 소식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잔디가 솟아오르길 기대하고 있는데, 아마도 한 포대는 더 사다가 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엊그제는 아내에게 며칠 동안 졸라 집에서 탕수육을 해 먹었다. 집 가까이에 있어서 자주 가던 중국집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픽업을 할수는 있다고 하는데 당분간은 더 조심하는 차원에서 자제하기로 했다. 그 대신 아내가 오랜만(혹은 처음으로) 집에서 탕수육을 했는데, 닭고기로 만든 이 탕수육이 처음 만든 것치고는 맛과 모양이 너무 그럴싸했다. 아이에게 준 접시에서도 남겨진 고기가 전혀 없었던 것을 보면 맛이 있던 것은 확실하다. 아내는 주말에는 돼지고기로 다시 한번 해 먹자고 해서 고기를 사 온 상태인데, 기대가 된다.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삶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인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집에서 탕수육이나 족박을 해 먹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이 혼란하고 불확실한 시간에서도 조금씩 불편에 적응하고 어려움에 익숙해지고 있다. 다만 이런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전혀 과장 없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남궁현 사는 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코로나바이러스 이후 10) (0) | 2020.05.25 |
---|---|
이상 상황에의 적응(코로나바이러스 이후 9) (0) | 2020.05.18 |
털고, 쓸고, 닦자(코로나바이러스 이후 7) (0) | 2020.04.28 |
Coming Home(코로나바이러스 이후 6) (0) | 2020.04.25 |
무림 고수의 비법서 활용기 (0) | 2020.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