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억지로 정신 차리기

남궁Namgung 2020. 1. 27. 09:12

한가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 (2020. 1. 26. )

 

날이 무척 포근해서 초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고, 이러다가는 동네의 나무며 잔디들이 시절을 착각하고 새 잎을 피우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지역 뉴스를 들어 보니 이곳에서 1월에 눈이 오지 않은 것은 관측을 시작한 이후로 세번째라고 한다. 눈이 오지 않아 출퇴근하는데 그나마 불편이 덜해서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같은 특이한 변화가 남은 계절에 다시 어떤 특이한 영향을 가져오지 않을지 걱정이다. 

 

1월도 벌써 4주가 흘렀고, 내일부터 마지막 주를 시작할 것이다. 이전에는 세월 참 빠르다는 어르신들의 한탄 반, 놀라움 반 섞인 푸념을 자주 듣곤 했었고 어떤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그 말을 내가 자주 하고 있다. 


2020년 봄 학기의 첫 주를 보냈다. 이제 적응이 될 만도 할 텐데 첫 시간에 학생들을 처음 만나는 시간은 여전히 긴장된다. 월요일과 수요일이, 그리고 화요일과 목요일이 같은 과목의 수업이 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었던 관계로 화요일과 수요일에 모든 수업의 학생들을 처음 만났었다. 

 

한참 전부터 학생들은 모든 수업에 등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겨울방학 중에도 학생들의 등록 현황을 종종 파악해 왔었다. 특히 걱정이 되었던 범죄지도(crime mapping) 수업도 학생들이 많이 차서 일찌감치 강의 개설이 확정되었었다. 선택과목인 데다가 "범죄 분석"이라는 용어가 과목 이름에 들어가서 학생들이 이 과목 수강을 주저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학과장님과 상의해서 다음부터는 일 년에 한 번 개설하기로 했고, 전략상(?) 봄 학기에 개설하는 것으로 나 스스로 잠정 결정했다. 학과장님은 과목이 재밌고 인기가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등록할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하지만, 말이 쉽다. 그래도 가르치면서 제일 재미있기에 놓치고 싶지 않은 과목이다. 

 

다른 과목들은 별다른 일 없이 정원이 다 찼지만, 그래도 학기 시작 전에(혹은 시작 후에도) 취소하는 학생이나 늦게 등록하는 학생들이 계속 있기에 학생들의 수업 명단은 지난 주 화요일과 수요일, 즉 첫 수업이 있는 날 아침에 인쇄해서 교실로 들어갔었다. 다른 과목을 통해 이전에 만났었던 학생들이 일부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처음 만나는 학생들이었고, 항상 그랬듯이 강의계획서를 꼼꼼히 설명하는 것으로 첫 시간을 채웠다. 아주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학생들 서로도 처음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업 시작 직전의 분위기는 무슨 고시 시험장 인양 적막하고, 내가 강의 계획서를 설명하는 내내 숨소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가 많다. 

 

나만 재미있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해도 그닥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험상 알고 있지만, 이번에도 나의 뜻을 굽히지 않고 여러 번 시시껄렁한 조크를 해 보았다. 역시 두세명 정도의 학생만 웃어 준다!

 

어떤 때는 나 스스로도 긴장이 되어서 전달하려고 준비한 것들을 빼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행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어서 다음 수업에 다시 전달하면 되는 것들이다. 덜렁거리는 이 습벽은 언제 고쳐질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난 학기때 한 과목 빠진 것을 보강하기 위해 여러 과목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그래서 심적으로 약간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한주를 보내보니 다른 학기보다는 정신을 좀 더 차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스스로의 혼동을 줄이기 위해 각 과목의 진도나 과제 등을 가급적 유사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모두 동일하게는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시험이나 과제 등의 마감일 등이 혼동될 수가 있을 염려가 있다. 달력과 일정표 등을 활용해서 각 과목의 것들이 뒤섞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몇몇 진행 중인 연구도 있는데, 일부러 시간을 내고 억지로(?) 정신을 차려야 제대로 진척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진행 중인 것들에 대해 인식하고, 의도적인 시간/에너지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지만 방심했다가는 이달 1월이 이렇게 손쉽게 지났듯이 다른 날들도 사부작사부작 흘러갈 것이다. 

 

그래도 첫주에 큰 방해나 장애, 예상치 못했던 돌발상황들이 없어 다행이다. 이렇게 글 쓸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루에 한 번씩은 이번 주에 할 일, 내일 할 일들을 적어 놓고 빠진 것은 없는지 챙기는 습관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한테는 허락 받지 않고 사용하는 사진들. 첫시간 나의 소개 중에 보여주는 몇몇 사진 중의 일부다. 아마도 내가 네다섯살(왼쪽)때와 열두세살(오른쪽)때 찍은 것이다. 따져보면 저때의 어머니는 지금 나의 나이보다도 어리셨던 때셨다. 

 

'남궁현 사는 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괴물체 출현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1)  (0) 2020.03.23
예상되는 만시지탄  (0) 2020.02.09
설렘  (0) 2020.01.19
로드맵 또는 계약서  (0) 2020.01.12
"난 멈추지 않는다"  (0) 2020.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