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날이 꽤 흐리고 바람이 꽤 세게 불더니 오늘은 날이 아주 좋다. 볕도 좋아서 2층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밖의 경치가 포근해 보인다.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많지만 그래도 1월도 많이 지났고, 곧 봄을 알리는 신호들이 많이 보이리라 기대한다. (2019. 1. 18.)
토요일이면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오는 것이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유빈이의 개인교습 때문이다. 재작년만 해도 학교에서의 수학 진도를 어느 정도 따라가는 것 같더니 작년부터는 약간 헤매는 것 같았다. 오래된 수학 실력을 바탕으로 아내가 집에서 부지런히 가르친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부모가 직접 하는 것에는 부작용이 따랐다. 그래도 그 덕에 어느 정도의 성적과 수준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올해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저도 학교의 수업이나 과제를 보고서는 도저히 혼자의 힘으로는 안되겠던지, 개인과외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나와 아내의 제안에 별다른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개인과외할 교사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찾아 보았고, 그 중에서 대학생 한명을 알아 내어 지금 있는 이 도서관에서 만나기 시작한지가 두세달 정도 된 것 같다. 하기 싫은 다른 일 같으면 더 이상 못하겠다던가, 가기 싫다는 둥의 잔소리를 할만도 한데, 아직까지는 그런 경우가 없다. 시간이 되면 제 공부거리와 가방을 챙겨 말없이 따라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수학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곳의 고등학교 수학도 그리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 사례를 접속한 문제들(word problem)이 많은 것 같은데, 단순한 공식과 계산 방법만 외워서는 문제를 풀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고 보면, 저 맘때 나도 수학 때문에 골치 꽤나 앓았던 기억이 있다. 뭐 다른 과목도 그리 특출나게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확률이나 통계 등 수학의 특정 분야는 무척 약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후, 이 분야는 그냥 찍고 다른 부분에서 점수를 만회하자는 어리석은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다. 다행 학력고사 마지막이었던 당시의 수학 문제가 이전보다 쉽게 출제되어 수학에서도 크게 점수를 잃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연 수학이 그 정도로 어려워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자와 학부무들의 걱정과 염려는 단지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닌듯 싶다. 물론 수학이 단순히 복잡한 계산식이나 공식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한 사고력 증진이나 문제 해결력의 향상이라는 다른 능력 제고를 꾀하는 것이라는 반론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숫자를 잘 활용하고, 도형이나 공간을 제대로 인식하고 충분히 잘 이용하는 능력은 실제 생활에서도 무척 유용한 것이라는 것도 경험상 느끼도 있다. 하지만, 일부 수학 교과서와 시험에서 나오는 문제들은 가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내가 수많은 시간을 고심하며 함께 했던 그 미적분 문제들이 나의 사고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을까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갖고 있다.
얼마전 청취한 팟캐스트에서도 이런 문제를 다룬 적이 있었는데, 미국에서도 수학 교육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그 중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것은, 복잡한 계산식을 외우게 하고 이를 활용해서 문제를 풀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이해하는데에도 더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데이터 수집 이후에도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산술 능력이나 통계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주 높은 수준의 수학 능력이 없이도 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다. 실제 나는 학교에서 조사방법론/기본통계 과목을 가르치면서 이 주장을 지지하는 편이다. 표준편차나 선형회기분석(linear regression) 정도의 기본 통계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시각화 방식(visualization)이나 그래프/차트 사용 등으로도 데이터를 기본을 이해하는데 충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학교의 과제와 SAT 시험 문제가 단시간에 바뀌지 않는다면 그때까지는 제도에 따라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빈이가 여기까지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순응하며 과외선생을 만나 나름으로는 열심히 하려고 하니 다행이다. 이렇게 토요일 아침이 지나고 있다.
이제 나의 새로운 학기 시작도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주 월요일이 마틴루터킹 공휴일이어서 학교가 문을 열지 않고, 화요일이 봄 학기의 첫날이다. 이번 학기에는 지난 학기에 폐강되었던 과목을 보강해야 하기 때문에 한 과목이 더 늘었고, 그래서 꽤나 바쁠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수도 많고 과목도 많아졌으며, 이것저것 하고 있는 것과 계획하고 있는 것들도 있어서 이전의 어느 학기보다 분주할 것 같다.
계속 수정하고 보완했던 학업계획서를 마지막으로 검토한 후에 학사관리시스템에 모두 올려 놓았다. 이전에 계속 사용했던 것을 보완하는 것이 주된 작업이었기 때문에 큰 오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래도 학기가 시작되면 사소한 실수는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학생들은 내일부터 이 시스템에 접속해서 정보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인데, 이를 확인한 이후에 등록했던 수업을 취소할 수도 있을 것이고 늦게 등록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개강 후 2주 정도 지나야 나나 학생들이나 어느 정도 안정될 것이다.
아마도 이전과 같다면 학기 첫날을 기다리는 월요일 밤에는 잠을 좀 설칠 것이다. 그리고 첫 출근을 하는 화요일 아침에는 가슴도 두근거릴 것이고, 대부분 처음 보게 될 학생들을 만나러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다소 긴장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이런 설렘이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같거나 비슷한 과목을 오랫동안 가르친다고 해서, 같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해서 타성에 빠지거나 안주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가짐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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