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날이 꾸물꾸물 한 듯 하더니 낮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혹시 몰라 방수되는 겉옷을 덤으로 들고 갔었는데, 다행 퇴근할 때는 잠깐 비가 그쳤을 때였다.
방과 후에 친구들과 졸업식때 사용할 영상을 촬영한다고 해서 사무실에서 좀 더 기다리다가 4시 반이 되어서야 유빈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경험 상으로는 그시간 (4시에서 6시 정도 사이)이 퇴근 길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한 시간인데, 아니나 다를까 평소 25분이면 오는 길을 40분을 넘겨서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저녁을 먹고 한가하게 앉아있는 지금도 밖에는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 중의 하나다. (2017. 5. 10.)
<집 앞의 꽃과 나뭇잎들을 찍어 봤다. 우리가 이사오고 나서 그 다음 해에 집 앞에 서 있던 나무가 죽어 버렸다.
아쉽게 잘라냈는데, 그 자리에서 매해 이맘 때면 튤립 두송이가 자라고 있다. 우리가 심은 것은 아니니 아마도 전 주인이 심어 놓은 것 같은데, 별다른 관리를 안해도 꼭 저렇게 예쁜 자태를 보여주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하다.>
오늘로서 내가 가르치는 네 과목 중 두 과목의 시험이 끝났다. 월화요일에는 아무 일이 없어 이번 주 처음으로 학교에 나갔었는데 기말고사 기간이라 그런지 학교의 분위기는 훨씬 한산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온라인 두과목은 이번주 토요일까지 오픈되기 때문에 시간이 좀 남아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좀 더 부담되는 오프라인 수업은 오늘 시험으로 마무리 되었다.
학생들도 교수들도 모두 한 학기를 정리하고 있고, 이번 주말이면 공식적으로 학사가 마무리 된다. 졸업 요건을 충족한 학생들은 이번 주 금요일 졸업식에참석함으로써 상징적인 행사까지 마칠 것이다.
학점을 시스템에 입력하는 것은 다음 주 초가 마감이지만 오늘 시험이 있던 두과목은 이미 학점까지 입력해 놓았다. 온라인 두과목은 주말에야 학생들의 시험이 마무리되고 이후에 학점을 입력해야 하는데, 그때되면 완전히 학기가 마무리 될 것이다.
가외로 가르치는 과목이 있어 두주 정도 더 신경을 써야 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부담없이 처리할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보면, 처음에 이곳에 와서 적응하던 그 첫 학기, 두번째 학기때에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사 운영한 것을 돌이켜 생각하면 낯이 뜨거워질때가 많다.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이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고 어떤 것이 학생들의 불만을 자초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하루 하루 다음 날 강의자료 만들기에도 급급했던 것이 불과 3-4년 전의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내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로 그 간에 배운 것이 많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최고의 강의, 최고의 연구라고는 전혀 할 수 없지만, 시작할 때 나의 수준이 워낙 미미했기 때문에 지금의 이 수준을 감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긴 생각해 보면 경찰이라는 직업도 별 준비 없이 시작했던 것 같은데,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시작하고서 시행착오를 통해 적응하고 있다. "대학원때 더 배워 놓을 것을..." 혹은 "대학원때 조금이라도 티칭(teaching)을 더 해 볼 것을..." 하는 생각들은 모두 부질 없다.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고, 내가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대학원에서 하는 일과 공부만으로도 허덕일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지난 학기에 비해서 대단히 향상된 강의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전보다 현저히 적은 시간을 들이고도 이전과 비슷하거나 좀 나은 강의를 한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전과 달리 이제는 학기 전체 일정을 크게 살펴 보면서 강의 일정을 유연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여력도 생기고,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요구와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혹은 자연스러운 척하면서) 답할 수 있을 정도도 되었다.
오늘같이 기말고사 후에 2점 차이로 B가 아닌 C를 갖게 된 학생이 시험문제에 대한 불만 (혹은 이의제기)을 통해 어떻게든 점수를 더 얻어보려고 하는 시도에도 단호하게 답하고 처리해서 그 학생이 수긍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도 있게 되었다. 첫번째, 두번째 학기에 시험 문제에 대해 이의를 하는 학생들을보고 크게 당황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해 본다면 정말 대단한 성장(?)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학기를 마무리 하면 꼭 한두명의 학생이 고맙다는 이메일을 보내곤 한다. 물론 내가 더 잘 가르쳤으면 더 많은 학생들이 이런 감사 편지를 보냈겠지만, 나는 이 두세명의 이메일만으로도 한 학기동안 일한 보람을 느끼곤 한다. 대학원때 지도교수님이 자기가 티칭 학교에서 가르친 학생들이 더 정감이 갔고, 아직도 계속 연락하는 학생들은 그때 가르치면서 알게 된 학생이라고 하시더니, 그 의미를 이제 조금식 알겠다.
<물론 다른 훌륭한 교수들은 더 많이 받겠지만 저렇게 시키지 않아도 일부러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 내 학생 때의 무관심하고 무능했던 모습이 떠 올라 부끄럽게까지 생각될 때도 있다.>
이번 학기에는 지난 학기에 있었던 Study Abroad 같은 "큰(?)" 과목이 없어서 다소 밋밋한 학기로 볼 수도 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이것 저것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워 보려고 한 시간이기도 했다. 같은 과목을 몇학기째 연속으로 가르치고 있어서 좀 과장하면 내가 구태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볼때도있지만, 아직까지는 매학기마다 조금씩이라도 새로운 강의 자료를 쓰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번 여름학기에 가르치는 과목과 가을 학기의 과목 준비도 좀 더 업데이트 해서 (새단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깔끔한 느낌을 주려고 계획하고 있다.
내년 봄학기에는 다시 Study Abroad를 추진하고, 처음 가르쳐보는 Crime Mapping이라는 과목도 가을 동안 꼼꼼히 준비할 계획이다. 어찌보면 매 학기 혹은 매년이 거의 비슷하거나 똑같은 일상인 것 같은 직업인데도, 내가 찾아서 하는 바에 따라 아주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단순성에서 다양성을 구할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학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일은 좀 쉬다가 저녁에 유빈이네 과에서 발표하는 행사에 참여하고, 금요일에는 우리 학교 졸업식에 참석할 것이다. 토요일에는 후배네 졸업식에 가고, 이후에도 유빈이네 학교 행사와 혜빈이 학교의 행사들이 계속 잡혀 있다. 한국에서도 5월은 여러 행사들이 많아 바쁜 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이들이 커 가니 나와 애들 학교의 행사로 5월이 1년 중 가장 바쁜 달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얼마 전에 혜빈이는 수련회를 다녀왔다. 감기가 다 낫지도 않을 상태이면서도 가서는 잘 놀고 배우고 왔다고 한다.
인솔한 선생님이 혜빈이 사진 중에 잘 나온 것을 골랐다며 며칠 전에 이메일을 보내왔다.>
며칠 남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한 학기를 잘 마친 듯 하여 후련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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