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은 전반적으로 바쁘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바쁘고, 유빈이 혜빈이 학교의 학기말도 바쁘다.
이곳은 우리나라와 학제가 다소 다른데, 그 중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바로 학기가 시작하는 시기이다. 주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곳 콜로라도의 경우 보통 8월 중순 경에 1년으로 된 새 학기가 시작되고, 대학의 경우는 이듬 해 5월 중순, 중고등학교의 경우는 5월 말이나 6월 초경에 1년 학사를 마무리 한다.
지금 4월의 마지막 주이고, 우리 학교의 기말고사는 5월 둘째주이니 사실상 이번 2016-2017년 학기는 2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 대학의 졸업식은 5월 12일 금요일에 예정되어 있다. 유빈이와 혜빈이 학교는 이것보다는 늦게 끝나서 혜빈이의 초등학교는 5월 말에 졸업식을 해서, 혜빈이가 드디어 몇년동안 다닌 초등학교를 마치게 된다. 유빈이 학교도 6월 1일에 중학교 졸업식을 하게 된다. 다만 유빈이는 지금 학교에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기 때문에 학교를 옮기는 경우보다 실감이 덜 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 어리던 것들이 벌써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다고 하니 새삼 아이들의 성장에 놀랍고 자랑스러움과 함께 시간의 쾌속도 절감하게 된다. 어쩌다 인터넷에 저장된 수년전의 아이들 사진을 보면 꼭 남의 집 애들 사진을 보듯 낯설때가 있을 정도니...
아무튼, 나도 학교에서 이런 저런 행사들이 많고, 더구나 학기말에 집중된 여러 과제 때문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다. 가급적 모든 과목 운영을 매끄럽게 하려고 노력해 왔는데, 자칫 2-3주의 실수로 한 학기 공들인 "농사"가 망칠 수도 있기에 요즘에 각별히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챙기고 있다.
이제 애들의 학교 행사 등도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유빈이 첼로 레슨 받는데서 일년에 한두번 하는 리사이틀이 엊그제 일요일에 있었다. 첼로는 제 방에 세우거나 뉩혀 놓고 레슨이나 이런 행사가 있을 때서야 끄적이듯이 연습을 하기 때문에 가끔 아내나 내가 잔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하자는대로 해서 다행이다. 첼로 선생님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모두 작은 교회에 모여 그간 배운 것을 "뽐내는" 작은 행사인데, 그래도 시늉은 내서 하려고 하는 모습이다.
내일 수요일에는 혜빈이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 수련회를 다녀온다. 2박 3일로 이곳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교외로 나가는데 날씨도 이곳보다 쌀쌀하고 시설이나 이것저것 불편한 것이 많을터이지만 아직 이런 것을 생각할 나이는 아님이 분명하다.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교사(Peer Teacher) 프로그램에서 가는 것이다. 혜빈이와 친한 친구들이 모두 이 그룹에 있기 때문에 걱정은 제로, 기대감은 만땅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며칠 전부터 가방에 짐을 다 쌓아 놓고 바로 들고 나갈 수 있게 준비를 해 놓았다. 일요일 저녁부터 약간 감기 기운을 보이더니 어제는 몸이 좋지 않다고 해서 학교를 보내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나마 조금 낳아졌는지 굳이 학교를 가겠다고 일어났다. 혜빈이는 다녀와서 다음 주에 합창단 발표회가 있고, 몇주 후에 졸업식을 하게 된다. 유빈이야 지금 다니는 학교를 이어서 고등학교로 올라가기 때문에 별다른 실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혜빈이는 벌써 중학생이된다는 성장감에 들떠 보인다.
나도 각 과목에 내 주었던 과제물들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 주말이 마감일이었던 학생들의 페이퍼를 읽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제일 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지금까지 약 50개의 페이퍼를 읽고 채점한 것 같다. 물론 글을 읽는 것이 전반적으로 쉬운 것만은 아닐터인데, 학생들의 페이퍼를 읽는 것은 더한 인내심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글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교수들의 평가를 기대하고 있고, 특히 교수가 점수를 주면서 그 점수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조심해서" 채점하고 있다. 어떤 글들은 아직도 배우는 학생들의 글이라 앞뒤의 글 흐름이 어색한 것들도 많아 채점시의 피로도는 아주 센 편이다. 아마 내일까지면 온라인으로 가르치는 디 두과목의 페이퍼 채점은 끝날 것같은데, 아직도 두 과목의 페이퍼 마감일이 기다리고 있다. 기말고사 바로 전주까지는 이렇게 페이퍼를 읽으면서 보낼 듯 싶다.
화요일이고 학과에 특별한 일이 없어 출근하지는 않았지만 페이퍼 채점과 이런 저런 일처리로 도서관에서 바쁘게 보냈다. 아침에 유빈이를 내려 주고 바로 근처의 맥도날드에서 두시간 넘게 앉아서 일하다가 인근 도서관이 10시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도서관에서 다시 유빈이 끝날때까지 기다리면서 일했다.
내려다 주고 맥도날드와 도서관 등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길들이 얼마나 근사하게 보이는지 저절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게 만든다. 더구나 다운타운이라 이 도시에서는 그래도 오래되면서도 잘 관리된 동네에 속한지라 나무들도 크게 잘 성장해 있고 봄인지라 각기 나무들이 초록색 푸른 빛을 내면서 잎들을 저나마 키워 내고 있었다. 바쁜 학기말만 생각했지, 벌써부터 봄이었고 저 나무들과 잔디들은 이미 바삐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서브웨이에서 산 샌드위치를 간단히 먹고 다시 다른 도서관으로 옮겨와 있다.
최근에 아내가 발견한 도서관인데 이곳 역시 유빈이 학교에서 (다른 방향으로) 5분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지금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유빈이를 기다리면서 있는 도서관은 샘 게리 (Sam Gary)라는 도서관이다. (들어가면서 항상 우리말로는 "삼거리"라고 읽을 수 있어... 라고 아재 개그를 혼자 생각한다.) 덴버 공립도서관의 한 지부인데 유빈이 학교에서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을정도로 가깝고 시설도 다소 깨끗한 편이다. 특히나 오늘같이 혼자 집중하면서 일을 해야 할때는 사무실 분위기 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여기에서 참으로 생산적으로 일을 했다. 모든 페이퍼를 다 채점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절반 이상을 마쳤으니 꽤나 선방했다고 자평한다.
오늘은 유빈이 오케스트라 연습까지 있는 날이라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다른 도서관으로 와 있다. 애들때문에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미국에 사는 많은 부모들이 사는 방법이다. 그래도 이렇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주변에 적지 않아 다행이다.
내일부터 조사방법 과목의 학생들이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하니 사실상 강의는 종료된 것이고, "미국 경찰 (American Policing)" 과목도 다음주 월요일이면 실제 내가 목청을 높여 하는 강의는 마지막이다.
이제 천천히 여름을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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