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어깨를 쓰담쓰담

남궁Namgung 2016. 5. 10. 06:59

머리 위에 에이컨이 나오는 바람구멍이 있어서 휙... 하는 소리가 나고 있지만 이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주 조용한 편이다. 책을 빌리기 위해 종종 들르는 곳이지만 오늘은 잠시 앉아서 글도 쓰고 계획도 할 겸해서 점심 먹고 와서부터 계속 앉아 있다. (2016. 5. 9.)


더 이상 크게 놀랍지 않을 정도로 시간을 빨리 흘렀다. 학교는 이번 주가 기말고사 기간으로 정상적인 학사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각 과목의 기말고사 시간이 다 같이 두시간씩으로 재조정되어 (평상시 수업은 1시간 15분이다) 시험 시간이 편성되었다. 내가 가르치는 두과목은 온라인 수업으로 이미 온라인을 통해 자동적으로 시험이 진행되고 있고, 교실에서 진행하는 오프라인 수업은 수요일과 목요일 오전에 시험이 잡혀 있다.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시험문제가 정말 쉽게 출제되었다고 항상 얘기하지만, 막상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년, 혹은 일이십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나도 처음 이곳에 와서 문제를 출제한 후 학생들의 테스트 결과를 보고서는 과연 이럴수가 있나 하고 갸우뚱 거린 적이 몇번 있지만, 그런 것을 한두번 겪은 후로부터는 나도 전적으로 학생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다. 아니, 내 교실의 학생들의 경우를 따질 필요도 없이, 나 스스로가 대학시절 좋은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최소한 시험에서라도 그들의 "혼란(?)" 내지는 "당혹감"을 최대한 줄여주도록 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험 전에는 스터디 가이드 (Study Guide)라고 해서 예상출제 문제가 적힌 자료를 온라인에 포스팅 해 주고, 실제 문제도 모두 그 스터디 가이드에서 추려서 내고 있다. 물론, 이렇게 친절하게 해줌에도 불구하고 가끔 60%도 맞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물론 그런때에도 나의 대학시절을 되새기며 최대한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하긴, 그깟 문제 몇개 더 맞히고 덜 맞히는 것이 무엇 중요하겠는가! 학기 내내 학생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좀 더 세련되고 날카롭게 하도록 가르치고, 그러기 위해서 글을 읽는 법이나 문제를 생각해 내는 법, 통계를 응용하는 법 등 여러가지 도구사용법을 가리쳐서 학생들이 어느 정도 배웠으면 그로 족할 일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내가 좋은 예는 아니겠지만, 대학시절 내내 학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이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즉, 나와 비슷한 학생들, 예컨대 왜 수업을 들어야 하고, 배우는 주제가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지 의심하는 일부 학생들에게 그래도 대학 밖에서 배울 수 없는 무엇인가를 대학에서 배울 수 있다는 어느 정도의 희망을 안겨 주는 것도 나의 큰 임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두학기 지내 본 후 "별것도 없구만" 하고 뛰쳐 나가는 학생들의 수를 가급적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큰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제 목요일 오전의 시험이 끝나고, 학생들의 성적을 학교의 시스템에 등록만 하면 나의 한 학기기는 공식적으로 마무리 된다. 학기가 시작될 때는 4개월 가량의 한 학기를 어떻게 또 보내나 하고 막막한 심정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돌아 보면 이렇게 짧을 수도 없다. 이제는 장장 3개월이라는 여름방학이 다시 시작된다. 


방학 중에 온라인으로 두과목을 가르치고, 학과의 행정적인 일을 맡아 처리할 것이 있으며, 2017년부터 새로 가르치게 될 과목을 천천히 준비해야 하는 등,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몇가지 있다. 또, 지금 쓰고 있는 몇몇 논문들을 완성하거나 최소한 윤곽이라도 잡아 놓는 것을 계획하고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 새로 배우는 내용을 잘 정리해서 날이 선선해 지기 전에 가시적인 성과물을 생산해 내고자 하는 계획도 있다. 


이곳에 처음와서 맞았던 2014년과 2015년의 여름방학 보다는 좀 더 바쁠 날들이 될 것 같고, 한국에서 방문하시는 장모님, 이제 배울 것들이 점점 많아 지는 유빈이와 혜빈이를 뒷받침하는 것도 여름 중에 계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전의 방학보다 좀 더 바빠질 것이 전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쉼을 즐기고, 이전보다 더 여유로우면서도, 이전보다 더 생산적인 계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아듀 2016년 봄학기!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쁘지 않은 학기였던 것 같아 내 스스로 어깨를 쓰담해 줘도 그리 "오바(!)"는 아닐 것 같다. 



<지난 주 목요일 (5. 5) 혜빈이네 학교 합창단 발표회. 가을에 발표회는 가을 학기를 마무리하는 신호와 같고, 

봄에 하는 이 콘서트는 이제 봄학기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는 소식이기도 하다.>


<평일 낮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고 한적해서 좋다. 그러고 보니 매번 찍는 사진의 구성이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방학 동안에는 좀 더 창의적인 구성을 할 수 있는 법도 배워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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