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인사이드 아웃

남궁Namgung 2016. 5. 9. 12:21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절대 아이들만을 위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예전에 "라따뚜이"라는 영화를 보고서도 그런 생각을 했고, 얼마 전의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우화라는 것이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어른들도 충분히 교훈을 받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과 닮은 점이 있을 것이다. 


부모와 아이들을 함께 공략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영화를 의도적으로 그리 만들었다면 대단히 수준 높은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에서 사용되는 음악은 부모 세대에서 유행했던 팝송들도 자주 쓰는 것을 생각한다면 내용까지는 몰라도 분명 부모세대에게도 관심을 끌려는 장치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얼마 전에 개봉되어서 큰 관심을 끌었던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는 주인공 소녀의 머리속 (두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의 머리속에는 기쁨, 슬픔, 두려움, 화, 혐오감 등 다섯가지의 감정이 함께 하면서, 상황에 따라 어느 한 감정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이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본 것은 주인공의 머리속에 저장된 기억이 마치 큰 볼링공으로 저장되어 있어서 그 기억을 되새길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큰 도서관에 수 많은 책들이 꽂혀 있어서 일련번호만 알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어 대출책상으로 가져 올 수 있듯이, 우리가 경험한 모든 기억이 뇌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할 때나 그 기억과 관련된 어떤 외부적 자극이 있을 때 튀어 나와 기억을 되새길 수 있게 한다는 발상이었다. 


<영화에서는 각각의 기억들이 저 큼지막한 공에 저장된 것으로 표현된다. 

공의 색이 밝을 수록 자주 기억되는 것이거나 선명한 것이고, 어두울 수록 기억에 잘 쓰이지 않거나 기억되지 않는 것들이다.>




요즘 시간날 때마다 "뇌(brain)"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이 분야에 대한 글을 접했고, 그 후로 조금씩 책이나 글, 논문 등을 찾아 읽고 있다. 물론, 범죄와도 관련된 내용이 있어 그 분야를 더 세심히 찾아 보고 있지만 기본서, 교과서부터 천천히 읽고 있다. 생물학적, 화학적, 의학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어서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지만 일단 난해한 내용들은 건너 뛰고 알기 쉬운 것부터 이해한 후에 다시 돌아가서 몰랐던 내용을 확인하는 식으로 공부하고 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분야를 공부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방학 중에는 더 시간을 내서 내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옮겨 보려는 계획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진척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인사이드 아웃도 그냥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창의력에만 의존한 영화는 아니라고 들었다. 심리학자와 뇌 신경학자들이 영화제작에도 참여해서 어느 정도 과학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부 뇌신경학자들은 사람의 기억이 마치 도서관 책장에 진열된 책들을 꺼집어 내는 것 같지는 않다고 주장한다고 알고 있다. 즉,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들, 예컨대 내가 오늘 일어나서 잘 때까지 보고 듣고 피부로 느끼고 냄새를 맡은 모든 경험이 뇌에 저장되어 나중에 필요할 때 빼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분명 머리 속에 기억되어 생각지도 않을 때 불쑥 생각나곤 한다. 물론 강렬한 자극이 있었던 것들이 기억나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나, 교통사고가 났었을 때, 아버지나 장인어른의 장례식 때의 기억은 비교적 명확하다. 하지만 전혀 기억에 있지 않았을 것 같은 것들이 생각날 때는 홀로 놀랄 때도 있다. 아주 사소하고 소소했던 것들이라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 어느 외부적인 자극에 의해 (혹은 그런 자극이 없이도) 머리 속에서 불쑥 떠오를 때는 신기하게 생각될 때도 있고, 아련하거나 갑갑할 때도 있다. 물론, "아, 그때는 그랬지..." 하는 정도로 어떤 감정적 판단이 없는 "중성적(?)"인 기억들도 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지난 날을 회상할 꺼리들이 꽤 축적되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요즘, 그런 경험들을 할 때가 이전보다 많아졌다. 라따뚜이 맨 마지막 장면에서 음식 비평가가 수프 한 수저를 먹고는 자신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음식을 떠올리듯이 어떤 음식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그 장소와 함께 있었던 사람과 분위기가 떠오를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친구, 그 친구와 경험했던 어떤 재미난 일들이 일순간 머리속을 스치는 때도 있다. 




요즘 학기말이라 시간적, 심적인 여유가 전보다 많아 한국의 이런 저런 예능을 많이 찾아 보고 있다. 일단 재밌어서 시간 보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이곳의 텔레비젼 프로그램보다는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 혼자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낄낄거리고 웃는 것을 보면 아내가 가끔 핀잔을 주기는 하지만, 나의 그간 노고를 생각해서 인지(?) 많이 간섭하지는 않는 편이다. 


오늘 한국의 프로그램을 살피다가 "판타스틱 듀오"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영어로 지어진 이름이 약간 거부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처음 몇분 보다가 재미없으면 안보면 되기에 컴퓨터로 재생을 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무엇보다 출연한 가수들 때문에 계속 보게 된 것 같다. 더구나 노래로 채워지는 부분이 많아 학생들의 마지막 페이퍼 채점을 하면서 듣기에도 무난했다. 


내가 본 이번 회에는 이선희, 변진섭, 조성모, EXO가 출연을 했는데 EXO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나머지 가수들의 노래는 나의 지난 젊은 시절과도 관련(?)이 많다. 특히 오늘 변진섭의 "네게 줄 수 있는건 오직 사랑뿐"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1989년 말에서 1999년 초의 겨울이 문득 떠올랐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난생 처음 사설 영어 학원을 간다는 "미명"하에 누나가 자취하던 대전 가장동의 작은 아파트에 잠시 살던 때였다. 지금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때는 정말로 나만 몰랐지 촌티 팍팍 흐르던 시골 촌놈이었었다.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시켰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도시"에서 영어 학원을 다니겠다는 계획으로 약 한달정도 누나와 함께 좁은 아파트 방에서 살았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한시간 정도 짜리 영어 수업을 듣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은데, 지금 기억으로는 내 영어 실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학원을 다녀도 별것 아니구나" 라는 교훈을 얻은 것이 그나마 값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 내게 남은 기억은 그 남는 많은 시간 동안 들었던 변진섭의 노래 테이프였다. 지금 인터넷을 찾아 보니, 1988년 1집이었나 본데 정말이지 흔히 쓰는 표현대로 "테이프 닳도록" 들었던 것 같다. 당시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던 누나가 저녁에 돌아 올때까지 정말 징하게 돌려 듣고 돌려 들었던 노래들이다. 새들처럼, 너무 늦었잖아요, 홀로 된다는 것, 그대에게... 등등 가사는 모두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가사가 나오는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는다면 이 테이프에 들어 있던 노래는 아직도 적당히 소화해 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머리속에는 큼직하고 반짝이는 볼링공으로 저장되어 있다. 


노래와 관련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오직 나뿐이랴. 아니, 예술쪽에는 예나 지금이나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갖고 있는 추억 혹은 기억은 다른 이들의 것들에 비해 심심하고 무료할 뿐일 것이다. 그래도 저런 기억들이나마 어디론가 휩쓸려 사라지지 않고 나의 머리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지금까지는 나이듦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멀지 않은 옛일에 대한 회상의 대부분들이 아련하고 잔잔해서 좋다. 조용한 일요일 저녁, 나의 인사이드가 어렴풋 아웃되는 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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