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Korean Lesson

남궁Namgung 2013. 5. 11. 11:13


이제 거의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 듯 싶다. 지금이야 그래도 "자의"로 아내를 따라 교회를 나가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무슨 특별한 핑계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계속 꾀를 부리고 있엇다. 


그러다가 하루는, 아내가 교회에 다녀와서는 목사님의 부탁이시라며 교회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첫 반응은 


"뭐?"


당시 그 교회의 목사님이 교회에서 꽃꽂이나 다른 여러 프로그램을 엮어서 지역 주민이나 교회분들에게 양식을 넓힐 수 있게 하시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영어" 였던 것이다. 


며칠 동안 계속 "말도 안된다"고 단칼에 거절했지만, 아내의 거듭된 "읍소(?)"와 나의 착한 성미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나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일요일 오후 세시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은다. 혹은 네시였을 수도)에 교회의 한 방에서 애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가 교재를 골라 애들에게 한권씩 사게 했고, 교재 테이프를 틀 수 있는 조그만 카세트를 들고 다니며 애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거의 대부분 중학교 학생들이었고, 처음에는 10명 정도 내외가 참석하다가 나중에는 목사님 따님과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집사님들 따님 등 서너명만 참석하는, 거의 과외 수준으로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그 애들도 부모님들이 참석하라고 하니 할 수 없이 참석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지만, 그래도 그 열성 학생들과 1년 넘게 영어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잘은 몰라도 지금 그 애들은 대학생이 되었거나 어쩌면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영어 실력도 없지만, 가르치는 기술도 없었으니 내가 그 애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나도 일요일에 그 애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떤 때는 보람스럽기도 하고, 어떤 때는 회의가 들기도 하는 과정이 계속되기도 했었다. 


그래도, (내가 그 애들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애들이 하나 알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내가 투자한 그 시간을 가벼이 여기지 말았으면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내가 더 좋은 것을 잘 가르쳤다면 당연히 알아 주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더도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그 애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다른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돌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내는 좀 더 종교적인 생각으로 접근하겠지만 난 아직 그럴 그릇이 아니므로 그에 대한 생각은 통과!)


가만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시절에도 내가 알게 모르게 댓가 없이 나에게 투자를 한 분들이 많았다. 어쩌면 나의 지금 일부분 (혹은 아주 큰 부분)은 그런 분들이 내게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 투자하신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다 보니 좀 거창하게 보이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 애들도 누군가가 그들에게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잊지 않고 나중에 다른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투자하고 도움을 주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 짧은 기간 별 것 아닌 가르침으로 이렇게 거창한 요구를 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다.)





내가 앤디 (Andy)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거의 6개월이 된 것 같다. 워낙 똑똑하고, 무엇보다도 배우고 싶다는 의지가 확실해서 그 짧은 기간에 앤디가 한국말을 하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은 놀랍기까지 했다. 


작년 초겨울에 처음 시작할 때는 논문이나 다른 준비 때문에 개인적으로 바쁠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실제 바빠서 한두번은 빠지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애가 왜 한국말을 배우고 싶은지 궁금해서 일주일에 한번 한국말 레슨 (?)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만난 날, 그 애 어머니 (이곳의 한 교회 목사님이시다)와 나와 그 애를 소개하고, 앞으로의 수업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상의도 하는 시간이 있었다. 당시 그 어머니는 레슨비를 얼마로 했으면 하냐고 하는데, 내가 한국어 전문가도 아니고 오히려 한국말을 배운다는 것이 고맙기도 해서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애가 사는 지역이 내가 있는 곳에서 꽤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요즘은 금요일) 약 15분에서 20분 정도 차를 타고 오가는 반복을 계속 해 왔다. 앤디는 장기적으로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가서 다른 문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데, 정말이지 한국어 습득력이 대단하다. 내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영어나 다른 언어를 시작했다면 저 애가 구사하는 한국어 실력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짧은 시간에 큰 성취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국어 문법에 손을 놓은지 어언 20년이 넘고, 우리 말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 아닌지라, 가끔 앤디가 우리 말의 사용법에 대해서 물어 보면 대답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은/는" 혹은 "이/가"는 어떻게 쓰임법이 다른가? 언제 "은"을 써야 하고 언제 "는"을 써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마 초중등학교때 배운 이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들이다. 지금 당장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예들을 물어 보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나도 우리말 공부를 한참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또, 이 애가 이렇게 단기간에 성취하는 것을 보고는, 나도 열심히 하면 다른 언어를 또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일본어 혹은 스페니쉬를 배워볼까 하는 호기심까지 생겨서, 나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가끔 앤디 어머니인 그 목사님과 이메일을 나눌 때면 당신의 아들에게 한글 뿐 아니라 긍정적인 영향을 줘서 아주 고맙다는 인사를 자주 하시는데, 그럴 때면 나의 시간과 노력 투자가 보람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다른 곳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을 좋은 경험을 하게 된 것이 내게도 큰 도움이 된 것은 말 할 것도 없을 것이고... 


앞서 대전의 한 교회에서 몇명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드는 생각이 다시 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받은 이전의 혜택들을 일부 돌리듯, 앤디도 타인 혹은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크고 작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계속 멕시컨 카페에서 만나서 한시간 정도씩 한글을 가르쳤었는데, 약 한달 이전부터 한 대학 앞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만나고 있다. 어제는 다른 곳에 약속이 있어서 좀 일찍 카페에 들러 평소 먹지 않던 점심을 시켜서 먹고 앤디를 기다렸다. 


끝나고 잠시 사진 한장 찍고... 이번 주 금요일이 마지막 만남이 될텐데, 아마도 오래 기억될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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