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lation mobility 혹은 Geographic mobility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가를 측정하는 표현이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사망할 때까지 같은 지역, 심지어 같은 집에서 사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매년 혹은 매 3-4년에 한번씩 거주지를 옮기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거창하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과 그에 따른 영향까지 내가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겠으나, 우리나라도 이전에 비해 지역을 옮겨 사는 경우가 매우 많은 듯 싶다. 어릴 적 다니던 시골 학교에서는 타 지역에서 전학생이 왔다 하면 전 학교의 관심 사항이 될 정도였지만, 이제 도시학교에서의 전학생은 별 관심을 받지 못할 정도가 된 것 같다.
그만큼 직장 등 여러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상화가 되었고, 특히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그 이동을 뒷받침하는 수단들 (예컨대, 전문화된 이삿짐 센터)도 많이 생겨났다.
인구 유동성을 논하자면 단연 미국의 예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미국 사람들이 지역을 옮기는 정도는 잦은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처럼 직장이나 다른 이유 등으로 지역을 옮기는 것이 당연한 사회 현상 중 하나인 듯 싶다.
다만, 우리나라와 달리, 옮기는 지역이 대부분 훨씬 더 먼 거리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겠고 (예를 들어 타주로 이사하는 등), 같은 나라에 산다고 하더라도 타주로 이동하는 경우 이전에 살던 지역과 많은 다른 제도를 실감하게 된다.
단적인 예가 바로 사형제다. 같은 나라이면서도 현재 32개의 주에서는 사형제가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오직 18개 주에서만 사형제를 철폐했으니,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생과 사가 갈릴 수 있다는 것은 좀 과장된 것 같으면서도 틀리지 않은 표현인 것이다.
어쨌든, 혹자는 이 같은 유동성이 미국의 혁신을 지속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한 지역에서 비슷한 제도와 문화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환경 속에 살면서 접하는 여러가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체험들이 미국인들은 좀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생각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지금은 경기가 많이 회복되는 지수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경기 침체로 미국인들의 유동성이 떨어졌다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일 것이다.
<미국 내 주간 이동인구를 보여 주는 지도. 2011-2012년 사이에는 뉴욕에서 플로리다로 옮긴 인구가 가장 많았다고 표기되어 있다.
출처: US Census, http://www.census.gov/newsroom/releases/pdf/us_migration_map_v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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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지금까지 내가 장기간 거주했던 집을 세어 보니 총 7 곳이었다. 대전에서 네곳, 영국에서 한 곳, 미국에서 두 곳이었다. 내 나이에 나 보다 훨씬 더 많이 이사를 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사실 지역을 옮겨 사는 것은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 부적절한 주제일지 모른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여건에 따라 삶의 터를 옮기는 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삶의 거소를 옮기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집을 찾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고, 오래 살던 집 구석구석에서 짐을 꺼내 이사하는 일도 분명 챌린징 (challenging)한 일이다.
또한, 이사를 한 후에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어느 가게가 저렴한지, 어느 정육점 고기가 맛있고 주인이 친절한지, 직장까지의 출퇴근 길은 어느 길이 가깝고 어느 길이 막히지 않는지 등...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기까지에는 여러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사를 해서 동네를 옮겨 살다 보면, 특히 이전에 살던 곳과 꽤 다른 곳으로 지역을 옮기면 (예컨대 시골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시골로, 혹은 서울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부산으로 등등), "문화 충격 (culture shock)"과 비슷한 경험을 갖는 경우도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억양이 달라 소외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동일한 물건에 대해서 다른 사투리를 사용하기도 하며, 심지어 고스톱 룰도 다른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양한 곳으로 옮기면서의 장점도 있을 것인데, 바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예전에 보거나 듣지 못했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삶의 일정 부분 다양해 질 수 있다는 것이 있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마인드를 소유하게 되는 거창한 것까지는 경험 하지 못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전과 다른 환경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인지하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내가 살았던 곳이 전부가 아니라는 실감을 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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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한 5년 정도 살았던 이 세인트루이스를 정리하고, 새로운 도시 덴버 (Denver, Colorado)로 이사하게 된다. 아마도 이사하게 되면 지금보다 살았던 기간보다 더 긴 시간을 그곳에서 지내지 않을까 싶다. 날씨며, 고도(?)며, 여러가지 사회 경제 문화적인 측면에서 다른 곳이 될 것이고, 사실 그런 점이 내게 기대를 갖게 만들기도 한다.
분명 이곳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 (특히 아름다운 자연)에 적응하는데 상당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고, 이전과 다른 문화를 갖고 있을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면서 처음 경험하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어 무척 뿌듯하게 생각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 자신이 커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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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항상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요즘 아파트를 알아 보고, 이사 준비를 하면서 신경 쓰이는 것들이 아주 많다. 아내가 거의 대부분의 일을 알아 보고 있지만, 논문 준비에만 몰두해야 할 나도 이것 저것 신경을 쓰이는 일이 적지 않다.
오늘 아침, 이전에 쓴 블로그를 보다가 우연히 이곳 미국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 준비할 때 써 놓은 글을 봤다 (http://blog.daum.net/hyonyya/13739945).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한국에서 이곳으로 오기 위해 이런 저런 준비를 하면서도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나 보다.
스스로 위안하면서 현재에 충실하자는 다짐을 썼던데, 지금의 심정이나 처지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지금 겪고 있는 약간의 스트레스도 몇년 지나면 전혀 기억 못하고 즐거운 것만 기억나지 않겠는가...
다가 올 즐거운 "경험"만 생각 하고, "매 순간이 꽃봉오리"임을 잊지 말고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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