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빈이 사는 법

Magic Show

남궁Namgung 2012. 3. 8. 08:10

 

예전 우리집은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문방구를 했었다. 나는 당시 우리 가게가 대단히 큰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아마 어렸을 때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동네에서 별의별 것을 다 팔았는데, 아버지께서 파시던 물건 중에 참고서, 문제집, 전과 같은 것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달았었다. 근처에 있던 초등학교, 중학교의 학생 규모가 작아지면서, 그 "서점" 물건의 비중도 같이 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려서 국민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면 가끔 아버지께서 커다란 자전거 (친구들끼리는 그 자전거를 "짐빠"라고 불렀었다. 왜 그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다.)를 타시고, 양복까지는 아니셨지만 평소에 입으시는 옷보다는 약간 더 차려 입으시고 오셨었다. 다름 아닌, "영업" 때문이었다. 당시 아버지께서 주로 거래하시던 "동아출판사"의 문제집을 선생님들이 교재로 삼아야 그 문제집을 가게에서 파실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사실, 국민학교때는 그런 것도 잘 몰랐다가, 중학교에 올라가고 조금씩 머리가 커지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 이유가 어쨌든, 아버지가 학교에 오시는 것이 나는 괜히 좋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가 문제집을 파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해서, 그것이 창피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아마 같은 가족을 운동회나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 평일에 학교에서 보는 것이 좀 쑥쓰러워서 그러지 않았나 생각된다. 괜히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엄청 장난피우고 했는데, 아버지가 학교에 와 계신것이 보이면, 잘 마주치지 않으려고도 했던 것 같다. 어쩌다 학교에서 아버지를 마주치면 "아버지 오셨어요?" 라고 인사도 제대로 안(못?)했던 것 같으니, 아버지 보시기에 괘씸하게 생각이 드셨을 수도 있고, 버릇없다고 생각이 드셨을 수도 있는데, 아무런 말씀도 잘 하지 않으셨었다.

 


 

어제는 유빈이가 애프터 스쿨 프로그램으로 했던 매직 클래스에서 마지막 시간에 학부모들 앞에서 쇼를 한다고 초청을 했다. 원래 학교가 끝나는 4시부터 5시까지 했던 것인데, 4시 40분에 모두 오라고 학생들이 직접 초청장을 만들어서 아내와 함께 혜빈이를 데리고 가 봤다.

 

커다란 학교 실내 체육관 한쪽에 의자 20여개 정도를 내 놓고, 앞에 길쭉한 테이블을 놓고 부모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20명 정도 되려나... 지도했던 선생님이 한명씩 부르면 학생들이 그간 배운 마술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좀 더 특별한 것(?)을 기대했지만 가 보니, 그간 유빈이가 배웠다면서 집에서 보인 마술들을 하나씩 돌아가면서 보여주는 정도였다. 그래도, 나를 포함한 다른 부모들은 모두 잘한다며 박수를 쳐주며 응원을 해 주기도 했다.

 

유빈이는, 자기가 사회를 본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도 했는데, 그런 것이 없어서 왜 그런가했더니, 중간 정도부터 유빈이, 그리고 다른 여학생 하나가 돌아가면서 참여하는 학생들을 소개했다. 좀 더 큰 소리로, 자신있게 소개하면 좋으련만, 자신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부모된 마음으로 좀 아쉽게 생각되기도 했다. 그래도 제가 하고 싶다고 자원했어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인정해 줄만 하다.

 

다녀와서 제 엄마와 하는 얘기를 들으니, 나와 제 엄마가 학교에 와서 있으면 더 쑥스러워진다고 한다. 원래도 생소한 환경이나, 남들 앞에서 드러나서 뭔가를 해야 할 때는 쑥쓰러움을 많이 타는데, 거기에 제 부모가 와 있으면 그 쑥쓰러움이 더 해진다는 얘기겠다. 엊그제 혜빈이 생일때도 나와 아내가 교실에 있으니 무척 부끄러움을 타면서 우리 얼굴을 잘 보지도 않고, 아내에게 집에 가면 안되냐고 묻기에 그저 샤이 (shy)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었다. 며칠 후에 있던 학부모 간담회 시간에도 혜빈이 담임 선생님이 혜빈이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다고 말하던데, 혜빈이도 제 부모를 학교에서 만나면 부끄럽거나, 쑥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런 생각을 한번도 안 해봤었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유빈이가 아직 어려서 이런 저런 경험이 없는데다가, 나를 닮아 쑥쓰러움도 많고, 부모가 있는 자리에서 뭔가를 하는 것을 더 어려워 한다는 것을 그간 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저 지금의 내 기준으로, "좀 더 자신있게 못하나... 다른 애들처럼 자리를 가리지 말고 좀 활발하게 발표하지 못하나..." 하는 불만 같은 생각을 유빈이에게 가졌던 것 같다.

 

내가 아버지를 학교에서 만나게 되던 때의 환경과, 나와 지금 유빈이의 환경이 차이가 많아, 나의 어렸을 때 일로 비교할 것은 생각도 못해봤는데,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점도 많을 수 있다. 이런 저런 학교 행사로 유빈이네 학교에 가야할 일이 꽤 있는데, 그때마다 유빈이는 얼마나 쑥쓰러웠을까... 언젠가 이곳에서 자녀 교육을 시키셨던 분의 말씀대로, 좀 더 크면 다른 친구들의 부모, 즉 우리보다 훨씬 다수인 백인이나 혹인 흑인인 부모와는 달리 생긴 나와 아내의 모습을 제 친구나 선생님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애를 키우면서,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많다고 느낄 때가 많다. 어제도 유빈이가 제 엄마에게 흘려 하는 (혹은 평소에 꼭 하고 싶었던) 말을 듣고, 문뜩 나의 어릴 때 생각이나, 유빈이가 처한 환경은 생각하지도 않고 쓸데없이 다른 기대치를 가졌던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 샤이함과 쑥쓰러움을 어디서 배웠을까... 결국은 내 피를 받아 그런 것이고, 나 또한 그랬고, 그렇다고 그런 점이 큰 흠이 아님에도, 애들에게만 가끔씩 실망하곤 했으니... 아, 부모로서 제대로 된 자격은 저 애들이 다 커서야 갖춰질까...

 

 

 

 


 

 

'유빈이 사는 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어른이 되어 있다  (0) 2012.04.22
Bike Riding  (0) 2012.04.18
Wax Museum  (0) 2012.02.25
눈썰매 2012  (0) 2012.01.14
Yubin's 9th Birthday Party  (0) 2011.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