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인터넷을 찾아 보니, 지금도 있는 것 같은데, 영국에는 카탈로그 샵 (catalog shop)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 (Exeter)에도 유명한 가게가 쇼핑몰 안에 있어서 그곳을 종종 이용하곤 했었다.
말그대로 가게 안에 비치된 카탈로그를 보고 상품을 고른 후에 그 번호를 적어 내면, 창고 안에서 직원들이 물건을 찾아 밖으로 꺼집어 내주는 것이었는데, 아마, 공간 활용을 효율적으로 하고, 직원들을 적게 써서 비용을 줄이는 방식인 것 같다. 모든 것들이 대규모이고, 가게들도 큼직 큼직한 미국과 비교하면, 정말 "귀여운"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영국에 도착해서 얼마 되지 않아, 이 카탈로그 샵에서 가방을 하나 샀었다. 그 전까지는 무슨 가방을 썼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때 가방을 살 때는, 그 가방이 나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주 소박하고, 정직한(?) 디자인과 색깔의 가방. 그래도 계속 쓰다 보니, 정말 쓸모 있게 주머니들이 달려 있고, 튼튼하다.>
그런 후 약 10년. 저 가방은 나와 그동안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했었다. 여행할 때건, 공부하러 갈 때건 어디나 저 가방에 물건과 책을 넣고 다녔었다. 저 가방이 돌아다닌 나라만 해도 10개국 정도 되니,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닌 가방이기도 하다.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바닥에 저렇게 구멍이 났다. 저것이 거의 10년동안의 유일한 상처이니, 내가 잘 썼거나 좋은 가방이거나...>
하지만, 오래쓰다 보니 약간 찢어진 부분이 생기기도 했고, 그다지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 괜히 지지리 궁상 떠는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다 싶어 얼마 전부터는 "새 가방을 하나 살까..." 하는 생각을 시작했었다. 그래도, 정도 꽤 들고, 또 가방이 쓸만한 것들을 비싼데 아직 쓸 수 있는 것을 버리고 괜히 새것 살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그냥 계속 사용했었다.
내가 어딜 가나 항상 메고 다니던 가방... 가방이 여기 저기 많은 것들 짊어지느라 고생도 많이 했겠지만, 많은 곳 다니면서 구경하느라 호강도 많이 했을꺼다...
지금 사진을 보니, 저때는 가방도 쌩쌩한 것이었겠지만, 내 얼굴도 좀 더 젊어 보인다.. ^^
<이 나라, 저 나라마다 항상 메고 다녔던 저 가방... >
지난 목요일. 학교에 갔다 오니, 아내가 집 앞 가게에서 세일을 많이 하는 것이라 골라 왔다며 가방을 하나 내 놓는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낡은 가방이 보기 좋아 보이지 않았나 보다. 원래 가격의 반도 되지 않게 세일을 해서 집어 왔다고 하는데, 가격을 떠나서 여기 저기 만져 보니 튼튼해 보인다. 이전 가방 보다 다소 묵직해서 무게는 좀 더 나가는 것 같지만, 그만큼 튼튼할 수 있다는 얘기겠고...
<사실 카키색, 혹은 군청색은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언제 내가 취향대로 골라 썼던가... 또 다른 10년을 함께 할지 모르는 새 가방!>
아내에게는 아직 가방 쓸만한데 뭐하러 샀냐고 말했지만, 어쩌면 이제 이전 가방과 이별을 고할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영 이별이라고 하기에는 좀 섭하고, 이젠 옷장에 넣었다가 혹 비상시에 쓸 일이 있으면 다시 꺼내 써야겠다.
고생했다, 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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